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때론 먹의 향내가 나는 글과 음악 그리고 사람

러닝, 마라톤

제11회 예산벚꽃전국마라톤대회 - 첫 10K 완주 후기 (2015/04/12)

어멍 2015. 4. 16. 21:33


    제11회 예산벚꽃전국마라톤대회 - 첫 10K 완주 후기 (2015/04/12)

 


  - 대회 참가 전


    연말연초에 춥기도 하고 일도 많아서 게으름만 늘었다. 가뜩이나 왼쪽 무릎이 아파서 훈련양이 더욱 줄었다. 그래도 4월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는 상황.

    작년 말에 있은 왼쪽 대퇴부 안쪽과 서혜부 통증은 가라앉았는데 1월부터는 왼쪽 무릎 바깥쪽이 아파서 뛰기가 곤혹스럽다. 특히 좌회전하며 코너를 돌때 하중이 많이 실리는지 통증이 가중된다. 그래서 트랙을 도는 카이스트 정달 모임은 일단 중단했다. 자세가 문제가 있는지 한번 점검해 봐야할 듯...

    장경인대(Iliotibial Band)가 끝나는 경골두(Head of Tibia)의 통증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촉진해보니 대퇴이두근(Biceps Femoris)이 끝나는 비골두(Head of Fibula)인 듯하다. 근육이 아닌 인대부분으로 침과 뜸 치료 이외에 당장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뾰족한 치료법은 없다. 스트레칭을 늘리고 살살 달래면서 달리는 수밖에...

    큰 부상이 아니더라도 몸이 불편해지니 건강한 상태, 정상적인 상태에 대한 소중함, 고마움이 새삼 절실해진다. 달릴 때 아무 불편함이 없다는 거! 부상에 비한다면 달릴 때 느껴지는 그런 숨가쁨, 단순 근육통, 피로감 등등은 오히려 기쁨이고 희열이다. 물론 없을수록 좋겠지만 이런 면에서 부상을 한번쯤 겪어보는 것도 나름대로 나쁘지만은 않겠단 생각이다.


    차차 통증이 가라앉는 것에 따라 훈련양도 차츰 늘린다. 거리도 늘리고 페이스도 올리고... 마침내 3월 7일 목표한 10k를 50분 이내인 49:23의 기록으로 주파했다. 3월 누적 러닝거리는 103k.

 



Running 10km 기록표



    목표한 바를 이룬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통증이 사라진 것이 더없이 좋다. 이제 연습한 것만큼 실전에서 뛰기만 하면 된다. ‘승리하기 전에는 나가지 않고, 나간다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이순신 장군의 기본전략이랄까! 물론 모든 대회 이전에 매번 목표한 바를 이룰 수도 없고 이룬다 해도 실전에서 100% 달성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것은 백전백승의 최상의 전략임에 분명하다.

    4월 9일 D-3일. 발톱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8km 가볍게 러닝.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취침 시작. → 4월 10일 D-2일. 러닝 없이 스트레칭만 아침 저녁 2회. 의식적으로 물을 많이 마시고 탄수화물 보충을 위해 점심은 자장면 곱빼기로. → 4월 11일 D-1일. 일찌감치 소풍가는 초딩의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짐을 챙긴다. 점심은 역시 자장면 곱빼기에 저녁은 파스타에 피자 한판. (10k 출전에 흉내 낼 건 다 낸다. ^.^)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꺼~~억)

 



대회 참가를 위해 ‘스매’님 매장에서 새로 구입한 준비물

아식스 타샤(Tarther) CM 27.0 US 8 EURO 41.5

동네 뒷산을 오르며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기세! (^.^)

 



  - 대회 참가


    4월 12일! 이른 아침 둔산 엑스포 남문 광장에서 주주클럽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예산으로 출발, 한 시간 반이 못 미쳐 도착했다.

 



예산벚꽃전국마라톤대회 홈페이지 메인화면



    예감이 좋다. 날씨도 좋고 몸도 가볍다. 하지만 몇가지 남은 변수가 있다. 첫째가 코스. 평탄한 쉬운 코스인지 고저도 심한 힘든 코스인지 알 수 없다. 둘째가 실전경험이 전무하다는 거! 비록 10k 단거리지만 정식대회 레이스 운영경험이 없으니 자칫 경기 분위기에 휩쓸려 초반 오버페이스를 할 염려가 있다.

    셋째는 음악이 없다는 거! 매번 음악을 들으며 뛰었는데 음악 없이 뛰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없다. 달리기는 심리적 요인, 멘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운동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자칫 적응하지 못해 집중력, 정신줄을 놓으면 일순간 동작과 호흡이 흐트러지고 페이스가 급격히 무너질 수도 있다.

    쪽지시험은 벼락치기가 통하지만 학력고사는 통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꾸준한 노력을 통해 평소 쌓은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달리기도 마찬가지! 단기, 단거리는 정신력, 집중력이 좌우하지만 장기, 장거리는 체력, 지구력이 좌우한다.

    그래서 이번 10k 단거리는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 출발부터 피니쉬까지 정신줄을 꽉 잡고 놓지 않아야 한다. 쓰러져도 피니쉬 통과 후 쓰러지고 정신줄을 놓더라도 목표달성 후 놓아야 한다!




경기전 : 어떤 상황에도 동요치 않는 부동심의 강인한 멘탈!

 



경기후 : 목표를 달성한 후 드디어 놓아버린 정신줄 (-.-)

참고로 10km, 즉 트랙 10000m 세계기록은 <26분 17초 53> 케네니사 베켈레, 에티오피아, 2005년



    드디어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그래서 그런지 느껴지는 약간의 오한! 순간 초가을 이른 아침 느껴지는 옷깃을 파고드는 서늘함 같은 것이 온몸을 알맞게 조여 준다. 출발신호가 울리고 인파에 뒤섞여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왠지 어색하게 뒤뚱대는 느낌! 하지만 곧 익숙해지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빠져나와 주로에 들어서자마자... 코스가 장난이 아니다.

    오르락내리락 굴곡이 심한 것이 크고 작은 산허리를 끼고도는 왕복 4차선 주로가 앞뒤는 물론 좌우 경사도마저 꽤 심하다. 발목에 오는 충격이 일반 주로와 새삼 다르다. 3k 못 미쳐 터널이 벌써 두개, 이대로는 50분 이내 완주는 힘들다. 헥~헥~ 대며 좀처럼 페이스가 올라가지 않는다. 생소한 분위기에, 힘든 레이스에, 같은 10k 참가자인 ‘말아톤’, ‘늑대조’, ‘고운’님 등은 찾을 길이 없고 길 양옆 만개한 벚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5k 지나 반환점을 돌면서 보니 벌써 26분이 넘었다. 역시 실전은 만만치 않은 것인가?! (-.-:;) 부분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지만 5k까지는 꾸준히 이어지는 내리막길! 나머지 5k 오르막길을 생각하면 점점 50분 이내 완주가 멀어져만 간다. 요건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이런 코스에 비하면 평소 뛰던 갑천변은 그야말로 비단길! - 이렇게 첫 참가부터 실패를 맛봐야만 하는가!......

 



틀렸어! 가망이 없어!!

신이시여! 정녕 이것이 저의 실력이란 말씀입니까? (ㅠ.ㅠ)



    가뜩이나 7k를 지나며 본격적인 오르막길! 전방에 오른쪽 길옆으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다섯 명이 폴짝폴짝 박수를 치며 “캬악! 캬아악~!” 환호성을 지른다. 내가 다가갈수록 괴성에 광란에 장난이 아니다! - ‘후훗! 역시 어멍 아직 죽진 않았어! 약한 모습 보일 순 없지!’ - 힘겹지만 화사한 미소를 날리며 손을 흔들어 화답한다. 오르막길인데도 갑자기 발이 가벼워지며 속도가 난다. (^.^)

     스쳐 지나면서도 아쉽고 고맙고 사랑스런 마음에 힐끗 뒤돌아보자 준수한 외모, 짱짱한 체격의 꽃미남 청년이 눈동자에 불꽃을 점화한 채 아다다다 무서운 속도로 바짝 육박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ㅠ.ㅠ)

    깜놀과 뻘쭘의 지금 이 순간 ‘아. 저. 씨.’께 필요한 건 무엇? 바로 스-피-드- !!  어떻게든 빨리 이 상황과 장소를 벗어나야만 한다. 덕분에 간신히 얄미운 청년을 따돌리며 대략 15초 정도 단축! 이제 3k 남았다.


    8k 지점. 2k를 남겨둔 마지막 급수대가 보인다. 지나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 모금 마시기로 하고 달리면서 종이컵을 오른손에 들고 넘기려 하는데... 쿨렁쿨렁. 캑캑.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이왕 이리된 거 잠시 멈춘 후 호흡을 가다듬고 물을 넘겼다. 마음은 조급한데 이것저것 10초 정도 까먹은 듯! 급수대에서 물을 먹는 요령도 물어 배워야겠다.

    9k를 지난 후 왕복 4차선 주로에서 빠져나와 운동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내리막길. 멀리서 주주클럽 ‘김원영’님이 고맙게도 사진 자봉을 하고 계신 것이 보인다. 아닌 척 하면서 포즈와 표정에 신경을 쓴다. 내리막이 급해서 다리가 풀린 상태로 속도를 제어치 못하면 꼬꾸라져 사고의 가능성이 큰 위험한 길! 항상 과속을 피해 온몸을 제어하고, 제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속도를 내는 것이 중요하고 안전하다.


    이제 결승선이 보인다. 기록은 잠시 잊고 마지막 스퍼트! 50분을 넘길지 아닐지는 운에 맡긴다. 결승선을 통과하며 상단에 걸린 전자계기판을 보니 49:15!(대회 홈피 공식기록은 48:58) 석세스! 간신히 50분 이내에 들어왔다. 끝내...... 승리다!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신이시여! 정녕 이것이 저의 실력이란 말씀입니까! (ㅠ.ㅠ)



승리의 브이! 소심한 브이! 겸손한 브이!

 



  - 마무리


    레이스를 마치고 따로 마련된 주주클럽 부스에서 사진도 찍고 자봉 옆에서 이것저것 도와주며 하프, 풀 참가자들을 기다린다. 힘들고 허기진 회원들을 위해 마련된 점심 주메뉴는 삼계탕. 그밖에 푸짐한 기타등등 메뉴들... 지나가는 다른 클럽회원들이 마냥 부러워하며 군침을 흘리는 눈치다. 나도 자봉대장 '피오나'님의 부탁으로 삼계탕 그릇에 한 손 한 손, 정성스레 부추를 담았다. 덕분에 흥분으로 쿵 쾅 쿵 쾅, 날뛰던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

 

    주주회원 중에 ‘하나둘(유철준)’님이 이번에 풀코스 완주 100회를 달성하신다길래 모든 회원들이 축하하기 위해 시간에 맞춰 결승선으로 나갔다. 1년에 10회면 10년이 걸리는 엄청난 대기록이다. ‘하나둘’님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가족분들께서 꽃다발과 머리 화환을 얹어주신다. 부럽당! 나도 저래 해야 하는데... (^.^)

 



Ecce Homo(에케 호모) - 이 사람을 보라!

이것은 평범한 인간의 위대한 인간승리!

 



Ecce Homos(에케 호모스) - 이 사람들을 보라!

주주클럽! 역시! 영원히! “우리 승리하리라!” - 벤세레모스(Venceremos)



    식사에 반주를 곁들여 화기 애애 피로를 풀며 담소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벌써 오후 3시를 가리킨다. (아마도) 클럽 중 최다인원 참가클럽. 때문에 배출쓰레기도 최다. 머문 시간도 최장. - 다소 찬바람이 부는 썰렁한 행사장을 주주클럽이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힘들고 재밌고 유익했던 하루가 갔다. 올해 목표한 다섯 가지 중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 100점 만점에 20점 획득! 다음 두 번째 목표는 하프 1시간 50분 달성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PS : 후기를 올리고 보니 공교롭게도 오늘이 4월 16일이다.

왜 우리는 일 년이 넘도록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가!

심지어 약한 이를 때리고, 넘어진 이를 짓밟고, 상처난 이를 찌르며 아픈 이들에게 잊으라고 강요하는가! (ㅠ.ㅠ)


뜬금없고 급우울해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마음 한켠이 아파 와서...

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 행복한 일상이 왠지 미안해서 몇 자 적어본다.

세월호로 죽어간 아이들에겐 안식이, 남겨진 가족들에겐 평안이 함께하길 간절히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