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大望)》 29, 30권 <불타라검> 리뷰


《대망(大望)》 29권 428p부터 30권 442p까지는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바 있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불타라검>이다. 원제는 <燃えよ剣>으로 ‘타올라라 검’이란 제목이 붙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은 막부가 종말을 고하는 1857~1869년으로 앞선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와 겹치고 주인공인 히지카타 도시조는 료마와는 반대, 가와이 쓰기노스케와는 마찬가지로 막부 편에서 싸운 역사의 패자 쪽이다.
<사무라이>의 쓰기노스케와 같이 구막부군에 속해 전사(戰死)했지만 두 인물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쓰기노스케가 에치고의 나가오카번 수석중신인 반면 <불타라검>의 도시조는 무사시 깡촌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미천한 출신이다. 쓰기노스케가 학식을 갖춘 당대의 수재였다면 도시조는 그저 싸움밖에 모르는 검객, 전사였다.
쓰기노스케가 학문은 물론 당시의 시국과 국제정세까지 파악한 재사(才士)로서 막부와 신정부 사이에서 번의 영주와 영민들을 지키기 위해 고뇌하며 고군분투하였다면 도시조는 일찌감치 막부에 몰빵하며 고집이랄 수도 있는 자신의 의지 그리고 新選組(신센조, 신센구미) 조직을 지키기 위해 독고다이식으로 싸웠다.
따라서 소설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사무라이>가 쓰기노스케의 내적 고뇌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면 <불타라검>은 도시조의 외적 스타일과 액션에 더 비중을 두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불타라검>은 앞서 읽은 액션활극인 <나루토비첩>과 <사무라이>를 합쳐 놓은 뜻한 소설이다.
쓰기노스케는 복잡하다. 도시조는 단순하다. 쓰기노스케는 막부가 결국 패할 것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조는 어느 순간까지는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이전에 그는 국가대사, 정치철학을 떠나서 자신은 싸우고 싸우는 전사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의 인생은 직진이었다. 마치 싸움을 좋아하기라도 하는 듯 맞닥뜨린 적을 향해 돌진이다.
그래서 쓰기노스케의 고민이 도시조의 고민보다 더 크고 더 깊고 근원적이다. 도시조의 활약과 스타일을 아무리 영웅적으로 그리더라도 그는 제 한 몸, 제 조직을 위해 충성하고 작은 의리를 고집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인물도 필요하다. 두뇌가 있다면 손발도 있어야 한다. 전장의 병사에게 고민은 필요 없다. 전진과 후퇴는 절대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그러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용기가 말단 병사의 덕목이다.
그런 면에서 도시조는 내겐 거북한 인물이다. 아무리 전근대 봉건사회였고 혁명과 전쟁의 상황이었지만 어제까지 우정을 나누며 동고동락하던 전우가 조직을 떠나려한다고 별다른 고민 없이 죽이는 것이 읽는 내내 계속 불편했다. (전쟁의 패색이 짙자 이런 가차 없는 처단은 확연히 완화된다.)
이런 인물은 확실히 현장의 말단 집행부에 있어야 한다. 고위 수뇌부에서 중요결정을 내리는 위치로 올라가면 위험하다. (대표적 인물이 윤석열!) 이리갔다 저리갔다 유약한 우유부단 기회주의자도 곤란하지만 깊은 고민이나 성찰 없이 무조건 직진만 하는 인물은 더 큰 화를 초래한다.
모두가 죽는다. 장수를 누리고 편안히 죽기도 하고 갑자기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료마도 쓰기노스케도 도시조도 죽었다. 셋 모두 비극적 죽음을 맞았지만 그나마 할복이나 참수되어 죽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결국 신념도 스타일도 각기 달랐지만 모두 자신의 신념과 고집을 끝까지 지킨 죽음이었다.
태어난 고장인 무사시 다마의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사미는 가미이시와라, 도시조는 이시다 마을 출신이다. - 29권 433p
후에 교토의 근왕지사들을 떨게 했던 신센조의 대장인 곤도 이사미와 부장인 히지카타 도시조는 무사시 다마의 깡촌에서 태어난 동향 출신이다. 무사시는 막부 직할령으로 농민들은 은근한 자부심으로 장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녔다.
둘 모두 변변한 학식은 없다. 이사미가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도장의 원장, 도시조는 사범으로 함께 하는데 천연이심류는 에도의 주류 검술에 비해선 시골의 삼류 검법으로 정교하고 화려한 기술보다는 기백과 힘을 강조한 감자바위 검술이랄 수 있다. 수백 수천번 나무에다가 후려치는 것으로 수련하는 식이다.
에도의 변두리에 도장을 열었으나 문하생도 적고 수입이 변변치 않아 멀리 무사시까지 출장교습을 하고 있다. 홍역과 콜레라가 창궐하여 운영이 더욱 어려운 차에 막부에서 양이(攘夷) 낭사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막부는 당시 에도와 교토에서 난동을 부리며 막부타도까지 외치는 양이파 지사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들을 한데 모아 관리하려는 것이다. ‘독(毒)을 모아 궤에 간수하는 것이 상책이다. 막부 돈으로 그들을 기르면 막부에 활을 당기는 일은 하지 않겠지‘(29권 543p)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사미와 도시조는 에도의 도장을 닫고 무리들과 교토로 올라와 신센조를 구성하게 된다. 교토 수호직을 맡은 아이즈번의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교토에 출몰하는 근왕지사, 낭인들을 사냥하듯 죽이고 잡아들이게 된다. 이는 아이러니한 것이다. 애초 양이의 선봉에 서기를 맹세했던 신센조가 양이를 자처하는 근왕지사들과 가장 대립하여 그들의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신센조 대원들의 경로를 살펴볼 때 결국은 신념, 대의보다는 돈, 호구지책의 영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뜻을 정하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어찌 먹고 살려고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춰 뜻을 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신센조가 좌막 맹주인 아이즈번이 아닌 도막인 조슈나 사쓰마의 지원을 받았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서로 극렬히 죽고 죽이던 신센조와 근왕지사의 처음 출발은 똑같이 사상적으로 양이다. 다른 것은 도막이나 좌막이냐의 차이, 결정적으로는 물주가 누구냐의 차이다.
철학, 사상, 이념, 신념, 도덕에는 거품이 많다. 그것은 이상(理想)처럼 비현실적인 환상미를 가지는 편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당시 대세였던 근왕, 양이도 비슷했다. 양이는 신의 나라에 서양오랑케가 웬말이냐는 신국(神國)사상까지 연결되는 종교적인 색채를 띠었다.
하지만 현실의 실생활로 내려오면 이런 류의 고차원적인 것들은 물론 개인적인 소소한 취향까지도 바꿀 수 있고 실재로 자신도 모르게 바뀌기도 한다. 돈이 된다면 갑자기 혐오하던 것도 예쁘게 보인다. 극단적으론 싫더라도 살아남으려면 받아들여야만 하고 변신해야만 한다.
당시 근왕의 유행을 쫓아 지사연하는 불량배들도 많았고 그것을 때려잡는 신센조 등의 막부측 낭인이나 직속무사들도 별반 고귀한 정치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두 직업으로서의 일자리, 호구지책, 생활의 방편일 뿐이다. 이는 용병이 철저히 돈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본질에서는 같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이 아닌 권력주변에서 밥벌이 하려는 자는 애초에 편을 잘 선택해야 한다. 이기는 편에 들면 좋지만 승부란 단기적으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길게 보고 이기는 편에 들어야 한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편이다. 정의의 편, 역사의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당장은 패하더라도 낙담, 좌절하지 않는다. 떳떳하게 계속갈 수 있다. 길게 보면 언젠간 이기고 자신이 이기지 못하더라도 집단은 이기고 역사의 진보에 복무한다. 옳은 길은 힘든 길일 뿐 지는 길은 아니다. 얼마든지 이기면서 옳게 가는 길이 있다.
정치인뿐 아니라 권력 주변에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브로커, 유튜버 등 이권을 따라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무리들이 있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선전선동과 인기를 위하여 과격한 주장을 일삼기도 한다. 여기저기 가짜들이 많지만 가짜라도 처음 편을 잘 먹어야 한다.
첫 단추, 첫 입구를 잘 선택하면 설령 가짜라도 성장하고 일변할 기회가 있다. 집단과 서로 호흡하고 배우며 올바른 길, 떳떳한 길, 이기는 길에 함께 묻어갈 수 있다.
먼저 주장, 강령 등 철학을 본 다음 그 집단의 구성원들을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유유상종, 대개 끼리끼리 모인다. 고위층 또는 선천적인 악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라면 잘못된 편을 택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악하다기보다 어리석고 못 배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급 정보, 정확한 정보, 균형잡힌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고 지역, 직종 등 자신 주위가 그런 부류들로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도시조는 편을 잘못 먹었다. 역사에서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지만 역사의 순리로 보면 막부보다 유신 신정부가 선이었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진보였다.
하지만 그만을 탓할 수는 없다. 태어난 곳부터가 장군이 있는 에도와 가까운 간토 무사시 깡촌이다. 극빈하진 않았으나 미천한 농민 출신으로 부귀, 특히 높은 신분의 귀족에게 열등감과 선망을 동시에 갖고 있던 그는 자연스레 약간 비뚤어진 면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하층민, 특히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힘센 주먹들이 갖고 있는 시기심, 열등감, 반골기질 같은 것으로 한편으론 그에게 삶의 에너지, 경쟁력이 되기도 했다. 배웠다는 이들이 아무리 입으로 나불거려도 싸움, 실전만은 자신이 최고라는 식이다.
그의 선택은 그와 환경의 합작이다. 거기에 우연과 운명이 겹쳐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기 환경을 벗어나 비약적으로 탈출하는 자는 없다. 그것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듯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것이다.
그래서 출신성분이 중요하다. 이는 자칫 혈통, 유전자, 인종까지 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차별적 사고지만 배경과 환경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개인이 환경을 개선하고 극복하는가? 환경이 개인을 길들이고 지배하는가? 시대가 인물을 만드는가? 인물이 시대를 만드는가? 이는 오래된 화두다. 결론은 언제나 상호작용이겠지만 개인의 역량이 시대와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지난한 것임은 분명하다.
개인이냐? 환경이냐? 이를 넓은 맥락, 좁은 관계로 보면 연인이나 친구관계도 환경이 결정적이다. 즉 사람, 사랑, 우정 등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입장, 상황이 변하는 것이다. 넓게 보면 질병이나 노화에 따른 외모나 건강상태의 변화도 사람(의 의지)이 아닌 환경의 변화에 속한다. 하물며 전쟁, 혁명 등의 거대한 역사의 폭풍, 격랑 속에선 한 인간(의 의지)의 존재는 한없이 가볍고 미미할 뿐이다.
도시조도 쓰기노스케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인간형이다. 쓰기노스케가 에도막부 말기의 전환기, 시대적 고개에서 안으로 고뇌하는 무사였다면 도시조는 그 이전 과거의 전국시대와 막부 초기를 살았던 밖으로 분출하는 무사에 가깝다.
거칠게 말하면 쓰기노스케가 에도시대, 교양시대를 거쳐온 유식한 2세대형 사무라이라면 도시조는 근 300년 전인 전국시대의 무식한 1세대형 사무라이에 가깝다. 전자는 붓을 든 문관, 사상가로서의 마지막 사무라이고 후자는 칼을 찬 전사, 검객으로서의 마지막 사무라이다.
온갖 무리한 난제를 생각해 내어 몰아붙인 끝에 마침내 도요토미 가문이 칼을 뽑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다음 오사카 겨울 전쟁, 여름 전쟁을 일으켜 끝내 토멸하고 만 것이다. - 30권 195p
1614년 오사카 겨울 전쟁과 1868년 보신전쟁 당시의 정세는 진영만 다를 뿐 여러모로 유사하다. 1600년 세키가하라에서 승리한 동군의 이에야스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1614년 온갖 난제와 꼬투리를 잡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을 정점으로 한 도요토미 세력을 완전히 토멸한다.
이제 서쪽의 사쓰마, 조슈와 동쪽의 에도 막부의 대결이다. 삿초동맹을 계기로 승기를 잡은 도막세력은 서군이 되고 관군, 신정부군이 되어 동군, 구막부군을 토멸하기 시작한다. 막부도 맞서기는 하지만 필사적이지 않다.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 본인부터 절대공순(恭順)이다.
요시노부는 대정을 봉환하고 관직과 영지를 박탈당하고 에도를 거쳐 고향인 미토에서 근신하며 공순한 자세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지만 신정부군은 만족하지 못한다. 수뇌인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는 요시노부의 참수를 원하는 주전파다. 그들이 딱히 흉포한 악인이어서가 아니다. 혁명의 생리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가의 그 병력과 권위를 그냥 남겨두고서는 사쓰마와 조슈가 생각하고 있는 ‘유신’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고래로 전투 수단에 의하지 않는 혁명이란 있을 수 없다.(30권 194p) 한마디로 그들은 피를 원했다. 혁명인증서에 찍을 피의 도장이 필요했다. 이것이 전쟁, 혁명, 정치의 생리다. 발동이 걸리면 스스로 굴러가는 자체논리다.
역사를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비유하자면 호흡이 있고 리듬과 주기가 있다. 한 주기가 시작되면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아무리 말려도 진행된다. 반대로 에너지가 다하면 아무리 부추겨도 마무리로 접어든다. 잘 나갈 땐 악재도 호재가 되고 안 나갈 땐 호재도 악재가 된다. 그걸 대세, 시세라고 한다.
확실히 대세, 시세는 사쓰마, 조슈의 신정부군에게 있다. 요시노부는 절대공순으로 유신 후에까지 살아남지만 일본은 전 국토에 걸친 내전인 보신전쟁을 치루며 많은 피를 뿌려야 했다. 사쓰마의 사이고는 이 전쟁이 너무 일찍 손쉽게 끝난 것이 내심 불만이었다고 한다.
지금 한국은 윤석열 친위쿠데타의 실패, 탄핵, 기소와 재판으로 이어지고 있는 내란극복 과정에 있다. 내란극복! 이것이 대세다. 그 에너지는 생각보다 오래간다. 앞으로 2심, 3심, 어쩌면 윤석열이 감옥에서 늙어 죽는 날까지 국민의힘 세력은 내우외환을 겪으며 내란세력, 반국가세력이라는 오명을 역사에 새기게 될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것은 명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천황을 사쓰마, 조슈에 뺏기고 조적(朝賊) 곧 지금의 반국가 내란세력이 됐기 때문이다. 구막부군은 천황기를 앞세운 신정부군 앞에서 전의를 상실하고 패주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의 미래는 암울하다. 인구구조, 연령별 지지분포를 봐도 향후 최소 20년간은 득세하기가 힘들다. 지지자, 그 중 60대 이상 열혈지지자분들은 지지를 바꿀 리가 없을 테니 아예 정치에 관심을 끄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국민의힘에 속한 직업정치인, 정치지망생이라면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좋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젠 먹을 것도 없다.
《대망(大望)》 29, 30권 <불타라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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