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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大望)》 34,35,36권 <언덕위 구름> 리뷰 - 3편 : 쓰시마 해전

어멍 2026. 4. 27. 19:39

《대망(大望)34,35,36<언덕위 구름> 리뷰

- 3: 쓰시마 해전 -

 

 

 

    1905527일 일본 연합함대와 러시아 발트함대 간에 쓰시마 해협에서 벌어진 첫 전투 이후 다음날까지 동해(일본에서는 일본해)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해전으로 러일전쟁 승패는 사실상 결판난다. 그때까지의 경과를 살펴보면...

 

    요동반도 끝 여순항에 있는 러시아의 여순함대와 그 배후 러시아 극동군에 대항하여 일본은 도고 헤이하치로를 사령장관으로 하는 연합함대를 황해로 출정시키고 오야마 이와오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육군을 요동에 상륙시킨다.

    노기 마레스케의 제3군이 큰 출혈을 감수한 난전 끝에 러시아의 여순 요새를 함락하여 여순항에 숨어든 여순함대를 격파한 후 북진하여 크로파트킨의 러시아 극동군과 싸우고 있던 1,2,4군과 합류하여 봉천회전에서 승리한다.

    여순함대를 잃은 러시아는 로제스트벤스키를 사령장관으로 하는 발트함대를 멀리 유럽의 리바우항에서 출발시킨다. 함대는 대서양을 남진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 동중국해를 거치는 대항해를 시작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기항으로 해서 동해와 황해에서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리바우에서 쓰시마해협까지 지구 둘레의 4분의 3에 달하는 29000km를 항해한 장장 225일간의 여정이었다.

 


    적함을 발견했다는 경보에 접하여 연합함대는 즉각 출동
, 이를 격멸하고자 함.

    금일 날씨는 맑으나 파도 높음. - 36445p

 

    진해만에서 발트함대를 기다리던 일본 연합함대가 적함을 발견하고 출정하면서 본토 대본영에 보낸 전문(電文)이다. 첫 문장은 작전참모부 이다 소령이 작성한 것이고 두 번째 문장은 사네유키가 덧붙인 것이다.

    원문은 本日天気晴朗ナレドモ浪高シ으로 당시 해군 내에선 쓸데없는 미문(美文)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손꼽히는 명문장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는데 이게 왜 미문이고 명문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일기예보 아닌가?!

 

    일본어를 공부한 바 없고 일본문학이나 문화에 대한 이렇다 할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어떤 은유나 상징, 운율이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이 문장은 앞 문장과 비교했을 때 좀 뜬금없으면서도 군대에서 쓰인 문장으로는 많이 어색하다.

    군대에서 오고가는 메시지는 되도록 구체적이면서 최대한 단순, 명확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기예보라도 날씨는 맑아 가시거리 2킬로, 파도는 높아 4미터식이다. 하여튼 이 문장으로 단순한 작전용 문장이 문학이 되어 버린 느낌이 있다. 굳이 내 맘대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금일 날씨(전투전망)는 맑으나 파도(간단치 않은 어려움)는 높음의 표현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미문, 명문 여부를 떠나서 이 문장은 문학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전투, 전쟁에서 (해상의) 날씨는 매우 중요하다. 전혀 뜬금없는 문장은 아니다. 날씨가 맑아 시계가 좋으면 적함 발견이 용이하고 놓칠 염려가 적다.

    파도가 높으면 함포사격이 어려워져 명중률이 떨어진다. 당연히 사병의 사격술, 사격 숙련도가 더 중요해진다.(실재 일본의 사격실력, 포술이 러시아보다 월등했다.) 배의 흘수선이 상하로 오르내리면서 부서진 함체 내로 바닷물이 더 들이쳐 침몰이 빨라진다. 어떻게든 적함과 빨리 만나 대규모 함대결전을 해야 할 일본해군으로선 유리한 기상 상황이다.

    결국 사네유키의 문장은 단순한 일기예보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시의적절한 명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맥락의 중요성이다. 맥락에 따라선 거친 욕이라도 멋있고 통쾌하게 들리기도 하고 고상한 단어라도 천박하고 비열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사네유키의 문장에선 다가올 전투를 앞두고 설렘과 비슷한 가벼운 긴장과 결의, 동시에 무심한 듯 경쾌한 평정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네유키는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이 문장을 작성했을까? 내가 느끼는 이 감상을 느끼고 있었을까? 그렇다고 본다! 그즈음 사네유키는 온갖 변수와 상황을 가정하고 수십,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승리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의 두뇌는 선풍기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발트함대가 혹시 태평양 쪽으로 돌아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 쓰가루 해협을 통과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지나 않을까 구두도 벗지 않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동시에 애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결전을 고대하고 있었다. 자신의 인력을 다하고 신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함의 일부라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재정비한 후 동해와 황해에 출몰한다면 제해권을 완전히 잃지 않더라도 일본의 보급선이 위협받는다. 요동의 일본군이 고립된다. 반면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로 대규모의 병력과 물자를 손쉽게 보급 받을 수 있다. 전황이 급격히 일본에 불리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대승이 필요했다. 적함을 모조리 격멸시켜야 한다. 그 일이 실재로 벌어졌다.

    쓰시마 해협에서 1905527일 오후 2시부터 벌어진 함대결전에서 일본 연합함대는 러시아 발트함대를 해질 때까지 일방적으로 두드려 팬다. 해가 진 후 일본 전함들은 북진하여 정해진 해역에서 잠복대기하며 다음날을 대비하고 대신 구축함과 소형 어뢰정들이 부서진 적함들을 이리떼처럼 근접 공격한다. 해가 밝은 다음날 28일 다시 연합함대는 부서진 채 뿔뿔이 표류하듯 도망치는 적함들을 수색, 추적하여 침몰시킨다. 이렇게 쓰시마 해협과 동해 일대에서 러시아 함대가 격멸, 소멸, 증발해버린 것이다.

 

화염에 휩싸여 침몰하는 발트함대

 

    27일 날씨는 실재로는 완전히 맑지 않았다고 한다. 파도가 높은데 최상의 기상일리는 없다. 적함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무제한의 가시거리로 날씨가 너무 맑으면 러시아측이 서둘러 달아날 수 있다.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 몇 미터라면 적함이 스쳐지나가도 알아챌 수 없다. ‘실재로 양군이 충돌했을 때 안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발틱함대가 도고 함대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진퇴유곡의 근거리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36461p)

    28일 날씨는 27일보다 맑고 파도는 더 잔잔해진다. 비틀거리며 달아나고 있는 적함을 더 빨리 발견해 더 쉽게 사격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일본에 유리하고 러시아에 불리했다. 하다못해 러시아 함대는 선체는 검은색, 굴뚝은 노란색으로 그 굴뚝에선 유연탄의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어 식별이 용이했다. 반면 일본은 바다 위에서는 가장 알아보기 어려운 회색 선체에 무연탄의 흰 연기다.

 

    천우신조라 할 수 있는 행운의 연속이었지만 그 이전에 객관적인 실력이 일본 우위였다. 신호체계, 조함술, 함포술, 지휘능력, 작전능력은 물론 전투를 앞둔 자세, 각오 등 어느 하나 러시아의 비교우위가 없었다. 러시아측은 사병은 물론이고 장교 이상 고급사관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자질, 역량이 떨어졌다. 쓰시마 해전은 전함 수, 사병 수의 하드웨어에서 승부가 난 것이 아닌 이러한 소프트웨어에서 승부가 난 것이다.

    여순과 요동에서의 육전 역시 마찬가지다. 육군 총사령관 크로파트킨은 해군 사령장관 로제스트벤스키와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방어에 급급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목숨을 부지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달아날 궁리만 했고 크로파트킨은 공을 독차지하고 패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행동했다.

    전체적으로 육해군 막론하고 러시아는 군인의 자질이 떨어졌고 이는 귀족출신의 장군 등 고급장교일수록 더했다. 모두 관료주의, 보신주의로 소극적으로 몸을 사렸다. 이는 일본인인 작가 시바의 일방적, 편파적 비평서술이 아닌 전투상황과 결과가 보여주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병사가 각개전투에서 실수하면 자신만 죽는다. 장군이 작전에 실수하면 몇 천, 몇 만 명이 죽는다. 쓰시마 해전은 일본측 작전의 승리였다. 강한 손발이 아닌 명석한 두뇌의 승리였다. 연합함대는 대규모 매스게임 하듯 바다위에서 정연한 군무를 추며 사격연습 하듯 발트함대를 때려 부셨다.

    최종 결과 총38척의 발트함대 대부분이 침몰하고 6척은 마닐라나 상해로 달아나 무장해제를 당하고 간신히 달아나는 데 성공한 것은 요트를 개조한 소순양함 1척과 구축함 2, 그리고 수송선 1척에 지나지 않았다.’(36600p) 5380명이 전사하고 함대사령장관 로제스트벤스키와 막료들을 포함해 6106명이 포로가 되었다. 일본은 어뢰정 3척 침몰에 전사 117, 포로 0명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은 믿지 않았다. 오보라고 여겼다. 요동에서의 일본군의 선전, 신승에 반신반의하던 유럽은 큰 충격을 먹었다. 러시아의 KO패 그것도 경기가 끝난 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들 것에 실려 나갈 정도의 KO패다.

    이것은 전 함대의 전멸을 각오하고 벌이는 건곤일척의 함대결전이었다. ‘두 나라가 서로 세계 최고 수준에 있는 해군의 전력을 쏟아부어 일정 수역에서 결전을 벌인다는 것은 근대 세계사상 유일한 사례로 그 이후에도 그런 예를 보지 못한다.’(36483p) ‘인류가 전쟁이라는 것을 체험한 이래, 이 싸움만큼 완벽한 승리를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 낸 것은 없었으며, 그 후에도 없었다.’(36544p)

 

    러일전쟁에서 무기, 병력, 보급은 러시아가 우위였다. 일본은 국가도 그 군대도 두께가 얇았다. 일본은 정신도 몰빵, 물자도 몰빵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병력도 포탄도 바닥을 드러낼 형편이었다. 일본의 정략은 개전초기 기선제압 후 러시아에 심대한 타격을 입혀 조기에 강화조약을 맺는 것이었다.

    이 정략이 성공했다. 일본은 몇몇 전투에서 특유의 바보 같고 고집스런 기질로 무모한 작전을 감행하여 패배도 맛봤지만 전체적으로 철저한 계산 하에 합리적으로 움직여 최종 승리를 얻었다.

 

    당시 군 수뇌부는 막부를 무너뜨리고 유신을 이룬 세대로 에도시대의 교양인으로 주자학에 근거한 합리주의자가 많았다. 원래 유교는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 怪力亂神)’처럼 신비주의를 배척하는 이성과 합리에 근거한 현실주의다.

    이들 장성에서 위관까지의 군 수뇌부가 1세대라면 이후의 2세대 일본군은 사정을 달리한다. 러일전쟁 승리 후 군국주의로 폭주하기 시작하는 일본군은 이들 선배 영감들의 합리성은 잊고 그 때의 승리의 기억만 각인, 증폭한다. 합리성은 왜소화되고 정신성은 비대화된다. 열악한 무기를 정신으로 극복하라! 그 정신은 육탄돌격의 일본 고유의 야마토 정신이다.

 

    1939년 일본관동군과 소련군이 싸운 노몬한 전투에서 일본은 러일전쟁은 이런 식으로 싸웠다며 과거를 답습한다. 결과는 패배, 일본의 야마토 정신이 소련의 기계화사단에 졌다. 그럼에도 이런 행태는 1945년 일제패망까지 이어진다. 하기야 전쟁 막바지 패색이 짙어지면 악과 깡밖에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일본인은 급변한 환경을 잘 수용하는 민족이다. 지진, 태풍 등 잦은 천재지변 때문인지 극력 저항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변화된 환경을 숙명과도 같이 순순히 받아들인다. 게다가 일본사회는 동조압력이 강하여 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민혁명은 물론 시민불복종이 설 땅이 없다. 패망한 일본은 맥아더 통치 아래 하나같이 순한 양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과거 군국주의를 추억하는 일부 극우파시스트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조선은 러시아가 점령했을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조선이 러시아 또는 여러 열강과 우호적인 관계 하에 그들의 보호와 협력을 얻어 어엿한 독립국으로 근대화에 성공했으리란 기대는 안이함을 넘어 한심한 착각이다. 국제정치에서 그런 요행수는 없다.

    작금의 국제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은 적게 친구는 많게, 서로 우호친선관계를 유지하되 내 것은 내 힘으로 지켜야 한다. 과거 열강 뿐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나라는 힘이 팽창하면 체온이 높아지면서 육식성이 발현된다. 이는 물리고 생리다. 특히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의 강한 덩치들에 둘러싸인 한국으로선 명심할 일이다.

 

    《대망(大望)34,35,36<언덕위 구름> .

    《대망(大望)3세트 열두 권 끝.

    《대망(大望)1,2,3세트 전집 서른여섯 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