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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상을 똑바로 서게 하라! (저울 없는 칼은 폭력 - 루돌프 폰 예링)

어멍 2023. 6. 26. 21:18

 

정의의 여신상을 똑바로 서게 하라!

저울 없는 칼은 폭력 - 루돌프 폰 예링

 

정의의 여신상 - 런던 중앙형사재판소

 

    주로 법원 근처를 중심으로 세계 각처에는 정의의 여신상(Lady of Justice)이 세워져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정의의 여신인 ‘디케’, ‘유스티티아’를 본 따 법의 정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형태가 제각각인데 대략 공통적인 구성요소와 그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울. 형평을 의미한다. 둘째 칼. 단호함을 의미한다. 셋째 눈가리개. 주관, 선입견을 배제함을 의미한다. 이상이 주로 거론되는 특징들이다.

    이외에 내가 받은 인상을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넷째 대개가 꼿꼿이 우뚝 서있는 입상이다. 아마도 (힘들더라도) 방심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항상 부지런히 긴장하고 깨어있으라는 의미라 생각된다. 다섯째 표정이 결연하고 근엄하면서도 무심한 듯 무표정하다. 법의 권위와 엄정함을 의미한다 생각된다. 여섯째 각각의 구성요소가 서로 직각을 이루고 있다. 다소 경직된 듯 부자연스럽긴 한데 같은 맥락으로 법의 엄정함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최초로 디케나 유스티티아를 형상화한 아주 오래된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면 눈도 가리지 않고 저울이든 칼이든 아예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신이니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굳이 인간처럼 눈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모든 것이 해석하기 나름,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지만 한번쯤 곰곰 생각할 여지가 있는 상징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의의 여신상의 형태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꼿꼿이 우뚝 서있을 것. 둘째 팔 몸통 다리를 비롯한 각각의 구성이 모두 직각을 이룰 것. 셋째 무표정할 것. 넷째 눈가리개를 할 것. 다섯째 저울과 칼을 같은 높이에 같은 크기로 같은 가중치를 줄 것. 여섯째 머리카락과 옷자락은 정면(혹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거세게 휘날릴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강조할 것) - 이다.

    첨언하자면 저울로 단 다음에 칼을 휘둘러야 하고 개인적으로 저울이 더욱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므로 굳이 선후, 우열을 가리자면 저울을 칼보다 높이, 좀 더 앞으로 배치하는 것도 괜찮겠다싶다. 저울(형평)없는 칼(단죄)은 그 자체로 폭력이자 악으로 세상을 더욱 나쁘게 만들 뿐이다. 저울 없이 휘두르는 칼, 고장난 저울을 흔들며 선택적으로 휘두르는 칼은 악의 흉기다.

 

상기한 조건에 가장 근사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양에 가장 가까운 정의의 여신상

 

    상기한 조건, 상기한 여신상에 비하면 우리 대법원에 세워진 앉혀진 정의의 여신상은 아쉬움이 크다. 무턱대고 외국 것, 남의 것만 쫓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고 조각상 하나가 뭐 그리 대수냐고 반론할 수도 있지만 대법원의 여신상은 미적으로도 아름답지 않고 철학적으로도 빈곤함을 드러내고 있다.

 

좌판에 앉아 물건을 파는 아줌마처럼

왠지 어색한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온화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띤 채, 두 눈을 가리지 않고 오른손으로 저울을 들고 왼손으로 칼 대신 법전을 품에 안고 편안히 앉아있다.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칼은 검찰에 맡긴 것인가? 혹자는 법전이 아니라 챙겨야 할 고객인 재벌 등 권력자,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제 식구의 이름이 적힌 명부라고 비꼬기도 한다. 실재로 이러한 냉소와 비판이 설득력을 가질 정도로 현재의 법조삼륜(판사, 검사, 변호사)이 시민들에게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외양보다 실질,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음식을 담으려면 그에 맞는 그릇부터 준비하는 게 순서고 중요하다. 흉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대법원에 앉아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외관도 볼품없고 그 안에 담긴 정신도 너무 빈약하고 초라하다. 어떻게 바꾸든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새롭게 들어선 정의의 여신상을 보며 법정에 들어서는 대법관이 한번쯤 법의 정신을 더 새롭고 또렷하게 되새길 수도 있지 않을까! 대법원에 견학 온 어린 학생들에게 더 큰 울림과 더 깊은 영감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법무연수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 대법원 것보다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