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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大望)》 10권 리뷰

어멍 2016. 3. 17. 21:54

 

    《대망(大望)10권 리뷰

 

 

    이에야스는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하던 히데요시에게 어떤 동경을 품고 있었던 듯했다. 자연스럽게 누구의 어깨나 툭툭 치며 흉금을 털어놓는...... 그런 대인관계를 히데요시는 할 수 있어도 이에야스는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선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오히려 인간을 경박하게 만들어 합리적인 선에서 이탈시키기 쉽다고 반성한 모양이다. 따라서 밤에 잡담할 때도 설교하는 버릇에 어떤 중후함이 더해졌다. 그렇게 되자 자기 자랑을 섞은 그 설교가 이상하게도 어떤 장엄한 경문처럼 들리곤 했다. (258p)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천성적인 활력과 사교성과 솔직함이 있다. 그 활력은 대상에게까지 생기를 전해주고 그 사교성은 무의식중에 무장해제하게 하며 그 솔직함은 상대가 당황하여 어리둥절할 정도다. 이에야스와 만나 자신이 진정 두려워하는 이는 일본에 이에야스 한 명 뿐이며 당신이 동쪽에 있어 서쪽 정벌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이에야스는 그런 히데요시를 선망했다. 자신은 그런 면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어둡거나 흐리지 않고 밝고 투명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하고 기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글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게 무식했다. 단지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와 격()이 부족했다.

    이에야스의 눈에는 이런 히데요시의 통치가 시원시원하기는 했지만 경박했던 면이 있었던 것이다. 히데요시 사후 그 측근세력들 간의 분열과 혼란상의 원인도 여기에 있고, 따라서 한 나라를 안정적으로 몇 세대에 걸쳐 운영하려면 반드시 예와 격을 갖추어야만 한다고 본 것이다.

 

    개인차원이라면 좀 무식하고 품격이 없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다. 학자, 연구직 등 내향적 직업이 아닌 사업가, 정치인 등 외향적 직업인 경우 오히려 이런 스타일이 성공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을 거리낌 없이 대하고 다른 사람들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어 일을 도모하기 쉽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 몇 마디 나누고 대뜸 언니, 동생 하는 사람이 있다. 술 몇 잔 나누고 형님, 아우 하는 사람이 있다. 좋게 말하면 넉살 좋고 붙임성 있는 사람들, 나쁘게 말하면 얼굴 두껍고 비위 강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나 낯을 심하게 가려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업가나 정치인은 대략 난감이다. 표 달라고 와서는 구석에 쭈뼛쭈뼛 숨어있어서야 보기에 안타깝고 애잔할 뿐! 동정을 얻을 순 있어도 든든함은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너무 들이대면 경계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으로는 싹싹하고 친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속이고 해칠 궁리만 하는 사기꾼들도 있다. 낮에는 잠바떼기에 자전거 타고 시장통을 돌며 주민들과 부둥켜안고 파안대소 하지만 밤에는 고급 술집에서 양복입고 술잔을 기울이며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어쨌든 개인적 성공을 위한 처세술로도 좋고 살갑고 친절한 명랑사회도 좋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넉살과 수완이 좋아 하는 일마다 막힘없이 성공한대도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예의와 품격이 있어야 한다. 다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라면 보다 깊은 철학과 가치와 이념이 있어야 장구할 수 있다.

 

경박하지만 넉살과 수완이 좋아 대박이 난 사나이

하지만 의미 있는 어떤 것도 남기지 못한 사나이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이에야스의 말은 나날이 중후하고 장엄해진다. 설교인 듯 훈시인 듯 경문인 듯 길고 지루하다. 게다가 자기 자랑까지 곁들인 일방적인 교훈이나 지시였으니 다소곳이 듣고만 있기엔 여간 고역이 아니다. 당대의 권력자인 동시에 현인이기도 하였으니 작정하고 들으면 큰 도움과 즐거움까지 있었지만 일면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처럼 이따금 울화통이 터질 정도로 괴로운 면이 있었다.

    이에야스의 말이 이렇듯 길고 진지하고 지루해진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본인의 저물어가는 인생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단계에서 갖은 풍파를 겪으면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어떻게든 후세에 전해주고 싶다. 나라와 민족과 가문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나 깨나 노심초사다. 이에야스는 그 경험과 지위와 성품으로 볼 때 그만큼 오지랖이 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르신들이 말씀이 많으신 것, 투표에 꼭꼭 참가하시는 것이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오(正誤)를 떠나 자신의 경험과 가치를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자손들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덧붙여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지고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참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분들의 유일한 낙이자 삶의 의미다! 그래서 미주알고주알 잔소리가 길어지신다. 낼 모래 숨이 넘어가더라도 아들딸들을 위해 목발 짚고 휠체어 타고 투표장으로 향하신다.

    선의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지혜가 아닌 잘못된 고집인 경우도 많고 지혜로운 말씀이라도 지혜로운 방식이 아니라면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이들의 장래를 살아갈 날이 적은 어르신들이 결정하고 강제한다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한 면이 많다. 60대 이상의 높은 투표율에다 인구구조의 급격한 노령화로 인하여 이러한 정치적 세대갈등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아부지! 이만하면 지 잘 살았지예?!’ -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의 독백이다. 이북에서 부산으로 피난 와 졸지에 어린 가장이 된 주인공이 갖은 고생을 하여 가족을 멕여살리고 결국 어엿한 일가를 이룬다는 이야기로 50대 이상의 장년, 노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며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다. 주인공은 순박한 측면도 있지만 배운 것 없이 억세고 무식하다. 가장으로서의 희생정신과 책임감도 엿보이지만 가부장으로서의 권위의식과 고집도 세다. 바로 이 땅의 60대 이상의 평균 남성들의 모습이다.

    (한평생) 잘 살았다고 칭찬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윗세대인 아버지는 이제 안 계시니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것은 자손들, 다음세대들이다. 보기에 아는 것 없이 천방지축 불안불안하다. 게다가 늙은이라며 무시한다. 지들이 누구 덕에 이만큼 먹고살게 되었는데... 젊은 것들 앞세워 난 데 없이 노무현이란 놈이 튀어나와 정권을 잡으니 자신이 모욕당한 것 같다. 일평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듯 허무하다. 이들은 노무현이 밉다기보다는 괘씸하다. 이들은 고생한 것보다 그것을 몰라주는 것이 더 억울하고 섭섭한 것이다.

 

    “여러분! 이만하면 나 잘 살았지요!!” - 그래서 독백이 아닌 웅변이 된다. 설교가 되고 훈시가 된다. 집안에 있던 훈장을 대문밖에 걸어두었다. 자손들을 꿇어앉히고 자기 자랑을 섞은 옛날이야기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 그래서 세간에 떠도는 잠언(^.^)이다. 몸을 배배 꼬며 잔소리듣기 힘들어하는 참을성 없는 젊은이, 참견보다 용돈을 환영하는 이기적인 자손들이 바라는 바다.

 

    “어르신들은 좀 더 귀를 열어야 하고 젊은이들은 좀 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 비슷한 맥락으로 유시민 작가가 한 말이다. 자기주장, 자기고집만 하지 마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얼마나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특히 젊은 신진세대)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젊은이에게 아쉬운 건 역시 깊이다. 정의롭고 지혜로운 젊은 신세대들도 많지만 세상풍습의 영향인지 너무 가볍고 얕은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역사공부만큼 좋은 건 없다. 위대한 현인들과 조상들, 갖가지 인간군상의 언행이 담겨있는 지혜의 보고(寶庫).

 

    유시민 작가의 말은 결국 이것이다. 말하기보다 듣기요, 이해시키기보다 이해하기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의 주장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젊은이들은 어르신들, 조상들의 역사를 귀 기울여 들어서 상호 이해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곧 윗세대와 다음세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와 소통이다.

    찬성, 반대 이전에 그렇게 주장하게 된 동기,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게 된 연유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해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해시키기는 훨씬 수월할 것이다.

 

    한 가정으로 좁히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다. 자녀는 부모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유언과 선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남은 생의 기쁨이며 보물로서 소중히 듣고 간직해야 한다.

    부모님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뜨실 것이고 자녀는 오래지 않아 내 품을 떠날 것이다. 이렇듯 함께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며, 듣고 말하며 대화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우리 아버지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자식들의 말에도 귀 기울여 주세요.

 

    이전에는 이 언저리까지 히데타다가 곧잘 마중나왔으나, 쇼군직을 물려준 뒤로는 이에야스가 금했다. 효도는 인륜의 으뜸가는 미덕이지만 공과 사의 구별은 엄격해야 한다. (378p)

 

    ‘이 언저리는 에도가 코앞인 스즈가모리. 에도막부를 세운 이에야스는 2대 쇼군을 아들 히데타다에게 물려준 후 슨푸에 은거하며 오고쇼로 불린다. 아직 막후 실력자, 최고 권력자로 실권을 놓지 않았지만 일상적 정무를 쇼군에게 맡기며 권력의 중심을 서서히 이동하려 한다.

    둘의 부자관계는 나쁘지 않다. 이에야스는 아들 히데타다를 존중하여 쇼군에게 힘을 실어주려 하고 히데타다는 중요결정에서 아버지 이에야스에 앞서 결코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지 않는다. 히데타다는 자신의 자질이 아버지에 턱없이 모자라는 것을 깨닫고 매사에 아버지를 전폭적으로 믿고 따랐던 것인데 이는 단순한 의무와 도리로서의 효심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가졌던 존경심이었던 모양이다.

    이렇듯 권력이동이 순조로운 것은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흔치 않은 광경이다. 역사를 보면 근대이전에는 피바람이 불 정도의 극한 갈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영조와 사도세자, 선조와 광해군의 갈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아버지와 구세력, 장성한 아들과 신진세력과의 권력의 중첩이다. 철저한 준비와 스케줄로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적당한 시점, 적당한 속도로 권력을 순조롭게 이양해야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 이 경우 대부분의 책임은 아버지와 구세력에게 있다. 그들에게 주도권,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불상사를 방지하고 상황을 관리할 책임은 권력의 처소에 있다.

    아들은 몇 십 년째 왕세자, 아버지는 몇 십 년째 왕이다. 더구나 같은 궁궐 안 임금의 강녕전과 세자의 동궁은 걸어서 지척이다. 이러면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다. 같은 공간에서 맹렬히 마주 도는 두 팽이처럼 부딪힐 수밖에 없다. 권력이 중첩되는 시기가 너무 길다면 물리적으로라도 공간을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그래서 붙어있던 영조와 사도세자는 이를 극복치 못하고 파국을 맞았다. 태조 이성계는 자의반 타의반 함흥으로 은둔했다. 선조와 광해군의 갈등은 붙어있을 때보다 전란으로 인해 떨어져 있을 때 덜하였다. 슨푸의 이에야스와 에도의 히데타다는 역할과 공간을 분담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과의 갈등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유 의원이 괘씸해서 날려버리려는 게 아니라 같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냉혹한 권력관계다. 대구경북이라는 나와바리를 서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과의 갈등이다. 박 대통령이 TK를 진박으로 채워 독식할 순 있겠지만 스스로 갇힌 꼴이 되어 수도권에선 참패할 수도 있다.

 

영화 <사도>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역할이 중첩된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적 이야기

 

    포기할 수 없는 닫힌 공간, 도망칠 수 없는 닫힌 공간에서 갈등은 극에 달해 비극으로 치닫는다. 소설과 영화 등이 이런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 것도 이곳에서 인간갈등이 압축되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물론이고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윤태호 작가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강우석 감독의 <이끼> 등이 다 이런 부류다. 모두 섬, 농촌, 궁궐, 군대, 낚시터 등 닫힌 공간이다.

    최근에 있은 농약 사이다, 농약 소주 사건도 마찬가지! 좁은 농촌에서 죽일 만큼 미운 사람을 아침저녁으로 마주친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는 도무지 피할 수가 없다. 작은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눈덩이처럼 불어만 간다. 이 갈등은 이제 누구 하나 죽어 나가기 전에는 해소되지 않는다. 내가 죽던지 니가 죽던지다. 그래서 관계가 친밀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더욱 엽기적이고 잔인한 비극이 일어나곤 한다.

 

    아무리 우애 좋은 자식들이라도 어느 정도 성장하면 각방을 주어야 한다. 아무리 효성 깊은 자녀, 자애로운 부모라도 같이 산다면 독립된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라도 자기만의 영역을 상호 존중해야 한다. 꼴사나울 정도로 깨가 쏟아지는 사이라도 한여름엔 상대의 땀과 체온이 부담스러운 법! 좁은 싱글에서 1365일 편안한 잠을 청할 수는 없다.

    이는 물리다. 법칙이다. 모든 인간관계엔 최소한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이웃, 사촌, 부부, 부모자녀... 친밀할수록 더욱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친밀한 사이도 소모적이고 폐쇄적인 닫힌 공간이라면 비극적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갇히면 죽는다. 구석에 몰려 외통수에 걸리면 죽는다. 좁은 공간에서 중첩되면 곤궁하다. 넓게 벌려 공간을 확보하고 어떤 경우든 외부로의 숨구멍을 열어놔야 한다.

 

    나가야스는 여행하며 노는 사나이지 집에서 함께 살 상대가 못되었다. 그의 분방하고 재미있는 성격도, 활달한 공상도 모두 놀아나는 상대에게만 비춰지는 특이한 광선이었을 뿐, 처소에 돌아온 총감독관 오쿠보 나가야스는 실로 옹색하고 소심하며 사대주의적인 하찮은 폭군에 지나지 않았다. (407p)

 

    같이 살고 있는 오코의 눈으로 본 나가야스다. 나가야스는 금광채굴 등 재정 쪽 일을 맡아보는 이에야스의 가신으로 재주는 뛰어났으나 덕이 부족한 재승박덕형 인물이었다.

    오코가 보기에 그에겐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할 뜻은 없고, 더러운 세상을 교묘히 헤엄쳐 나가려 버둥거리는 묘한 오기만 보였다. 그녀에겐 오쿠보 나가야스는 남편으로 존경하고 감격할 수 있는 상대가 못되었다. (408p)

 

    남자든 여자든 연애하기 좋은 상대가 있고 결혼하기 좋은 상대가 있다. 쾌락을 얻기에 좋은 상대가 있고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함께 가꾸고 나누기에 좋은 상대가 있다. 누구나 그런 삶, 그런 배우자를 꿈꾸고 원하지만 말초적 쾌락과 진정한 행복을 구별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외적 욕망과 내적 소망을 구별치 못하고 실수한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선 재미있는 성격의 상대는 많이 부족하다. 준수한 외모, 강한 생활력과 경제력을 갖춘 상대 역시 많이 부족하다. 그나마 남녀 간의 사랑, 순수한 인간적인 호감이 있어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젊은 시절의 왕성한 호르몬이 작용한다면 웬만한 이성은 다 멋져 보인다.

 

    거기에 감격을 줄만한 존경할 구석이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의 조건으론 사랑만으론 부족하고, 사랑뿐 아니라 존경할만한 구석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어야 만족하고 안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말이 쉽지 이런 상대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겉멋에 혹하고 욕망에 휘둘려 상대를 선택하는 잘못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나마 큰 불행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망(大望)10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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