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때론 먹의 향내가 나는 글과 음악 그리고 사람

유머, 패러디

웃겨주는 기계 하나 만들 수 없나-배칠수의 MB 성대모사

어멍 2009. 3. 27. 22:55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대충토론’중에서



    이명박정권들어 미네르바가 구속되는 등 침묵, 굴종이 강요되며 민주주의가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시사, 정치코미디도 예전보다 많이 위축돼 있는 와중에 오랜만에 재밌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는 확신을 마~ 저는 갖고 있습니다. 어허허허허~(명텐도야말로 웃겨주는 기계! 웃기는 기계! 웃기지도 않은 기계!)

  

    정치를 너무 희화화하여 스포츠신문의 킬링타임용 유머나 씹다 버린 껌처럼 본질은 간 데 없고 웃음, 냉소, 단맛의 기억만이 남아서는 안되겠지만 유머, 코미디는 정치비평의 유용한 수단이며 시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 무관심, 체념을 돌려세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실제로도 유머, 해학, 풍자, 패러디 등의 수법은 김지하의 오적(五賊)이래로 진보진영의 강력한 자산이요 무기였다. D.H. Lawrence의 말처럼 성공하든 실패하든 '혁명도 심각하지 않게 웃고 즐기며 해야' 지치지 않고 행복하게 오래 할 수 있다. 그것은 목적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면서도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목적이 되는 삶의 방식이자 실천의 문제이다. 민주주의 역시 법전 속에 들어앉은 문구도 아니며 싸우고 빼앗아야 할 권력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모두 함께 건설하고 하나하나 채워나가고 수시로 관리해야 할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며 완료형이 아닌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속에서 실천해야 할 삶의 방식인 것이다.


    냉정과 열정, 가벼움과 무거움, 진지함과 초연함, 통일과 일탈의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코미디, 배꼽 잡을 만큼 웃기면서도 본질에 다가가는 깊이와 여운이 남는 코미디야말로 이상적인 정치, 시사코미디랄 수 있고 천박하지도 엄숙하지도 않은 품격까지 갖춘 코미디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잘 만든 성대모사 코미디이지만 미네르바 구속으로 볼 때 배칠수씨가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 저간의 분위기다. 취임 1주년을 맞은 현 시국은 747, 주가 3000의 사탕발린 약속은 고사하고 민주와 자유마저 위협받는 황당하고도 갑작스러운 블랙코미디! 웃다가도 정신이 번쩍들며 슬퍼지는 블랙코미디!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면서도 그 시절의 정치적 자유, 민주주의를 당연시하고 천년만년 갈 것이라며 향유했던 당신.
    이
명박 후보의 부도덕, 비리전력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당신.
    무
능보다 부패가 낫다면서 적당히 해쳐먹어도 좋으니 배부르고 등따숩게 해달라고 욕망의 정치, 욕망의 투표에 가담했던 당신.
    이제 겨우 1년인데 그를 응원하고 지지했던 체면이 있지. 이제까지의 잘못과 고난은 모두 잊고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앞으론 탄탄대로 제대로 실력발휘할 거라는 희망과 믿음의 미련을 버리고 있지 못하는 당신.(난 사실 이 '실력발휘'라는 말이 무섭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고 비관적이다.)
    속으론 이미 이
대통령과 현실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재평가의  판단이 섰으면서도 그를 찍었던 오기 비슷한 자존심 때문에 후회하면서도 아직까지 섣불리 지지를 철회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당신마저도 한가하게 웃고 넘어가기엔 사태가 너무 엄중하다. 농락당한 우리자신과 처참한 현실에서 오는 자괴와 분노로 허탈한 웃음, 쓴 웃음만 자아내고 있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ㅠ)


    여기저기서 계발, 효율, 경쟁이란 이름으로 안전망, 방화벽이 해체되고 서민, 약자들이 벌판으로 내몰리고 있다. 올망졸망한 언덕과 산, 크고 작은 강과 개울, 높고 낮은 갖가지 꽃과 나무들의 풍경을 밀어내고 가장 넓은 벌판에 가장 높은 탑을 쌓으려고만 한다.

    세도 정치를 방불케 하는 만사兄통, 고소영, 강부자뿐만 아니라 국민을 오해 잘하는 어린(어리석은) 백성, 또는 잠재적 위협, 폭도로 보는 정권의 자세에서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100여년전의 왕정의 성격도 띄고 있다. 우민관, 폭민관이 이명박정권의 본질적인 성격이기에 개선에 한계가 있고 전망이 매우 어둡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됐나. 어쩌다가 우리는 이명박씨를 대통령에 선출하였고 일부는 여전히 지지하고 있나.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를 잘못된, 불합리한 판단으로 이끈 왜곡된 의사결정구조, 우리의 잠재된 의식과 편견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명박 후보가 CEO, 비정치인, 탈여의도 이미지로 톡톡히 재미를 봤고 지금도 재미를 보고 있다는 거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국민 대다수가 정치(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데 여기에 편승해 이용한 측면이 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인식 자체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혐오는 일반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

    0.1% 강자, 부자들은 국가와 정치가 없으면 세금도 규제도 없고, 발목 잡히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규제당하는 것이 싫고 정치라는 이름으로 합의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답답하고 아깝고, 공공이란 이름으로 개미들이 뭉쳐 자기 몫을 주장하는 것이 귀찮고 언짢은 것이다. 레이거노믹스의 ‘작은 정부, 큰 시장’이다. 강자에게 가장 유리한 룰은 기실 룰 자체가 없는 것으로 노골적으로 솔직히 말하자면 무정부주의에 가깝다. 다만 없으면 안 되기에, 없으면 혹시라도 순한 개미들이 미쳐 날뛰며 폭도로 변해 손에 총과 칼을 들고 들이닥쳐 자신들의 목을 벨 수도 있기에 최소화하자는 거다. 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아먹든 삶아먹든 반드시 자기(편)이 해먹겠다는 거다. 私가 公을 점령한 거다. 오죽했으면 정권내부에서조차 권력사유화라는 비판이 제기됐겠는가. 본질은 숨길 수가 없다!

    동의할 수 없지만 이유도 논리적이고 계급이익에도 맞는 입장이다. 선악개념을 떠나 얄미울 정도로 합리적이다. 정부를 없앨 수 없으면 정권을 통해 정부를 장악하면 된다.  룰을 없앨 수 없으면 자신이 룰을 정하면 된다. 이득이 늘고 파워가 극대화된다. 굳이 욕 먹어가면서 노골적으로 앞에 나설 필요도 없다. 안심하고 맡길 말 잘듣는 대리인 혹은 자기들 중 한 명만 대표선수로 앉혀놓고 관리만 하면 된다.

    룰을 만드는 자가 진정한 강자다. 아무리 시장에서 백전백승하더라도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위에 더한 강자는 전체적인 판을 짜는 자다.  맨 위, 맨 뒤에서 조종하는 자. 전체를 조망하며 손 동작 하나만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자. 이것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진정한 절대 강자다. 그래서 시행권, 인허가권보다 입법권이 더 세고 입법권보다 인사권이 더 세다. 사법권이야 해석과 적용을 전제로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차후의 문제다. 모든 권력, 파워의 핵심은 인사권이다. '기타등등'들은 대개 이 인사권을 가진 자의 앞잡이, 용병, 사냥개, 대리인, 하수인, 장기판의 말인 경우가 많다. 그 유명한 토사구팽이란 고사성어가 이를 잘 웅변해주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개혁의 시작과 끝도 인사다. 고루하고 낡은 기득권 인물들을 청산하고 참신하고 능력있고 양심적인 신진인물들로 얼마나 정당한 절차에 따라 순조롭게 물갈이하느냐, 그렇게 임명된 인물들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임명권자의 의중을 대리, 대의하느냐 시민들의 복리와 바램을 대리, 대의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성패가 결정된다. 이러한 인물들로의 혼란스럽지도 않고 정체되지도 않은 끊임없는 신진대사, 선순환을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의 정립만이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다.
    핵심은 실질적으로 이러한 권력을 누가 행사하느냐, 이러한 시스템을 누가 관리하느냐 하는 점이다. 대리인 뒤의 관리인을 봐야 한다. 권력을 보지 말고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를 봐야 한다. 정치인, 법관, 관료, 공무원 등의 공인들이 출세를 하고 영전, 승진을 하려면 누구를 의식하여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지금 그들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가. 시민들인가? 대통령인가? 조중동 사주인가? 재벌회장님(들)인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라는 미사려구로 표현하는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실체는 대리인들이 아니라 바로 이 관리자다. 행정, 입법, 사법 등의 국가조직이나 제도도 아니며 보수 한나라당 대 진보 민주노동당 등의 이념을 중심으로 대립하는 정치세력도 아니다. 긴 말 필요없고 관념적, 표피적이 아닌 구체적, 명시적으로 콕 집어서 말하면 조중동과 재벌이다. 그 중에서도 재벌이다. 재벌 중에서도 우리 모두를 '또 하나의 가족'처럼 챙겨주시는 '관리의 삼성'이시다. 물론 체제라는 것이 이 모든 것의 거대한 총합이겠지만 보이지 않은 손, 숨은 실력자들!  이들이야말로 앙시앙 레짐의 몸통, 핵심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누구인가? 이 앙시앙 레짐의 단순한 용병, 하수인, 바지사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구체제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자리한 절대강자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앙시앙 레짐의 핵심멤버이자 이것을 관리하는 집단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관리집단의 중심축은 주지하다시피 역사적으로 군부, 청와대에서 언론, 시장으로 넘어온 지 오래다.

    철저히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처세술과 생존술로 이제까지 승승장구해온 이명박 대통령. 대기업 CEO였지만 재벌 출신의 오너가 아닌 고용인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이명박 대통령의 전력을 보면 그가 정치, 경제, 언론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재벌회장님들.
                                                       고양이 앞의 쥐(들) or 쥐 앞의 고양이(들)

                 같은 바닥 출신인 그로서는 고 정주영 회장이 아닌 재벌 1.5세대인 이들이 만만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건희 삼성회장 앞에서도 이렇게 여유있게 뒷짐지고 있을 수 있을까?




                                대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 팔순잔치에 초대된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

                                                 마징가 제트가 이길까? 로봇 태권브이가 이길까?
                                                         조선일보가 이길까? 삼성이 이길까?



    정치권력은 유한하다. 생명이 짧다. 하지만 언론권력, 경제권력은 이보다 길다. ‘3대 가는 부자 없다’란 말보다 ‘부자 망해도 3대는 간다’란 말이 더 현실에 맞다. 전쟁이 터져도 나라가 망해도 장사꾼들은 살아남고 돈을 번다. 옛날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도 가난한(!) 황제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지 못했으나 철광업, 염전업을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쌓은 재력가는 타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하물며 물신주의가 팽배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 금권력의 위용은 변함이 없다.

    이 외에 공통되는 점이 또 하나 있으니 대자본가, 성공한 사업가, 경제인 출신이 정치인으로 성공하고 나라를 부흥시킨 예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무하다는 점이다. 성공한 억만장자 사업가인 미 후버 대통령은 경제정책에서 대실패하고 세계대공황의 단초를 제공했고 번성기를 구가하던 한나라도 성공한 부자들을 관직, 관리에 등용하여 이들이 경제정책을 입안, 시행하면서부터 나라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텍사스 부호 부시의 미국, 미디어 재벌 베룰루스코니의 이탈리아, 부동산 부자이자 건설회사 CEO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대한민국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비록 수출대기업의 무역흑자는 늘어나더라도 가계소득은 줄어든다. 자본가, 부호들, 자신들의 부는 늘어나도 정부곳간과 국민들의 곳간은 줄어든다. 부가 집중되는 것도 곧 한계에 이르고 나라는 전체적으로 쇠퇴한다.



    시장의 강자, 거인들과는 달리 일반서민, 민초들의 정치혐오는 소박한 것으로 논리적이라기보다 경험적이며 세금, 복지정책면에서 계급이익에도 봉사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다.

    공적영역, 공권력, 정부, 정권, 정치,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생각보다 그 뿌리가 넓고 깊은데 정권을 누가 잡든 공권력에 의한 보살핌, 봉사는 고사하고 인간대접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놈이 그놈일 뿐이니 실망하고 분노하다 지치면 무관심해지고 체념하고 결국엔 냉소한다. 우리가 정승나리부터 포졸나리까지, 장차관에서 말단 9급 공무원까지 공직, 공무원들에 대해서 막연히 갖고 있는 감정 즉 경원시, 질시하고 심하면 경멸하며 미워하는 정서도 이와 관련이 있다. 두려워할지언정 존경하진 않는다.

    구한말 학정을 일삼는 탐관오리, 농민은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도 외국군만 만나면 오합지졸 백전백패하는 관군을 보며 백성들은 조정을 과연 어떻게 보았을까?

    씰데 없는 쌈박질이나 하는 정치인, 시간만 죽치며 무위도식하는 공무원, 가렴주구로 백성들만 못 살게 구는 나으리들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간섭하는 공적영역은 좁을수록 좋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적영역은 넓을수록 좋다. 정치니 법이니 복잡하고 골치아프게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안온한 삶에만 신경쓰며 살 수 있는 세상, 전설로 전해오는 요순의 성군시대처럼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포장마차 술자리, 안방 이불속까지 공권력이 파고들어 간섭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약자, 시민의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공적영역이 늘어날수록 유리하다.

    권력이 1/n로 나뉘며 위에서 아래로 확산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볼 때 의사를 표시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기회가 많을수록, 임명직보다 선출직이 많을수록, 선출되는 인원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시민에겐 유리하다. 예를 들어 비용은 더 들더라도 대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감사원장, KBS 등 공영방송 사장 등도 선거로 뽑고 국회의원도 각 동마다 뽑아 수천, 수만 명으로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 이것이 소수 유력정치인의 전횡, 부패로 인한 낭비와 폐단보단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나랏일은 신경쓸 필요없이 밭만 갈면 되는 안온한 삶을 누렸다던 2000여 년 전 신화 속 성군인 요순임금의 ‘태평성대’는 이미 시효가 지났다. 개인적으론 그러한 시절이 과연 존재하였을까, 그것이 말 그대로 진정한 ‘태평성대’였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다. 현대정치와는 맞지 않는 고루한 모델, 비현실적인 이상향이다.

    피곤하고 성가시더라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정치에 참여하고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치루어야 할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민주주의야말로 끊임없이 비료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일구고 돌봐야 할 우리 모두의 공동의 밭, 항상 쓸고 닦고 고치고 관리해야 할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공동의 집이다. 관심도 없고 몸도 놀리려 들지 않고 비용도 지불치 않고 날로 먹으려 들면 자신이 아닌 그 후손이라도 다음에 꼭 생고생하게 되어있다. 심하면 박정희, 전두환씨의 군사독재정권에서처럼 피눈물을 흘리거나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다. 누구라도 용산 같은 억울하고 기막힌 일을 당할 수 있다.

    선출직을 늘리고 국가주요정책에 대한 직접투표의 기회도 늘려야 한다. 기술적 문제와 부정시비만 해결된다면 인터넷을 이용해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획기적으로 활성화시킬 수가 있다. 하지만 이른 장래에 도입되리라곤 보지 않는다. 이것은 기술적 문제 이전에 혁명에 버금가는 권력구조와 시스템의 변혁에 관한 문제이니까. 어떤 혁명보다도 유의미한 혁명, 혁명중의 혁명이다! 기득권자, 시장의 강자들에겐 곧 사망선고를 의미한다. 포퓰리즘, 대중정치, 홍위병, 갈등과 정쟁의 일상화, 고비용 저효율 등등 갖은 구실과 온갖 논리로 미친 개마냥 입에 거품물고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회를 폭파하고 불태우는 것은 오히려 쉽다. 그러나 무너지고 없어진 국회는 고치고 다시 지으면 그뿐이다. 시민들의 의사가 왜곡되지 않고 언제라도 직접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 직접민주주의 확립만이 시민들이 즐거이 상상하는 국회를 폭파하고 불태워 없애버릴 수 있는 실재적이고도 현실성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리적으로 불태워 없애버리려 하지 말고 국회든 청와대든 대법원이든 시민들이 권력을 명실상부하게 장악하면 된다. 끝없는 투쟁속에 잠시잠깐 올곧고 정의로운 민주정권을 세우려 하지 말고 영구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장악하면 된다.




                                         혐오→무관심→체념→불량정치인의 발호→혐오의 악순환.

              누구나 꿈꾸는 시원한(!) 장면이지만 멸사봉공의 선량들로만 채워지고 진정한 민의의 전당이 된다면 
                                                    각자 전용기를 사준데도 무에 아깝겠는가!
 


    하지만 현실은?......강자에겐 거추장스런 존재요, 약자에겐 있으나마나 하거나 오히려 두려운 존재였기에 정부, 정치영역, 공권력은 모두가 꺼리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와 정치인을 혐오하며 국회가 폭파되기를 즐거이 상상한다. 어디서 국회위원수를 늘린다는 소리만 들려도 이유불문, 심박수가 빨라지며 흥분부터 하고 정파초월, 서로가 의기투합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한다. 그래서 강남이든 시골이든 부자든 빈자든 비정부, 비정치인, CEO 출신 민간대표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

    이것이 강자, 주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더불어 계급배반투표의 주요 이유 중 하나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LIV(Low Information Voter) 즉 정보수준이 낮은 유권자들이었다. LIV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정보(예를 들면 이명박 후보의 불법탈법 경력)가 부족하면서도 강한 정치혐오증을 지니고 있다고 하며 그럼에도 투표장에는 꼬박꼬박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주로 교육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 여기에 속하는데 미국에서는 유권자 5분의 3 정도인 7500만명을 LIV로 보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낮은 문맹률, 고도화된 정보인프라로 볼 때 한국에서의 계급배반투표를 LIV로만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감이 있다. 정보수준, 즉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잘못된 정보의 유권자(EIV : Erroneous Information Voter), 편향된 정보의 유권자(BIV : Biased Information Voter)를 양산하는 조중동 보수신문의 비정상적인 언론과점의 특수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아는 게 힘이지만 잘못 아는 것은 오히려 고집, 편견, 맹신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전혀 모르는 것, 접하지 않은 것보다 더한 독이 되는 것이다. 충성도 높은 조선일보의 열혈독자인 경우 화제의 대부분의 주제가 조선일보 기사에서 시작하고 끝나며 조선일보를 읽지 않으면 그와의 대화 자체가 힘들고 겉도는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한국전쟁, 남북분단으로 인한 첨예한 이념대립의 특수성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매카시즘이 아직도 먹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 빨갱이 타령만으로 진보진영을 주춤하게 만들고 국민절반이상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나라. 사회경제적 계급으로 내편 네편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좌파, 우파라는 맹목적 이념이나 '우리가 남이가' 식의 불합리한 지역주의로 내편 네편을 가르는 힘이 훨씬 막강한 나라. 가장 정확하고 치명적이며 구체적인 정보라도 좌파, 빨갱이 한마디로 무력화시키고 덮어버릴 수 있는 나라.

    0.1% 강자, 부자들이야 어쩔수 없다지만 일반인들, 평범한 소시민,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정작 그들의 지지, 지원, 연대가 절실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철거민, 빈자들을 사갈시하는 시선에는 소수, 비주류, 못난이, 열패자, 무능력자, 불평분자, 떼쟁이, 인간이면 모두가 꺼려하는 고난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과격 빨갱이라는 이미지가 항상 오버랩되며 덧씌워져 있다.


    LIV, EIV, BIV가 아니면서도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준 이들은 많다. 그들은 이 후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 않았고 이 후보가 도덕적이거나 정직하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조중동 독자 중 일부도 조중동이 매우 정파적일 뿐만 아니라 비열하게 정파적이고 편파적이라는 것을 안다. 아마 그들 중 일부는 정말 내키진 않지만 '빨갱이 나라'만은 막아야 한다는 구국의 일념만으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슬픔과 비극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언론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해결할 수 없는 비극이다.’ 태백산맥 조정래 작가의 말이지만 민족분단의 비극만 하겠는가.

    분단이야말로 남한이든 북한이든 한민족 모두가 짊어지고 가야할 멍에이자 비극인 것이요, 색깔론이야말로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언제든 주구장창 우려먹을 수 있는 수구보수진영의 필살기, 전가의 보도, 도깨비 방망이인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에도 이를 무력화시키고 형해화 할 수 있는 풍자, 해학, 유머라는 강력한 무기와 수단이 있으니 구지 인색하게 아껴둘 필요는 없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예전에 비할 수 없는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개그, 코미디맨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의 촌철살인의 눈부신 시사, 정치 풍자와 활동을 기대해본다. 과거 최양락의 <네로 24시>뿐만이 아니라 김형곤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능가하는 속 시원하고 수준높은 개그와 풍자가 만발하는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해본다.


    하여튼 이번 정권은 좌충우돌, 엉망진창!

    뭐 국민여러분 힘들기는 해도 웃기지는 않겠나...어허허허허~
    역대 정권 중 최고로 엉터리라는 확신을 마~ 저는 갖고 있습니다.(명텐도 모드!)


PS : EIV, BIV는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으로 넓은 의미에서 LIV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