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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노무현(&후기)

어멍 2009. 7. 4. 23:15


    서거 1년 전인 2008년 5월 24일 봉하마을에서 있었던 방문객과의 인사를 방문객 ‘무한대’님이 촬영하여 서프(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69448 )에 올린 동영상이다. 몸은 고달프지만 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행복해하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씀에 마음이 아프다. ㅠ.ㅠ







 




 

- 후기 -


    관계.

    사람은 관계로서 존재한다.

    무인도 외딴 섬에서의 영원한 관계없는 삶은 인간에게 아무 존재가치, 존재의미가 없다. 고독에 가슴을 치다가 언어도 퇴화하고 사고와 감성까지 무디어져서 결국엔 외로움마저 느끼지 못한 채 심장은 마지막 박동을 멈추고 그 위로 해가 지고 파도소리가 밀려올 것이다.


    만남.

    관계는 만남으로 형성된다.

    가슴설레였던 첫 사랑과의 첫 만남, 신생아실에서의 아가와의 첫 대면, 매일매일 스쳐지나가는 이름 모를 옷깃들과의 만남, 10년을 기다려 천리길도 마다않고 찾아가 만나는 만남...

    우리는 이렇게들 만나기도 하고 책으로 기사로 영상으로, 소문과 평판으로 만나기도 한다.


    누가 우리를 못 만나게 하였는가. 누가 우리를 떼어놓고 중간에서 이간질해 관계를 꼬이고 파탄나게 하였는가. 누가 우리로 하여금 돈 없고 못생겼지만 살림 잘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다정했던 조강지처, 며느리를 내쫓게 만들었는가.

    또다시 조중동이다. 결론은 조중동이다. 원흉은 조중동이다.


    노무현은 우리를 만나려 했다. (정말로) '직접' 만나려 했다. 그것이 그의 죄이다. 그것도 죽음으로서 값을 치러야만 했던 반역죄이다.

    그는 대의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라는 고상하고 어려운 미사려구로 포장되어 기득권엘리트들에 의해 운용되고 유지되는 앙시앙레짐에 일검단심(一劍丹心)만 갖고 도전했던 쾌남아였다. 조선왕조로 치면 왕정자체를 부정했던 대역죄인인 셈이다.


    그가 그 세계, 그들만의 이너서클을 우리에게 고발했다. 정치가 더럽다 막연히 말하지만 시민들은 그 더러운 실상에 진저리를 쳤다. 너무 더러워 그 실상에 무감각해지며 부정하고 싶었고, 한편으론 깨끗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마저 부정하며 체념하고 정치자체를 외면하고 싶었다. 어디서 난데없이 (노무현이라는)미꾸라지 한 마리가 나타나 가뜩이나 더러운 정치판을 밑바닥까지 헤짚어 흙탕물을 만들어놓으니 피곤하고 혼란스럽고 짜증 이빠이다. 그 사이 그의 적들은 옆구리를 찌르고 뒷통수를 치며 칼을 갈아왔다.


    그들은 누구인가? 거간꾼들이다. 정치를 배달하고 정보를 배달하는 중간상인들. 중간에서 속여먹고 빼돌리고 지들끼리 담합하고. 비단 조중동, 한나라당만이 아니다. 재벌, 관료, 군인, 학원, 지역유지 토호까지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겨레, 경향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일부 정치자영업자 역시 노무현의 죽음에 그의 시대가 갔다고, 그에게서 자유로와졌다고 쾌재를 부르며 거짓 참회와 눈물을 보였다.


    노무현의 시대, 그가 열어젖힌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진실이 드러나고, 낱알과 쭉정이가 나누어지며 가짜가 배겨날 수 없는 시대이다. 시민의 각성, 시민의 참여, 시민과 직접 만나고 직접 거래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시대다. 기득권자인 중간상인에겐 이윤이 줄고 설자리가 좁아지는, 밥줄이 끊길 위협인 동시에 시장혁명, 민주주의 혁명의 완결판이다. 시민세력이 권력을 쟁취하고 정보를 직접 생산하고 유통시키며 종국엔 시장자체(돈)까지 장악한다면 그들에겐 시쳇말로 죽음이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앓던 이요, 두고두고 후환이 될 잠재적 폭발력을 가진 위협이었다. 예상 밖의 추모열기가 몹시 거북하고 당황스럽겠지만 그들에겐 잠시잠깐, 곧 원기를 회복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하던 일을 도모하려 할 것이다.




7월 3일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깐 들러 시민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 이명박 대통령

생전에 봉하마을에서 방문객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쩍 청와대의 민생대면접촉이 늘었다. 시장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다 일반시민과 말을 섞고 사진을 찍고 노무현 대통령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의 입장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국민장을 거치면서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모질고 잔인한 정치보복의 이미지를 희석, 불식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문동 시장에서의 행태를 보면 소통하면 소통할수록 그 본래 정체, 밑바닥만 드러날 뿐이다. 평소 노동자, 시장상인 등의 천한(!) 서민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적대시하는 사고와 행태를 볼 때 대통령 본인에겐 고역이요 내켜하지 않는 듯한 인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국민과 소통하고 만나고 싶어했지만 대통령의 행차가 피해를 줄까봐, 구체적 정책없이 쇼만 하는 것이 미안하다면서 민생행보를 자제하였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내키진 않지만 참모들에 떠밀려서 사진찍고 홍보하기 위해 억지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너무 엉성하고 무성의하다.


    나는 이전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우습고 창피했다. 지금은 뭐랄까. 무서운 것도 아니고 혐오스러운 것도 아니고......오싹하다. 귀신도 아닌 것이, 헛것도 아닌 것이, 인간의 모습,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취임초기 전임대통령을 예우하는 전통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뒤로 하고 대통령 기록물 유출을 빌미로 참여정부 참모들이 불려가고 조사받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중히 편지를 보낸다. 모두 자신의 지시, 자신의 소관으로 참모들을 괴롭히지 마시라고. 일언반구 대꾸가 없었다. 검찰수사와 언론의 마녀사냥이 한창일 때 이명박 대통령은 스촨지진 중국아이를 안아 위로했고 장애인 공연을 보며 눈물 흘렸으며 농촌 모내기 체험을 하며 평소 일정과는 다르게 유독 딴전을 피우며 이미지 쌓기에 바빴다. 대놓고 하는 이중플레이! 너무 비열하고 너무 뻔뻔하고 너무 모질고 너무 잔인하다. 그래서 그를 보면 오싹하다.

    요즘은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상득 형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유인촌 문화부 장관, 이인규 중수부장의 얼굴에서도 오싹함을 느낀다. 그들은 이명박들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포로가 되어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허우적대며 소수 과두세력만의 지배를 꿈꾸는 이명박들! 그렇다! 그것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이 총체적인 앙시앙레짐의 오싹한 얼굴이다.


    인간의 얼굴이 그립다.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그립다. 그는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었고 우리의 몸짓, 우리의 언어로 말했으며 기꺼이 양말을 벗고 우리와 함께 맨발로 흙속에 발을 담구었다. 그의 처음은 우리로부터 나왔고, 그의 마지막은 우리속으로 되돌아왔다. 저 높은 곳에서도 그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문 밖에 있었다. 그는 수없이 문을 두드리고, 손을 내밀었지만 우리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제는 그를 만날 수 없다. 책으로 만나고 영상으로 만나고 기억으로 추억으로 만날 수 있데도 아쉽고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그의 주름 짙은 얼굴을 볼 수도, 그의 구수한 육성을 들을 수도 없다. 그가 우리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생전에 누누이 강조했던 것처럼 각성한 시민, 항상 자신이 대통령, 최종결정권자라는 입장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라는 말 아니었을까. 그러면 적어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조중동 기사를 무한반복하며 정치꾼들에게 휘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49재때 세워질 노무현 대통령의 ‘아주 작은 비석’에는 고인이 생전에 했다는 다음의 말씀이 새겨진다고 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