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반기문마라톤대회 - 첫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 후기 (2015/05/31)
제9회 반기문마라톤대회 - 첫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 후기 (2015/05/31)
- 대회 참가 전
Marathon Half Course 기록표
이번 목표는 1시간 50분 이내 완주다. 21.0975km를 평균속도 km당 5‘12“의 속도로 뛰면 된다. 그런데 저번 예산대회 10km 출전 때와 같이 사전연습에서 목표를 이미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번과 달리 목표달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
고저가 있는 실전코스를 경험한 후 겸손해진 것인가? 어려운 코스로 몇 손가락에 꼽힌다는 소식에 지레 겁을 먹어 의기소침해진 것인가? 하여튼 무턱대고 레이스를 펼치기엔 만만치 않은 코스인 것은 분명한 듯! 좀 더 신중한 레이스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사전 답사하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여의치가 않으니 대회 홈피에 올라온 고저도를 참고하여 나름대로 코스공략의 계획을 세워본다.
A에서 출발 반환점 D를 돌아 다시 A’로 골인하는 하프코스 고저도
언뜻 봐도 오르락내리락 고저도가 심한 어려운 코스다. 더욱이 날씨라도 덥고 햇볕이 강하면 목표달성을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벌써부터 평소 언덕연습을 좀 더 해둘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체적인 계획은 B(4.7k 지점)까지는 km당 평균속도 5‘12“ - C(9.1k 지점)까지는 5’08” - D(10.5k 반환점)까지는 5‘06“ - C’(11.9k 지점)까지는 5‘08” - B’(16.3k 지점)까지는 5‘12“ - A’(결승점)까지는 5‘10”로 뛰는 것이다. (누적) 평균속도가 5’10“/km라면 1시간 49분 정도에 골인할 수 있을 것이다.
초반 오버페이스는 경계해야겠지만 후반 오르막을 생각하면 중간 반환점을 돌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놔야 한다. 관건은 B’(16.3k 지점)까지 평균페이스 5‘12“를 달성할 수 있느냐이다. 달성할 수만 있다면 나머지는 내리막이니 십중팔구 1시간 50분 이내에 들어올 수 있다. 각 구간마다 오버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모든 전략의 초점을 이 지점에 맞춰야만 한다.
비교적 고저도가 낮은 편안한 코스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스메이커만 쫓아가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와 같이 내 수준에 맞게, 각 구간에 맞게, 페이스를 나름대로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폰을 페이스메이커 삼아 나이키 플러스 러닝(Nike+ Running) 앱을 켜고 페이스를 점검해가며 뛰기로 하였다. 더하여 음악을 들으며 뛰면 힘이 좀 덜 들지 않을까?! 가장 힘들 C’~B’ 구간에서 Scorpions의 <Hurricane 2000>이 랜덤으로 흘러나온다면 마지막 고비를 너끈히 넘을 수도 있으리라. (^.^)
좋은 전략인지 아닌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 대회 참가
반기문마라톤대회 홈페이지
5월 31일! 아침 일찍 둔산 엑스포 남문 광장에서 주주클럽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음성으로 출발! 대전에서도 안개가 끼어있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음성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날은 더 맑고 더운 법인데 걱정이다.
도착하고 짐을 옮기고 부스를 설치하던 어수선한 와중에 작은 사고 혹은 헤프닝이 있었는데... 내가 급히 물을 먹느라고 그만 석유를 먹고 만 것이다. 공교롭게도 물과 석유가 든 PET병 두개가 나란히 있었는데 그 중 아무 생각 없이 석유를 택해 종이컵에 따라서 약 5분의 4컵 정도 꿀꺽 깨끗이 마셔버린 것!
풍-미-작-렬! 이것은?... 음료수계의 신세계!! - 투명하여 물과 구별은 안 되지만 얼마 안 돼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뒷맛이 일품이다. 꺼~억~ 트림할 때마다 진하게 올라오는 그 특유의 향내가 배 속에 정유공장 하나가 들어앉은 듯! 이미 넘겨버려 토하기에는 늦은듯하여 희석을 목적으로 급히 2L PET 물병 하나 반과 바나나 3개를 먹었다.
몸-매-작-렬! 이것은?... 바디빌딩계의 이단아!! - 명치 아래 미만한 원팩으로 불룩 부푼 윗배가 누르면 튕겨낼듯 탱탱하다. 움직일 때마다 물을 채운 풍선처럼 출렁이면서도 무거운 것이 배 안에 인공파도가 넘실대는 물놀이공원 하나가 들어앉은 듯!
‘고운’님이 빨리 대회 의료팀에 찾아가보라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속이 그리 쓰리거나 울렁거리지도 않고 맹독도 아니어서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래도 불안해서 시험 삼아 몇 분 뛰어보았더니 다행히 별 이상은 없다. 하긴 옛날 옛적엔 석유를 약으로 쓰기도 하고 얼마 전인 몇 십 년 전만 해도 민간요법으로 석유를 구충약 대용으로 먹기도 하였다니 그리 큰 탈은 없을 것이다.
‘이원숙’님은 걱정 반, 위로 반, 농담 반으로 덕분에 좋은 기록을 낼 거란다. 분명 일종의 연료 혹은 마약을 주입한 덕분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초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으리란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도핑테스트를 걱정해야 할 판??!!
불을 붙일 수만 있다면 세계최고기록은 따 논 당상!
하프 세계최고기록은 58분 23초, Zersenay Tadese(제르세나이 타데세, 에리트레아), 2010년 3월 21일
어쨌든 출발! 첫 오르막에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가뜩이나 안개가 걷히고 해가 떠오르면서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바람이 있어 다행이다.
B지점인 4.7k까지 평균속도 5분 18초, 예상보다 6초 늦은 페이스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 속도에 몸을 맡기는 느낌으로 다리에 충격이 오지 않을 정도로 페이스를 올린다. C지점인 9.1k까지 (누적) 평균속도 5분 05초, 예상보다 3초 빠르다. 내쳐 달려 D지점인 10.5k 반환점에서 평균속도 5분 03초로 전반을 마무리한다. 역시 예상보다 3초 빠른 페이스나 그리 오버한 느낌은 없다.
'김원영'님이 찍어주신 주로 사진
반환점을 돈 후 첫 급수대에서 물을 먹고 스펀지로 몸을 적신다. 이제부터 꾸준히 오르는 오르막길! C’인 11.9k까지 평균속도 5분 06초, 좀 느려지긴 했지만 아직까진 예상보다 빠르다. 이제 가장 가파른 B’인 16.3k까지 마지막 고비다.
해는 더욱 높아가고 발은 점점 무거워진다. 주자들도 뜸해져서 줄이 가늘어졌다. 뒤뚱뒤뚱 엄마오리를 줄지어 쫓아가는 아기오리들처럼 가로수 그늘을 찾아 왕복 2차로의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약속이나 한 듯 일렬종대로 앞사람을 뒤쫓는다. 어릴 적 한여름 땡볕에 흙장난 할 때 굽어보았던 개미들의 행렬이 떠오른다.
땀은 연신 흐르지만 한편에선 증발되는 느낌... 입에선 저 밑에서 올라오는 석유 냄새가 섞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하고 이상야릇한 단내가 나고... 결국 이 또한 지나가리라! (ㅠ.ㅠ) 하지만 이것은 고통 속에서도 아쉬움이 함께 하는 복잡미묘한 감정이다. 한편으론 잠시 멈추고 지긋이 음미하고도 싶은 선명한 순간, 색다른 느낌이기도 하다.
한창 힘에 부친 이때 아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박혜령의 <밀림의 왕자 레오> - “종국의 승리는 레오 것이다♬ 레오♪ 레오♪ 레오♪ 흰사자 레~~오♬” <Hurricane 2000>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힘을 주는 파워송이다. (^.^)
덕분에 그리 힘들이지 않고 B’에 도착, 정상 근처에서 러닝 앱이 들려주는 페이스는 ‘평균속도 km당 5분 10초’다. 예상보다 2초 빠른 페이스, 이제 목표에 거의 다 왔다.
고개 정상에 있는 급수대에서 마지막으로 물을 먹고 피니시까지 이어진 내리막길을 내쳐 달린다. 1시간 50분 이내의 목표는 이미 달성한 것으로 여기고 B’부터 대략 km당 4분 40초의 속도로 페이스를 올려 골인! 최종기록 1시간 47분 16초, 전체 평균속도 km당 5분 05초다. 성공이다.
“종국의 승리는 어멍 것이다♬ 어멍♪ 어멍♪ 어멍♪ 석유향 어~~멍♬” (^.^)
Sunday Daylight Fever(일요일 한낮의 열기)
마라톤과 더위로 후끈 달아오른 음성의 열기
- Performance from <Saturday Night Fever(토요일 밤의 열기)> -
- 마무리
레이스를 마치고 덥기도 하고 땀에 석유냄새가 배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여 한적한 화장실을 일부러 찾아가 탈의 후 샤워를 했다. 몸은 식혔지만 안에서 나는 냄샌지, 밖에서 나는 냄샌지, 실재로 나는지, 기분 탓인지, 비누칠을 했는데도 냄새가 영 가시지 않는 듯하다.
늦은 오후 집에 와서까지 다영이가 아빠한테서 웬 주유소 냄새가 난다고 했던 것으로 봐선 결코 기분 탓은 아니었다. 좋지 않은 냄새에 내색은 안하셨지만 주주회원들께 꽤 민폐를 끼쳤으리라. (ㅠ.ㅠ) 이후로도 이틀 정도 체취에 남아 있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다행이도 몸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다.
주주부스에서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풀코스 완주자들을 마중하기 위해 결승선으로 다 같이 나갔다. 저번 예산대회 때는 풀코스 100회 완주자가 ‘하나둘’님 한 분이었는데 이번에는 자그마치 100회 한 분, 200회 세 분이나 된다.
역시 주주클럽 전국 최강! 주주가 대세다!! 100회도 까마득한데 200회는....... 후덜덜! 상상이 안 된다. 이번 반기문대회는 주주클럽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뜻 깊은 대회임이 분명하다.
덕분에 왔다 갔다 왕복 4번, 마중주로 회복주는 제대로 했다. (^.^)
왼쪽부터 만정 김정만, 로드런너 허현, 갈매기 박기호(이상 200회), 산머루 성봉수(100회)님
이미지는 뉴시스 충북 인터넷 판에서 발췌
흔치 않은 일이라 이미 지역 언론에도 기사가 올라왔다. 대단한 분들! 대단한 주주다! 이번 음성 반기문대회는 완전 주주잔치 분위기였다. (^.^)
비교적 어려운 코스인 이번 대회를 마치고 몇 가지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언덕 오르막이 종아리 아래쪽 아킬레스건 부위에 부하를 많이 준다는 것. 평소 평지를 뛸 때보다 다음날 아침 그 부위에 묵직한 느낌이 더하다. 아마도 주로가 수평이 아니라 경사가 급하거나 요철이 많으면 발목과 아킬레스 부위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듯하다.
둘째, 오르막과 내리막의 페이스 속도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 물론 고저도, 경사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예상보다 더 차이가 벌어졌다. 고른 페이스를 위해선 언덕 연습이 더 필요할 듯.
셋째, 사전에 고저도 등 코스에 대해 자세히 알면 알수록 레이스 펼치기가 한결 수월하다는 것. 자기 수준에 맞게 코스를 세분화하여 전략을 짜면 큰 무리 없이 레이스를 펼칠 수 있다.
넷째, 중간 중간 거리와 시간, 평균속도 등을 체크할 수 있다면 페이스를 조절하며 레이스를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것. 좀 무겁고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아마추어는 시계나 스마트폰을 휴대, 착용하고 뛰는 것이 더 유리할 듯하다.
다섯째, 대회직전엔 자는 것, 먹는 것 등 컨디션 조절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아울러 석유를 들이키는 것 같은 돌발적인 불의의 사고도 조심조심! 떨어지는 낙엽도 경계해야 할 듯하다.
이렇게 즐겁고 힘들고, 재밌고 꿀꿀했던(석유 땜시) 유익한 하루가 가고 첫 하프코스 대회를 마쳤다. 올해 목표한 다섯 가지 중 두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 20점 획득, 합하여 중간 점수 100점 만점에 40점이다. 다음 세 번째 목표는 풀코스다.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