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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大望)》 6권 리뷰

어멍 2016. 2. 19. 22:26

 

    《대망(大望)6권 리뷰

 

 

    “억센 매를 너무 많이 길러 곤란당하는 일도 가끔 있는 거요. 그렇다고 그 매의 발톱을 잘라버리면 본전도 못 찾지.” (43p)

    - 이에야스의 강경파(매파) 가신 사쿠자에몬이 온건파(비둘기파) 가신 가즈마사에게 건네는 말

 

    기세를 올리며 압박해오는 히데요시에 대해 이에야스는 대결이냐 화평이냐의 양자 기로에 있다. 가신들의 의견도 둘로 나뉘지만 강경파가 득세하는 형편이다. 본래 미카와 출신 촌동네 무사들, 순수하지만 투박하여 싸울 줄만 아는 사나이들이라서 의리는 깊지만 협상이나 외교에는 재주가 없다.

    비교적 온건파 성향이 강한 주군 이에야스는 이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다. 싸움 좋아하는 호전적 기질로는 풍림화산(風林火山)으로 유명한 다케다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순이다.

    가쓰요리는 너무 전쟁을 벌이다가 멸망했고 노부나가는 방심하여 가신 미쓰히데에게 죽게 된다. 히데요시는 쌈도 잘했지만 외교도 능란했다. 평민출신이라 붙임성이 있어서 인심을 잘 얻고 내부단속과 결속에도 능했다. 이에야스는 나이가 들어 원숙해질수록 더욱 싸움을 피해 어떻게든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평화애호가가 된다.

    순박하여 충성심은 강하지만 촌스럽고 답답한 면이 있는 가신들 사이에서 이에야스는 자신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대외교섭을 맡길 메신저 역할을 할 만한 가신을 아쉬워하는데... 그래서 결국 가즈마사는 영지를 탈출하여 히데요시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는데... 가신들은 배신, 반역이라고 격분하지만 이는 이에야스와 이심전심 교감을 통한 것이었다.

 

    외교관도 필요하고 군인도 필요하다. 온건파도 필요하고 강경파도 필요하다. 하지만 최고 리더는 반드시 중립이어야 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강경, 온건파를 운용해야 한다. 접대는 온건파를 앞세워 화기애애하게, 협상은 중립파를 앞세우고 강경파를 암시하며 당당하게, 승패의 대결 때는 강경파를 앞세워 매섭게 해야 한다.

    매파의 일방득세, 비둘기파의 일방득세도 곤란하다. 매파가 들끓으면 다 실각시킬 필요야 없겠지만 숫자를 줄여야 한다. 발톱을 자를 필요야 없겠지만 좀 둥글게 다듬고 새장에 잠시 가둬놔야 한다. 비둘기파가 들끓어 방심하고 문약해지면 좀 굶겨서 야산으로 내몰아 찬바람을 맞혀야 한다. 야생성을 자극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경파 온건파 위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통일대박이었다가 김정은 제거, 중국에 빠르게 접근했다가 서운함 토로하며 척지고, 개성공단 폐쇄해놓고 경제가 심상치 않자 국무회의에서 한국경제 문제없다 홍보하라고 당부... 냉온탕을 오가는 좌충우돌, 앞뒤가 안 맞는 자가당착이다.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조중동 종편 등 강경파 일색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가장 강경한 매파다. 촌스럽다. 꽉 막혔다. 순박하고 정직한 면은 없이 고집만 세다. 정치도, 패션도, 70년대 복고풍이다. 21세기 스마트하고 세련되고 창조적인 이미지와는 극과 극이다. 결국 그런 복고풍 이미지 덕에 대통령이 된 셈이지만...

 

    보수적이지만 온건하고 현실감각 있는 직업관료, 기업가들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소설에서도 전쟁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장사꾼들이다. 그들은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충돌을 적극적으로 막았고 조선출병 역시 강력하게 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 이익인 것은 전쟁보다 교역이었다.

    대통령은 미국에게 대꾸를 못하고 대통령 주변은 대통령에게 대꾸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위기가 깊어지면 분명 어떤 형태로든 이들이 나서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벌써부터 개성공단 기업가들이 박근혜 정부의 공단폐쇄결정을 원망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야스의 눈으로 볼 때 히데요시의 패권 확립에는 노부나가나 미쓰히데와 서로 통하는 위험성이 느껴졌다. 자기 힘만 지나치게 믿고 과시하면서 천하를 장악해 가면, 그 개인 생명의 종말이 언제나 난세로의 역행을 뜻하므로 거기에서부터 무한히 반역과 모반이 도발될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따라서 그러한 개인의 위대함에 다시금 한 가닥 의지의 선을 통하게 하여 거기서 다음의 안정 세력을 육성해 가는 계책이 있어야만 한다. (108p)

 

    진시황이 죽자 반석같던 나라가, 철통같던 통치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각지에서 반란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한 개인의 역량에 의한 통치는 그 한계가 뚜렷한 것이다. 이에야스의 눈에는 노부나가도 미쓰히데도 히데요시도 그러한 성향이 다분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후에 천하를 얻은 후 제도와 법과 계급을 정비하고 성리학을 도입하고 에도막부를 열어 체제를 안정시킨 후 2대 쇼군을 지명하여 권력승계까지 마무리한다.

    한사람이 열걸음을 가는 것보다 열사람이 한걸음을 가는 것이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낫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보다 반걸음 앞서갔고 노무현 대통령은 한걸음 앞서갔지만 그 한걸음마저 한국의 현실에선 무리였다. 그 시대와의 간극을 극복치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이 시대, 이 체제가 생각보다 훨씬 완고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낳아야 한다. 이어져야 한다. 계속돼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낳듯 다음 사람을 낳고 키워야 한다. 이어달리기를 하듯 건네줄 바통, 미션이 있어야 한다. 예수에게는 12사도가 있고 공자에게는 제자들이 있다. 노무현에게는 친노가 있고 박근혜에게는 친박이 있다. 예수와 공자에게 제자들이 없었더라면 그 가르침이 면면히 이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친노와 친박이 사라진다면 노무현도 박근혜도 멀지 않아 잊혀질 것이다.

    한 개인을 중심으로 집단을 이룬 후 제도를 정비하여 구조를 완성한다. 개인집단(세력)제도(시스템)구조(체제).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다. 접근조차도 힘들다. 집단이 시스템을 만들며 그 시스템의 총합인 체제가 다시 그런 집단을 재생산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제도와 구조는 보수에게 절대 유리하다. 정치, 경제, 사회, 언론, 사법, 교육, 군대... 까지 어느 것 하나 진보에 유리한 게 없이 보수의 확대재생산에 유리한 구조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밑바닥부터, 정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층부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다른 부문에선 단기간에 변화시킬 마땅한 수단이 없다. 투표와 선거를 통해 정치를 바꾸고 그 힘으로 다른 부분을 고쳐나가야 한다. 가장 아래에 있는 힘으로 가장 높은 상층부를 치는 것이다.

    이 경우 정치야말로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수단이다. 여기에 현대 민주주의의 역동성과 축복이 있다.

 

 

    “막달레나!”

    “싫어요, 난 지옥에 간 어머니 곁으로 가서 위로해 드려야 해요.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소노는 어머니가 천국에 가신 줄만 알았어요.” (381p)

 

    히데요시 앞으로 불려온 남녀 천주교 교인이다. 히데요시가 이들의 주장을 듣더니 예수를 영접하지 않으면(혹은 못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천주교 교리에 의하면 이미 죽은 너희들의 부모는 지금쯤 지옥에 있지 않겠느냐고 되묻자 여신도(막달레나 곧 소노)는 슬퍼하며 신앙을 버리려 하고 남신도는 당황하여 저지하려 한다.

    당시 일본에는 재래의 신불(神佛-곧 신사로 대표되는 전통 민간신앙과 불교)에 서양의 천주교가 새로이 유입된다. 민중들뿐만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영주에게도 다수 전파되는데 조선침략의 선봉인 고니시 유키나가 역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이들이 기존 신사와 사찰을 부수는 등 공격적인 선교활동을 하여 곳곳에서 말썽을 피웠던 것이다.

    당시 서양의 상선, 군함과 함께 왔던 천주교 선교사들은 단순히 선교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대사관 등 외교시설에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정보요원들이 있는 것처럼 이들 또한 서구열강의 세력 확대를 위한 첨병 역할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 읽었던 단테의 <신곡>에는 예수 이전에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의 철학자와 갓난아기 등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에 머무르고 있다. 연옥은 중간에서 지하의 지옥과 천상의 천국을 잇는 산()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들은 운 나쁘게도 예수를 영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지옥에 있는 것보다야 낫지만 불합리하고 억울한 면이 있다. 아무리 이성을 초월한 것이 신앙이라지만 쉽게 수긍할 수가 없다. 됨됨이로만 따지면 역대 어느 교황보다도 훌륭한 위인들이고 순수하기로만 따지면 세상에서 으뜸인 갓난아기들이다. 그래서, 그나마, 그들에겐 예수를 영접하여 천국에 들 가능성이 아직까진 열려있다.

 

<신곡>을 들고 있는 단테 뒤로 연옥의 산이 보인다. - 미켈리노 작

 

    아리스토텔레스, 갓난아기, 공자... 멀리로는 초기인류로부터 가까이는 조선시대 우리조상님들까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천국? 지옥? 연옥? 크리스천이지만 교리도, 믿음도 깊지 않은 나에겐 아직도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다.

 

 

    사카이와 규슈 지방 이곳저곳에 남만의 배가 온다는 사실은, 다만 배가 들어왔다는 현상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배를 보낼 만한 힘이 있는 자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적어도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다. 그 배후의 세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할 것임에 틀림없다. (553p)

 

    당시 유럽의 동아시아 진출은 남만 즉 스페인 포르투갈의 구교(舊敎)국이 먼저 오고 네덜란드 영국의 신교(新敎)국이 뒤쫓아 오는 형국이었다. 모두 해양력이 막강한 유럽의 강호였다.

 

    스티븐 호킹은 만약 외계인을 만난다면 친하게 사귀기보단 전쟁을 할 것이고 전쟁을 한다면 십중팔구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와 접촉을 시도할 수 있다면 분명 우리보다 과학문명이 월등하게 발달한 종족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얻을 것이 없다면 우리를 무시하고 우리도 모르게 스쳐지나갈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접촉하는 유일한 동기는 침략, 정복뿐이 없을 거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유의미하게 접촉하는 외계생명체를 만난다면 지구인은 반드시 멸망한다.’

    입장을 바꿔 우리가 다른 행성까지 날아가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요리조리 탐색한 후 별 이익이 없으면 스쳐지나가거나 그도 아니면 그 종을 멸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먼저 발견하면 우리가 이기고, 그들이 우리를 먼저 발견하면 그들이 이긴다. 마치 저격수와 저격수간의 대결과 같다.

 

    그러므로 앉아있는 자는 걷는 자에게 지고 걷는 자는 뛰는 자에게 진다. 대개가 움직이는 자가 정지하고 있는 자를 이긴다. 이동하는 유목민이 정주하는 농경민을 이긴다. 공성은 수성에 비해 3배의 군사력이 있어야 하고 사정이 밝지 않은 적지에서 벌어지는데도 번번이 정복에 성공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개가 공격하는 자가 수비하는 자를 이긴다. 물론 누구나 수비보다 공격을 선호하고 안으로 수비가 든든한 후 밖으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선수, 선공이 중요하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백전백승의 비밀 역시 선공에 있었다. 준비된 자, 노려보고 있는 자만이 선공할 수 있다.

    승패의 비세는 수비고 승세는 공격이다. 전쟁이라면 공격, 대결이라면 선빵이 승리의 비결이다.

 

    《대망(大望)6권 끝.

 

 

    이하는 2019/05/29 추가함.

 

    단테의 <신곡>을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완전치 않은 관계로 본문 중에 오류가 있어 바로잡는다.

 

    "단테의 <신곡>에는 예수 이전에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 등의 철학자와 갓난아기 등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연옥이 아닌 9개 층으로 이루어진 지옥의 제1층인 림보(Limbo)로 가게 된다. 즉 아기들이나 고대인들의 영혼(주로 시인, 철학자, 수학자 등 서양의 성현들)은 연옥이 아닌 지옥 중 제1옥에 있는 것으로 이곳은 어떠한 형벌도 받지 않으나 대신 신(하나님)을 볼 수 없다.

    즉 선량하지만 세례를 받지 못한 아기들이나 저명한 고대인들은 지옥(비록 가장 얕은 지옥일지라도), 크게 착하지도 크게 악하지도 않아서 지상의 갖가지 소소한 죄를 짓고 살지만 세례를 받았던 평범한 사람들은 연옥에 있게 되는 것이다.

    연옥은 불로서 자신의 죄를 정화하고 최종적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중간단계의 공간으로 대죄가 아닌 교만, 질투, 분노, 음욕, 탐식, 탐욕, 나태(칠죄종) 등 갖가지 소죄를 짓고 살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속인들에겐 희망의 공간인 셈이다.

 

    이상은 중세 가톨릭신앙에 근거한 단테의 종교관, 세계관으로 절대적 진리도 아니며 본 글의 전개와 맥락상 크게 문제될 오류도 아니지만(어차피 천국에 들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 팩트체크 차원에서 바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