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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작 《프랑스 혁명사》 읽기를 마치며 – 주요 연표 포함

어멍 2024. 2. 24. 16:45

 

10부작 《프랑스 혁명사》 읽기를 마치며

- 주요 연표 포함 -

 

전10권 《프랑스 혁명사》

 

    1789년 7월 14일 혁명 이전의 프랑스의 구체제 곧 앙시앵레짐부터 1794년 7월 28일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한 테르미도르 반동까지, 프랑스 대혁명을 다룬 주명철 교수의 역저 《프랑스 혁명사》 10권을 2023년 7월 7일부터 2024년 2월 12일까지 7개월 동안 완독하고 독후감 격인 각 권 리뷰도 마쳤다. 예전 읽었던 책들과 마찬가지로 줄거리가 아닌 내 생각이 머무는 대목, 인상 깊은 구절 위주로 리뷰했다. 즉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인 셈이다.

    혹 오독과 오해한 부분은 없었는지, 중요한 부분을 허투루 다루고 넘어가거나 사소한 부분을 내멋대로 의미 부여하여 과잉해석한 부분은 없었는지, 자신할 수는 없다. 변호, 변명하자면 현실은 관념보다 훨씬 복잡하고 진상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미묘하여 알 수 없는 것이며 사람은 기존의 경험과 사고의 틀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므로 내가 100% 정확하고 균형 있게 읽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확실히 이렇다 할 배경지식 없이 당시의 자세한 전후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읽어내려가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 알 수 없는 부분이 다소 많았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이 더욱 자세하고 선명하고 풍부하게 드러났다.

    스스로 설렁설렁 빠르게 읽지 않고 꼼꼼히 되새기며 천천히 숙독하였다고 자부한다. 많이 배우고 얻었다. 읽기 전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수확이었다.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신 주명철 교수님께 멀리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전국신분회, 입법의회, 국민공회 그리고 파리 코뮌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대혁명 기간 중에 피고 졌다. 혁명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시시각각 출렁이는 정국에 어느 누구도 자기 입장을 일관되게 가져가기 힘든 시기, 모두들 자기 신념을 펼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였다.

    비상시기였던 만큼 급한 법안의 경우 당일 발안 당일 통과되었고 재판 역시 단심제로 당일 판결 당일 집행되었다. 심지어 동명이인이 억울하게 단두대에서 처형되기도 하였다. 많은 악당들도 목숨을 잃었지만 뛰어난 재능과 훌륭한 덕성을 지닌 인물들도 이 와중에 적잖이 희생된 것은 무척 아쉽고 애석하다.

 

    오랜 기간 책 속에서 만났던 인물들과 헤어지려니 아쉬움에 책이 손에서 쉽게 놓아 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다들 참 열심히들 살고 갔다. 그들 모두를 기리며 이것으로 《프랑스 혁명사》 관련 포스팅 12편을 모두 마무리한다.

 

    아래는 내 나름대로, 주관대로 정리해 본 프랑스 혁명의 주요 연표다.

 

 

프랑스 대혁명 주요 연표

- 전국신분회 선거(1789/01/24)부터 테르미도르 반동(1794/07/28)까지 -

 

1789년

1월 24일 전국신분회 선거법 공포, 선거법에 따른 다단계 선거 시작

5월 5일 베르사유에서 전국신분회 개최

6월 17일 평민대표인 제3신분이 ‘국민의회’ 선포

6월 19일 종교인 대표인 제1신분이 제3신분에 합류하기로 투표로 결정

6월 20일 왕의 방해에도 해산을 거부하는 ‘죄드폼의 맹세’

6월 23일 제3신분이 왕의 명령에 공식적으로 불복함으로써 정치적 구체제(절대군주정) 막을 내림

7월 9일 국회가 ‘제헌의회’ 선포

7월 11~12일 네케르 해임 소식에 파리 민중 분노 소요 발생

7월 14일 바스티유 정복

7월 15일 파리 시정부 구성, 부르주아 민병대인 국민방위군 창설

8월 4일 귀족의 특권 포기 선언

8월 20~26일 프랑스 인권선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작성 채택

10월 5일 마라의 <인민의 친구>가 반란 촉구, 파리 아낙들 베르사유로 행진

10월 6일 왕과 가족을 파리 튈르리 궁으로 데려감. 국회도 파리에 정착한다고 결의

12월 24일 유대교도를 제외한 비가톨릭 교도의 피선거권 인정

 

1790년

3월 15일 장자상속법 폐지. 유산의 균등분할법 제정

3월 29일 교황 비오 6세, 추기경 회의에서 프랑스 인권선언 비난

5월 10일 몽토방에서 가톨릭교도의 반혁명 소요 발생

6월 19일 세습귀족제 폐지. 신분을 차별하는 모든 종류의 표시 폐지

7월 12일 성직자 시민헌법 국회 통과

7월 14일 파리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바스티유 정복 1주년을 기념해 전국연맹제 개최

8월 26일 낭시 군사반란 발생

8월 31일 부이예 장군이 낭시 군사반란 진압

11월 27일 종교인들에게 성직자 시민헌법에 대한 맹세 의무 부과

 

1791년

1월 9일 70세 이상 노인연금 결정

6월 5일 국회는 왕의 사면권 박탈

6월 14일 노동자 파업과 동맹을 금지하는 ‘르 샤플리에 법’ 통과. 동업조합 폐지

6월 21일 루이 16세, 새벽 1시경 도주 시작, 밤 11시경 바렌에서 붙잡힘.

7월 17일 왕의 폐위를 청원하려는 군중을 죽인 ‘샹드마르스 학살’ 발생

8월 29일 2대 국회인 입법의회 의원 선거 시작

9월 3일 입헌군주제 헌법 완성

10월 1일 입법의회 개원 첫 회의

 

1792년

4월 28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연합군과의 첫 전투로 대외전쟁 시작

6월 20일 연이은 왕의 거부권 행사와 왕당파 중용으로 화가 난 파리 민중 튈르리 궁 침입

8월 10일 파리 혁명코뮌이 실권을 장악하고 튈르리 궁 공격(제2의 혁명). 왕과 가족 입법의회로 피신. 입법의회는 왕권 정지와 국민공회 선거 의결

8월 13일 왕과 가족 탕플에 가둠

9월 2~6일 ‘9월 학살’로 천여 명이 죽음

9월 21일 국민공회 첫 공개회의. 왕정 폐지 의결

11월 20일 튈르리 궁에서 왕의 비밀금고 수색

 

1793년

1월 15~20일 국민공회는 네 차례 호명투표로 왕이었던 루이 카페 24시간 내 사형 확정

1월 21일 루이 카페 혁명광장 단두대에서 처형

3월 11일 방데 반란 시작

4월 6일 구국위원회 설치

5월 31일과 6월 2일 대포를 앞세운 파리의 봉기로 국민공회는 지롱드파 지도자 체포동의안 가결

6월 24일 공화국 헌법 채택

7월 13일 샤를로트 코르데가 마라를 살해

8월 1일 미터법 실시. 생드니 성당의 왕의 무덤들을 없애기로 결정

9월 5일 파리 상퀼로트가 국민공회에서 혁명군 창설과 공포정 요구

9월 17일 반혁명혐의자법 제정으로 공포정 본격화

10월 7일 랭스에서 성유병 파괴(탈기독교 운동)

10월 10일 생쥐스트가 “평화 시까지 혁명정부 선포”

10월 16일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10월 28일 종교인을 교육계에서 배제

10월 31일 지롱드파 의원 21명 처형

 

1794년

2월 4일 식민지의 노예제도 폐지

2월 26일 생쥐스트가 ‘적산접수법’ 발의

3월 24일 에베르 등 극단파 숙청, 처형

4월 5일 당통, 데물랭 등 관용파 숙청, 처형

6월 10일 공포정을 더욱 강화하는 프레리알법(공포정치법) 통과로 대공포정 시작

7월 26일 로베스피에르 국민공회에서 반역자 처벌과 구국, 안보위원회 숙정 요구

7월 27일 로베스피에르 일파 체포안 통과. 파리 코뮌의 저항과 실패

7월 28일 로베스피에르와 그 일파 처형(테르미도르 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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