'벙어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인간 노무현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대한민국 안에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노무현이 경험한 것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무현은 특별한 사람이다. 노무현을 이해하려면 그의 특별함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노무현은 밑바닥 하층민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다. 언덕아래로 지나가는 아줌마들 일행을 향해 고추 내놓고 시시덕거리며 오줌 내갈기던 막노동자 아저씨들 사이에 서 있어본 사람이다.(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
한편으로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는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도 섞여본 사람이다. 밑바닥 세계의 갸륵한 본심과 지식인 세계의 냉혹함 그리고 비정함을 동시에 맛본 사람이다.
이 세계의 양 극단을 경험한 것이다. 가장 낮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계까지 단번에 가로지르기!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특별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인 당신이라도 그렇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혼자만 경험했다면 어떨까? 에베레스트 정상에 첫발을 내디딘 노르가이와 힐러리처럼, 그리고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던 암스트롱과 올드린처럼!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있다. 맨 처음 서구를 방문했던 서유견문의 유길준, 미국 교민들을 보살펴야 했던 선각자 안창호처럼. 마치 종교의 지도자와 같은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지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 민족 단위로 생각하고 인류 단위로 생각하게 된다. 신 앞에서 단독자로서의 양심을 생각하고 신의 완전성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 자신을 운명적인 존재로 여기게 된다.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인간 노무현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족장의식'이다. 벙어리 마을에 유일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과도한 책임감, 과도한 결벽증을 가지게 된다. 장애인들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앞 못 보는 사람에게 뜨거운 물을 찬물이라고 말했다가는 어떻게 되지? 농담이라도 위험하다. 벙어리들은 의사소통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가벼이 거짓말을 섞지 않는다. 보통사람에게는 장난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목숨을 거는 일이 된다.
노무현의 밑바닥 경험은 장애인 세계의 체험과 같다. 밑바닥 사람들도 가슴 속에 한 가닥 뜨거움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용이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어리석은 술주정으로 날려보낼 뿐이다.
그 밑바닥 세계의 뜨거운 본심을 들여다 본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면 쉽게 목숨을 거는 사람이 그들 밑바닥 세계의 사람들이다. 아무런 반대급부 요구하지 않고 말이다.
그들은 대개 타락해 있지만 진정한 리더를 만나면 무섭게 변한다. 그들의 무서운 변화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본 사람이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특별한 인격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족장의식이다.
과도한 책임감, 과도한 결벽증, 과도한 미안함을 지니게 된다. 약간의 의심하는 눈초리도 참지 못한다. 타인에게 조금만 피해를 끼쳐도 어쩔줄 몰라한다. 그런 세계가 있고 그런 사람이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 가진 것 있는 사람, 지식계급의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선의를 용이하게 증명할 수 있지만 밑바닥 사람은 그렇지 않다. 배를 가르는 방법 외에는 자신의 결벽을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결벽증.
밑바닥 세계의 결벽성이 큰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포착한 사람이라면? 특별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밑바닥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비굴하고 야비하며 천박하다.
그들은 쉽게 거짓말을 한다. 그들은 언제고 배반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도 한번 진짜를 만나면 완전히 변한다. 전혀 딴 사람이 된다. 목숨을 걸고 맹세를 하며 그 맹세를 끝까지 지킨다.
그들이 현재 위치한 낮은 자리가 있고 올라가고 싶은 높은 세계가 있다. 그 사이에 낙차가 그만큼 크다. 약간 올라가도 크게 얻는다. 그것이 민중의 에너지가 된다. 그 낙차만큼 열정을, 믿음을, 용기를 가지게 된다.
그 거대한 민중의 에너지를 다루는 방법을 알아버린 사람이라면? 특별한 계획을 품게 된다. 선지자와 같은 사명감을 가진다. 나는 노무현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 필자 역시 그 세계를 얼마간 경험했기 때문이다.
83년 겨울부터 92년 봄까지 산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공장에서, 건설현장에서 무수한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은 아무 생각없는 하층민이었다. 범죄자도 있었고 주정뱅이도 많았다. 대개 형편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들의 눈이 언제 무섭게 빛나는지를. 그들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지를. 내가 새파란 스무살 애송이였을 때 나이 쉰살도 넘은 아저씨가 내 손을 잡고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손등에 떨어졌다.
그런 경험이 여러번이다. 할아버지 한 분은 형편이 여의치 않아 자식들 따라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면서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 ‘내가 진작에 너를 만났더라면.’ 그 말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들은 형편없는 하층민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역시 형편없는 뜨내기다. 서로 의심하고 비웃는다. 그럴수록 진실한 사람에 대한 갈구가 크다. 나는 그분들에게서 진정한 친절을 보았다.
그 모습들이 필자의 삶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세상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심중의 결의! 그때 그 시절 정 많은 아저씨의 눈빛이 여전히 내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다. 나는 차마 그분들의 속마음을 배신할 수가 없다.
필자가 경험한 것을 노무현도 경험했으리라. 최하층 밑바닥 세계에서 최고층 지식인 세계까지 단숨에 관통해버린 사람이니까! 내가 무지, 비겁, 거짓말을 혐오하듯이 노무현도 그러할 것으로 여긴다.
내게 그 선한 아저씨의 눈빛에 보답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듯이 노무현에게도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 이 나라 지식인 대다수는 노무현이 경험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들은 노무현을 오해했다. 그들은 노무현을 타고난 승부사로 여긴다. 대단한 야심가로서 세상을 향해 날선 싸움을 벌인다고 여긴다. 천만에! 노무현은 한 번도 승부수를 띄운 적이 없다.
자신의 야심을 위해 무모한 도박을 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정몽준과의 파토난 단일화만 해도 그렇다. 거짓야합 할 수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다. 단일화합의를 깨는 고수 노무현의 승부수에 하수 정몽준이 당해서..
단일화 깨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 된 것이 아니다. 밑바닥세계를 경험한 사람은 원래 그렇다. 노무현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인생의 어느 한 지점! 운명의 한 지점이 있다. 여기서 밀리면 내 인생 끝까지 줄곧 밀린다는 생각.
그런거 있다. 열살 즈음 덩치 큰 동네 형들에게 모욕당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대강의 얼개가 이루어졌다. 나는 아직도 타인에게 물건을 빌리지 못한다. 어렸을 때 가난했다.
연필 살 돈이 아쉬울 정도로. 지우개 빌리기 싫어서 잘못 쓴 글자 지우지 않았고 몽당연필이 부러지면 필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연필칼을 빌리지 못해서 연필심이 부러지면 연필 끝을 이로 물어뜯어서 쓰기는 늘 있는 일.
왜? 워낙 빌려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빌리기 시작하면 이것저것 다 빌려야 하는데 그 빌리기목록이 너무 많았다. 다 빌리지 못하니 아주 포기한 거다. 내가 입고 등교한 옷조차 급우의 것을 어머니가 빌어온 것이었으니.
한번 남에게 아쉬운소리 하면 일생동안 계속 비굴해질 것 같았다. 내 인생이 통째로 서글퍼질 것 같았다. 노무현 역시 다르지 않았으리라. 노무현은 어렸을 때부터 남의집 밥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노무현 인생의 대략적인 아우트라인 그려진 거다. 크게 윤곽이 잡힌 거다. 그래서 정치자금 받을줄 몰랐다. 이권거래는 못하고 대신 빚보증을 서달라는대로 서주었더니 갑자기 장수천 생기고 하로동선 생겼다.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운명. 님의 유서에 씌어진 그 ‘운명’ 말이다. 그렇다! 누구나 다 하는 것을 일생동안 하지 않기로 결정해 버리면 인생이 담백해진다. 하얗게 표백된다.
무엇인가? 노무현은 초등학교 때 급우의 가방을 칼로 그은 사건 이후 줄곧 그 부엉이 바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퇴로는 원래 없었다. 보통사람, 보통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노무현을 평가해서 안 된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식인 노무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 밑바닥 사람들은 조금씩 결함있는 사람이다. 비유하면 장애인과 같다. 벙어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다.
제목과 작가를 잊어서 유감이지만 20여년 전에 그러한 내용의 중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의 증언대에서 자신의 심장에 장미꽃 한 송이를 꽂으려 한 사람.
벙어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할 수 있었던 사람! 마을 사람 모두가 의지했던 사람. 모두가 믿고 따랐던 사람. 성직자와 같은 사람. 보통세계와 장애를 가진 특별한 세계 사이에서 중개자로 존재했던 사람!
그렇다. 노무현은 그냥 정치인이 아니라 밑바닥 세계의 대표자로 더 높은 세계에 파견된 것이다. 에베레스트의 신을 면회하기 위해 인류의 대표로 파견된 텐징 노르가이처럼. 지구인의 대표로 달에 보내진 닐 암스트롱처럼.
그래서 퇴임후에도 자신에게 반말하는 고향형님은 여전히 동네형으로 모셨고 친구 강금원과는 여전히 친구로 지냈다. 뿌리를 잊지 못한 것이다. 신분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운동할 때의 386들과 어울렸다.
장애인마을의 리더는 말로 통제하지 않는다. 어차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다루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것은 목숨을 내던지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번 사회를 향해 구난신호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신호는 지식계급 사이에서 묵살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여러번 인터뷰한 오연호만 해도 그러한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
노무현은 오연호를 언론지면을 소유한 권력자로 보고 몸을 낮추어 읍소했지만 오연호는 그러한 기미를 포착하지 못했다. 오연호는 노무현을 절대권력을 가진 통치자로 생각하고 자신을 상대적인 약자로 규정하였다.
권력자의 기세에 눌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디펜스에 열중했다. 그런 식이다. 노무현의 어휘선택 하나하나에 숨은 메시지가 있었다. 지식인 집단을 향해 여러번 손길을 내밀었으나 누구도 그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오연호가 대통령을 권력자가 아닌, 하층민세계의 대표자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지식인 집단에 파견된 사람임을 인식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지식세계의 공론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의 본심을 이해했다면.
백낙청, 한완상, 손석희, 박원순, 최장집 이런 사람들이 노무현이 하고싶은 말을 대변해 주었더라면. 그렇다. 노무현은 망국의 왕자가 선진강국에 잠입하여 그 나라의 언론과 유력자에게 하소연하려 했던 입장이었다.
헤이그에 파견된 이준열사처럼 말이다. 이준열사는 분사했다. 슬픔이 독이 되어 죽었다. 하소연 할 곳 찾지 못해서. 소통은 불통이었다. 가엾은 조선백성은 늑대같고 범같은 서구열강을 모르고 짝사랑했던 것이다.
장애인 마을에서는 말로 떠들지 않는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니 바로 행동 들어간다. 장님이 모르고 뜨거운 물을 만지려 한다면 바로 몸을 날린다. 그것이 체질화 되어 있다.
위기는 언제라도 찾아온다. 응급실 의사처럼 24시간 긴장상태. 노무현은 검찰의 조사를 당하여 사회를 향해 구난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미래를 예감하고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여기가 응급실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환자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해서는 통하지 않고 바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일깨우려 했던 것이다. 말로 가르쳐서는 안 되고 행동으로 실천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봉하마을로 내려갔고 너무 서둘렀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조금 늦추기를 희망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너무 떠들썩하게 진행되었다. 너무 크게 진행되었다. 촛불시위는 너무 일찍 터져나왔다.
노무현의 인기는 너무 빠르게 치솟았다. 봉하마을은 방문자들로 미어터졌고 전직대통령의 인기가 현직대통령을 능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사실상 네티즌의 심리로는 대선불복 상태였다. 상황은 꼬여버렸다. 모든 것을 조금만 느리게 진행했다면. 좀 천천히 내려가고, 좀 천천히 사저를 건축하고, 좀 천천히 오리를 키우웠더라면.
이명박 임기 좀 지나서 촛불시위가 터져나왔다면 달라졌을 터인데.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정국이 요동쳤다. 촛불은 거세게 타올랐고 이명박은 집권허니문을 가져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모든 재난이 노무현의 배후조종 때문이라고 여겼다. 바로 파국으로 치달았다. 상황은 엄중해졌고 다들 노무현의 존재를 계륵으로 여겼다. 왜? 그 순간 노무현의 죽음은 모두에 이익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죽으면 이명박도 잠자리가 편치는 않을건데.’ 여러 사람들의 희망이 모여서 노무현을 죽였다. 이 표현 오해말기 바란다. 님의 죽음을 바란 사람 없겠지만 님은 자신의 존재가 모두의 짐이라 여겼던 거다.
노무현이 떠나자 사람들은 곧 원기를 회복하고 대오를 정비하며 목청도 높게 대여공세에 나섰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잘 알고 있다는듯이. 기다렸다는듯이. 울어야 할 사람은 준비한 울음을 터뜨렸다.
글 써야 할 사람은 준비된 명문을 발표하였다. 냉소할 사람은 준비된 냉소를 날려보냈고, 망언할 사람은 준비된 망언을 때맞추어 절묘하게 터뜨렸고, 탄압할 사람은 준비된 폭력을 휘둘렀다.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듯이. 다 대비하고 있었다는듯이.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게 아니냐는 듯이. 인형극의 꼭두각시처럼 정해진 역할을 잘도 해내는 것이었다. 일터지기 전에 알아채지는 못하고 말이다.
슬프다! 꿈 속에서 봉화산 사자바위 위에 선 님을 여러번 뵈었지만 나 역시 어쩌지 못했다. 원통하다. 오백만 조문인파 그 긴 행렬을, 그 뜨거운 눈물을 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데 몸버린 당신께서는 보지 못한다.
당신께서 보지 못하니 앞으로 탄생할 제 2의 노무현들에게 미리 보여줄 수 밖에. 보거라! 역사상의 그 많은 영웅들의 죽음이 그러했듯이 이 나라에도 진정한 사람 하나는 있었고 사람 사는 역사는 원래 이러하다고.
노무현은 특별한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밑바닥경험을 해보면 알게 된다. 비열하고 거친 모습도 보게 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또다른 논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웅은 밑바닥에서 나온다.
왜? 전체과정을 알기 때문이다. 말로 이기고 논리로 이겨서는 소용없고 삶으로 이겨보여야 대중이 따른다는 사실을 안다. 노무현은 밑바닥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그것이 님의 정치인생을 결정지었다.
상민계급출신 백범이 지체높은 양반출신으로만 짜여진 임시정부에서 문지기 역할을 자처한데서 보듯이 상류계급과 문화충돌 일으키는 밑바닥 출신은 목표를 향하여 바로가서 안 되고 한바퀴 돌아서 가야 한다.
서울을 노리면 먼저 부산을 찍고와야 한다. 내가 원해서 좋은 자리 가서는 안 되고 남들이 밀어올려주어서 등떠밀려 가야한다. 혼자 가서 안 되고 대중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 이치를 아는 것이다.
나는 대통령께서 당선되기 이전에 이미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유서의 ‘오래된 생각이다’는 표현에서 그 오래가 1년이나 2년은 아니다. 10년이나 20년은 아니다.
당선직후 ‘1년 안에 청와대에서 죽어나올수도 있다’고 측근에게 하신 말씀이 결코 예사말은 아니다. 예감하고 있었다. 님은 승부수를 던진 적이 없다. 처음부터 벼랑 끝에 서 있었고 거기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애초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야하든가 치고나가든가. 최저 15프로 지지율에 정몽준 30퍼센트를 더했더니 5프로가 더 묻어와서 과반은 넘겼다. 그러나 당선직후에 지지세력 절반이 날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당선 이전이다. 필자가 대통령 공식사이트 노하우 네티즌논객을 했을 때다. 백원우의원이 주선했던 논객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모인 논객들 중에 당선을 확신하는 자는 많지 않았다.
필자는 화가나서 ‘100만원 걸고 내기하자’고 소리를 질렀다. 논객들 사이에 사나운 공기가 감돌았고 어떤 자는 트집을 잡아 내게 주먹을 들어보이기까지 했다. 그 자들은 당선직후의 모임에서 웃으면서 말했다.
“아시죠! 자 우리는 갑니다.”
그 더러운 썩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취임하고 한 달이 되기 전에 이미 가장 악랄한 노무현 비판자가 되어 있었다. 정권출범 직후 광화문 근처 중국음식점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오늘 모임이 ‘최후의 만찬’이라고. 나의 예견이 맞았다. 다음 모임에는 일곱명 정도 나왔고 결국 모임은 해체되었다고 들었다. 청와대 비서가 밥사준다는데도 다들 거부했던 것이다. 님의 죽음은 그때 이미 예고되었다.
당선 자체가 죄였다. 모든 잘못은 노무현의 당선 때문에 일어났다. 그들 지식인의 익숙한 포지셔닝 게임 룰로는 당선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당선되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한 내막을 모를 리 없다.
당신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람을 모았다. 그러나 다들 노무현을 찌를 한 방을 숨기고 찾아왔다. 청와대수석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시민단체 수장들이 청와대 찾아와서 대통령 앞에서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시민단체로 돌아가서는 다들 허풍을 떤다. 대통령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해놓고 시민단체 사람들 앞에서는 보란 듯이 허풍을 친다.
“내가 말야! 이보시오 노무현 대통령! 정치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하고 호통을 쳤지. 푸하하.”
지식인집단은 전후사정을 헤아려서 노무현을 도와야 했다. 앞못보는 사람이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려고 한다면 바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한가하게 말했다.
“이보시오. 당신 그러다가 후회할거요.”
그러다가 노무현이 다치자 그들은 말했다.
“이보시오. 내가 후회할 것이라고 경고하지 않았소?”
지식인집단의 그러한 방식은 진정성 없는 거다.
노무현식 정치는 노무현 본인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것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에서 발버둥이나 쳐보고 죽자는 것이 노무현식 대응이었다. 민심이 그러한 사정을 포착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왜 노무현의 지지율이 롤러코스터를 탔는가? 민중들은 본능적으로 그러한 것을 안다. 지식인은 모르는데 민초는 안다. 말 안해도 안다. 이심전심 안다. 벙어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하는 사람이 가진 원칙을 안다.
그래서 노무현의 인기는 지식인집단이 우려할 정도로 과도하게 올라갔다. 지식인집단은 노무현이 우매한 민중을 광기로 몰아간다고 믿었다. 그리고 견제 들어갔다. 필요이상으로 노무현을 공격했다.
왜? 대화가 안되니까. 지식인집단 특유의 짜고치는 게임의 법칙을 노무현이 따르지 않으니까. 계속 엇박자가 일어나니까. 서로간에 이렇게 안 통한다면 누가 누구에게 맞춰주어야 하겠는가?
보통사람의 의식을 규율하는 논리가 있다. 그것은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상대성 원칙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보아가면서 자신의 대응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좋게 나오면 나도 좋게 나오고.
상대가 나쁘게 나오면 나도 강하게 맞서고. 그러나 벙어리마을에서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절대성원칙을 가진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나는 이렇게 한다’는 규칙을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그래야 마을이 돌아가고 문제가 해결된다. 상대방이 좋게 나오면 나 역시 좋게 대하고, 만약 상대방이 나쁘게 나오면 저 사람은 더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더욱 성의를 다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일관된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벙어리 마을은 바로 붕괴되고 만다. 이는 내가 밑바닥 세계를 경험하고 터득한 것이다. 나는 노무현 역시 그 이치를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보통사람들과 다른 규칙을 가진 다른 사람이며 이 사회의 지식인집단이 그 다름을 알아채지 못한데 이 슬픔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보배가 많지만 사람만큼 큰 보배가 없다.
보통사람은 흔하다. 노무현 같은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은 희귀하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 사람 더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밑바닥에서 최고의 세계까지 관통한 사람 말이다.
다들 알아보는데 보배를 알아보야 할 감정사들이, 지식인들이 알아보지 못했다. 노무현은 뜻을 품었는데 그 뜻을 민중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할 지식인들이 그 뜻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몸을 던졌다.
- 님의 49재에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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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내용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있어 몇 자를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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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길지만 단숨에 읽히는 힘이 있는 명문이다. 내 생각과 비슷하고, 내가 올린 글-내가 사랑한 사람-고 노무현 전 대통령(2)-과도 유사점이 많아 펌하여 올려본다.
김동렬의 언어는 에둘러 비껴가는 법이 없다. 단도직입, 쾌도난마, 일이관지. 갖잡은 생선처럼 신선하고 비리다. 그의 글은 힘이 있고 직관적이며 매우 선동적이다. 디테일에 연연하지 않고 잡스러운 것은 원천무시한다. 개인적으로 나와 맞는 스타일, 나와 같은 성격은 아니나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과 주체적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 양식을 완성한 글쟁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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