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80211) - 미투(#Me Too)운동과 평창동계올림픽에 즈음하여
스물세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180211) - 미투(#Me Too)운동과 평창동계올림픽에 즈음하여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저희가 믿고 의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으시오니 이렇게 새로운 한 주, 주님의 기쁜 성전에 다시 모여 예배드릴 수 있음을 감사드리옵니다. 이 은혜를 기뻐 송축하오니 저희를 축복해 주시옵고 평강 내려주시옵소서. 저희의 잘난 점, 못난 점을 속속들이 모두 아시고 저희의 허물과 죄까지 품어 용서하시는 주님께 한없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오니 이 기도와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조용히 멈추어 있을 땐 주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게 하시고, 앞서 나설 땐 씩씩하게 저희 입술이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저희 발끝이 주님의 길을 따라 걷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은 피하지 말고 부지런히 하게 하시고, 저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겸허히 받아들여 헛되이 스스로를 책망하지 말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해야 할 일은 성실하고 용감하게 임하게 하시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망설임 없이 단호히 거부하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저희에게 항상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강한 자를 존중하고 약한 자를 더욱 존중하게 하소서. 높고 멀리 있는 이는 두려움 없이 공평하게 대하게 하시고, 낮고 가까이 있는 이는 가벼이 여기지 말고 더욱 소중히 대하게 하소서. 여인의 발을 씻어주셨던 봄볕처럼 온화하신 주님, 성전을 정화하셨던 불꽃처럼 강렬했던 주님처럼 저희가 선하고 약한 이에겐 관대하고, 악하고 강한 이에겐 준엄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항거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워 주시옵소서. 모든 연약한 이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모든 강한 이들에게 겸손을 주시되 혹시라도 저희가 주님의 뜻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하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주님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이 저희의 몸이 저희의 정신에 복종하게 하시고, 저희의 욕망과 오감이 저희의 이성과 양심에 복종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지금 한창 이 나라에서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인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사옵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하여 후회 없는 기량을 펼치게 하시되 개인의 영광, 가문의 영광을 넘어 나라의 영광, 민족의 영광 종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드러나는 평화와 화합의 축제의 장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평화를 사랑하고 문화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저희들의 뜻이 세계만방에 널리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저희들을 주님의 숨겨놓은 도구로 쓰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나라와 민족에 따뜻한 훈풍이 불고 그 온기가 세계 곳곳으로 전해져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던 주님의 뜻이 이 지구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영광을 이루게 하시옵소서.
주님, 저희 우정교회 성도들을 축복하고 돌보아 주시옵소서. 육체의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있사옵니다. 이들을 굽어 살피시어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성가대의 목소리에 은혜 내려 주시옵고 교회 각 기관과 여기저기 숨어서 성심봉사하시는 모든 성도들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목자이신 △△△ 목사님을 축복하사 항상 강건케 하여 주시옵고 저희에게 축복의 통로, 은혜의 통로로 굳건히 세워 주소서. 이 분께 성령을 내려주셔서 주님의 뜻과 말씀을 들려 주시옵고, 이 교회에 성령을 내려주셔서 주님의 뜻과 선을 다함께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엘 그레코, <성전정화>
예수님이 성스런 분노로 돈이 오고가는 더러운 성전을 정화하셨던 당시의 상황과도 유사하게(지금도 일부 교회에서 집사, 장로의 직분을 받는 조건으로 암암리에 강요되는 거액의 헌금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사실상 교회직분을 사고파는 것으로 이들은 호화롭고 웅장한 회칠한 무덤 안에서 멋들어진 에봇을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모독하고 있는 독사의 자식들이다. 이들의 죄는 당시 성전 안에서 기도를 위해 소, 양, 비둘기 등 희생재물을 샀던 순례자, 생계를 위해 그것을 팔았던 상인, 자리세 명목으로 그들로부터 성전세를 걷었던 성직자들보다 그 죄질이 훨씬 나쁘다. ☞ 성경읽기 0080) - 우리사회에 만연한, 하지만 대부분이 은폐되어 왔고 심지어 부지불식간에 그러려니 용납되어져 왔던 - 성희롱, 성폭력 문제가 서지현 검사, 임은정 검사, 최영미 시인 등에 의해 폭로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미투(#Me Too)운동으로 번지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아직까진 일대 변화의 계기가 되리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조금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은 숨죽이고 있고 가해자들은 여기저기서 저항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동조자들은 은근히 가해자들을 두둔하고 있다.
이것은 오직 성(性)에 관한 것도 아니고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식의 협소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성간이든 동성간이든 성을 매개로 했을 뿐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이 본질이다. 거기엔 항상 힘과 힘의 우열 곧 권력관계가 내재되어 있다. 인간이 무인도에 혼자 있지 않는 한 그것은 진보, 보수,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인간세상 어디에나 있다. (아니다! 무인도에서도 동식물을 포함해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서 있다.) 그것은 가정에도 있고 학교에도 있고 회사, 교회, 자선, 구호단체에도 있다.
힘, 권력이 약한 자가 힘, 권력이 강한 자를 유린할 순 없다. (성에 관계없이) 평검사가 부장검사를 추행할 수 없고, 이병이 병장을 폭행할 수 없고, 평사원이 회장님께 갑질할 수 없고, 새내기 시인이 원로 시인을 희롱할 순 없다. 하다못해 길거리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이도 처벌을 감면받기 위해 자신의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하더라도 그 대상은 항상 여성, 노약자 등 힘없는 자들이고 떡대 좋은 건달인 경우는 하나도 없다.
정신이 정상이 아닌 심신미약 상태, 대취하여 인사불성인 상태에서도 혹 자신이 도리어 두둘겨 맞을까, 피해를 볼까 염려하여 반드시 대상을 가려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그 이면에 항상 의식적이면서도 동시에 무의식적인 생존본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원시야만의 시대부터 장구한 시간동안 이어지며 우리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것, 그래서 우리들 중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강력한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이것이 면죄부의 논거가 되어선 안되고 오히려 스스로 더욱 경계해야만 하는 논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호주머니가 두둑해지면 기분이 좋아지고(반대로 얇아지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근육이 부풀고 덩치가 커지면 간댕이가 부어서 없던 용기도 생기는 것처럼 호르몬과 유전자 따위, 우리 몸이 관계하는 ‘생리’다.
우리들 모두는 (힘을 갖는다면) 약자를 유린하고 희롱하고 싶은 유혹, 심지어 기회가 닿은대로 그래야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조종자의 명령에 노출되어 있다. (힘을 잃는다면)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도 강자 앞에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비참함, 헤헤거리며 굴욕을 기꺼이 자처하는 비루함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도마뱀이 매를 보고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며 재빨리 줄행랑을 치는 것과 같고, 사자가 무리 중에 가장 연약한 어린 임팔라를 노리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믿음과 공부다.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세상이치와 인간도리에 대한 공부다.(주로 인문학. 예를 들면 己所不欲 勿施於人-자신이 원치 않는 것은 타인에게도 행하지 마라. 《論語》〈衛靈公 二十三〉)
비기독교인들은 별개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을 굳게 믿고(굳게 믿는 것만큼 옳게 믿는 것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가르침만 따르고 그 계율만 지키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세상의 화와 죄를 피하기는 충분할 것이다. (예를 들면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마태 22:39] "너희가 이 형제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일이다." [마태 25:40] "잔치를 베풀 때는 가난한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은 네게 되갚을 것이 없다." [누가 14:13,14]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마가 10:45]...등등 모두 예수님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