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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효과와 떡고물경제

어멍 2009. 3. 20. 11:57
택시기사 : 경기가 안좋아 큰일이예요. 사람들이 택시도 안타고.
나 : 안좋긴 하지만 경기 안좋은 게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요. 지난 5년간도 다들 경기가 안좋다, 안좋다 힘들어 했잖아요.
택시기사 : 그래도 이번엔 심한 게...집값이 자고나면 뚝뚝 떨어지는 게...
나 : 집이나 부동산이 많으신가봐요?
택시기사 : 아니 뭐... 그건 아니고. 있는 사람, 부자들이 써줘야 우리같은 사람들도 벌어먹고 살죠.

 

    얼마 전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분과 나누었던 대화다. 그 분의 생각을 단순화하자면 경기가 안 좋은데 그 대부분이 부동산경기(건설경기 포함)의 침체 때문이고, 이 때문에 (부동산)부자들이 금전적, 심리적 여유가 적어져서 택시 같은 서민경기도 죽을 쑤고 있다는 거다.(그 정도 부자들이 과연 택시타고 왔다갔다 할까??)

    실질적이든 심리적이든 경기,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건설분야의 과도한 집착과 비중도 뿌리깊은 문제이지만 부자가 잘 살아야(잘 살게 된 후라야) 서민들도 잘 살수 있다는 사고도 이에 못지않게 뿌리깊게 일반화된 생각이다. 성장제일주의, 성장이 무조건적으로 분배를 보장한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이러한 사고는 구체적으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에 의한 것이고 쉽게 비유하자면 계단식 논(다랭이 논) 경제, 떡고물 경제 정도 되겠다. 


                    위에 있는 논에 물이 차면 다음 논에 물이 흘러내리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물이 채워진다.


    박정희씨 밑에서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며 한 때는 2인자 권세를 누렸던 이후락은 그의 부정축재를 비판하자 "떡을 만지는데 떡고물은 자연히 떨어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소위 떡고물이라는 것이 그때 돈으로 400억이니, 600억이니 했다니 그 떡은 도대체 얼마나 컸으며 누가 먹었던 것일까?


    떡고물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대체로 숙명론, 역할론, 인정론 등인데 숙명론이란 부패, 비리란 역사이래로 있어왔다는 체념적 혹은 도발적 태도이며 역할론이란 뇌물, 리베이트, 급행료, 접대비, 사례, 봉투, 뒷돈, 검은돈 등이 기계에 기름칠 하듯 경제에 일정부분 윤활작용을 한다는 것이며 인정론은 ‘사람 사는 세상’-이렇게 좋은 말이 이 경우에도 쓰이다니!!-의 소소한 인정 정도로 보는 태도이다. 숙명론은 대담하고도 비열한 괴변이며 인정론은 소박하고도 허약한 괴변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역할론의 윤활작용은 몇 가지 고려할 만한 여지가 있다.

    조사와 통계에 따르면 국민소득 1만 달러 이하의 후진국에서는 뇌물이나 급행료 등이 국가경제 차원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경제운용의 속도가 안 나고 심지어 일이 진척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이다. 정부가 일정부분 개발독재 형식으로 경제를 운용, 발전시키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후진국에서는 정부, 공공부문의 부패와 후진성 때문에 민간 경제주체들의 이러한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종의 필요악이라는 거다.

    하지만 소득이 오르고 어느 정도 사회의 체계가 잡히고 말 그대로 순수한 본연의 경제논리인 효율, 합리성, 투명성이 중요해지면 뇌물이나 검은돈 등은 그것을 해치는 치명적인 악이 된다는 거다. 1만 달러라는 경계는 국민의식수준이나 경제관습, 민족성 등에 의해서 매우 가변적일 것이다.


    윗사람이 떡을 먹어야만 아랫사람에게 떡고물이라도 떨어진다는 생각, 돈이 돌아야 경기가 살고 돈이 돌려면 있는 사람이 써줘야 하고 그러려면 부자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각종 제도적 규제를 푸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들의 기를 살려주고 비위마저 맞춰줘야 한다는 다소 노예근성적인 발상이 낙수효과를 주창하는 이들의 의식적, 무의식적인 솔직한 속내다.

    원래, 주인은 노예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오직 노예가 주인의 눈치를 살필 뿐이다. 떡값에 맛들이다 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떡값준 주인의 눈치를 살피게 되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이 (노동)파업을 하면 이유불문 눈쌀을 찌푸리고 욕부터 해대지만 재벌 회장님들이 검찰, 법원에 불려다니면 이유불문 혹시라고 심기가 불편해지셔서 투자를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는 등 (자본)파업, 태업이라도 하실까 봐 벌벌 떤다.
 

    시민들의 사회지도자에 대한 관대한 도덕적 잣대는 떡을 허용함으로서 떡고물을 취하려는 공범의식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큰 도둑이 설치면 작은 도둑은 양심의 가책을 덜 받으며 결국 서서히 무뎌져서 도둑질도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 속에 큰 도둑을 주인으로 섬기는 작은 도둑의 탐욕, 노예근성, 공범의식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떡, 떡고물 : “어른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옛 속담은 떡보다 빵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보다
                    판검사나 고위공직자에게 더 어울릴 듯하다. “강자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낙수효과는 있다. 하지만 내가 이에 비판적인 것은

    첫째. 그 효과가 생각보다 미미하다는 거다.

    취업유발계수처럼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대개가 그들만의 시장에서 맴돌 뿐이다.(한계소비성향 즉 추가 소득이 생겼을 때 늘어나는 소비 정도를 보여주는 비슷한 지수는 있지만-그마저도 저소득층일수록 높다-계층간의 정확한 자본의 이동, up/down을 보여주진 못한다.) 삼촌이 여유가 생기면 조카들 용돈이 두둑해져 동네 구멍가게 수입이 늘어날 수는 있다. 이것도 일종의 낙수효과지만 그 돈이 상류층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돈도 아닐뿐더러 기껏해야 군것질값 정도이다.

    오히려 종부세 감면 기념(!)으로 와이프에게 루이뷔통 가방을 사주면 그 매장 여주인은 늘어난 수입으로 옆에 있는 아르마니 매장에서 남편 양복을 한 벌 더 사주는 것이 상류층의 일반적 소비패턴이다. 이러한 고부가가치 시장, 명품시장은 서민시장과는 별개이며 그나마 외국에 비해서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절대열세이다.

    그러면 대뜸 글로벌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이러한 수요의 국내시장 흡수를 강조한다. 굳이 불편하게 쇼핑, 여행, 골프, 유학, 의료서비스 등을 위해 외국에 나가지 말고 비용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으니 국내에 이런 시장을 만들고 재원을 투자해 달라는 거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 듯 나라 전체의 정책, 발전전략이 최상류층 몇 프로의 필요와 주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설혹 경쟁력을 확보해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최상류층들이 물밀듯이 방문하고 한국의 명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면 과연 서민경제가 살아날까??

    귀족경제와 서민경제는 시장도 틀리고, 소비메커니즘도 틀리고, 정서도 틀리다.

    루이뷔통은 왜 유명한가? ‘싸고 질 좋다’는 평가는 루이뷔통에겐 모욕이다. 루이뷔통은 비싸다는 것으로 유명하고, 틀리다는 것으로 유명하고, 유명하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품질과 디자인은 이미 부차적인 것이다. 명품이란 엄밀히 얘기해서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상품과 상품 사이의 차이와 차별, 로고와 브랜드, 상징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평판이나 희소성, 심리적 자기만족도이다.(바꿔말하면 남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직업적 필요성도 없고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거적을 걸치더라도 자기만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원칙적으로 무방하다.)


    귀족은 여간해선 서민의 정서를 이해하기 어렵다.(서민이 귀족정서를 이해하기 어렵기도 매한가지지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고(마리 앙투아네트), 밀국수가 비싸면 쌀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되고, 등록금이 없으면 장학금을 받으면 되고, 영어사교육비가 부담되면 학교에서 열심히 영어몰입수업 들으면 된다. 기적의 역사를 이룬 위대한 국민이니 뭔 일인들 못해내겠는가. 실패와 좌절은 단지 게으르고 무능력한 지지리도 못난 개인탓일 뿐이다.

    뭐. 대충 이런 식이다.
 

    핵심은 경제를 살리자는데 누구의 경제를 살리자는 것인가? 국익이라면 어느 계층의 이익을 중심에 둔 국익인가 하는 점이다.

    종부세에 맺힌 한을 풀고 귀족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에서는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영원히 찬밥신세일 뿐이다.


    둘째는 낙수효과라는 게 경기확장기에는 유효하지만 경기수축기, 침체기에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는 거다.

    경기가 좋으면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하류층은 하류층대로 모두 해피하지만 일단 경기가 얼어붙어 상류로부터 낙수가 차단되면-나부터 살고 내 논 채우는 게 먼저다-자생력 없는 하류는 급격히 고사하고 만다.


    셋째는 보다 근본적인 문젠데 낙수효과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긍정, 조장하거나 체념해서는 영원히 받아먹는 떡고물 신세를 못 면한다는 거다.

    크고 푸짐한 떡은 아니더라도 작고 아담한 떡이라도 손수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자생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재벌, 땅부자, 상류층의 경제가 중심이 아니라 중산층, 서민의 경제가 중심에 와야한다. 과도한 수출의존도, 대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시장과 중소기업을 키우고 살려야 한다.

 

    이러한 낙수효과, 성장지상주의, 성장우선주의는 나 같은 경제 비전문가에게도 쉽게 반박당하는 허점투성이 이론이고 경제전문가 사이에선 이미 효과가 없거나 미미한 이론으로 판명된 상태다. 어쩌면 하나의 경제정책이라기보다는 정치인들의 구호에 가깝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작금의 이명박정권하에서의 대한민국에서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거위의 배를 가르고 황금알을 나눠갖기보다 거위를 크게 기르자는-극단적 상황을 가정하여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얼핏 들으면 지속가능한 성장을 연상시키는-나눠먹자보다 키워먹자란 말, 알고 보면 기약 없는 사기이자 협박에 불과한 이러한 말들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기도 하려니와 낙수효과라는 것이 항상 감세론의 근거가 되어 그것과 짝을 이뤄 다뤄지는 포퓰리즘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낙수효과, 감세, 사적영역확대, 규제완화 또는 폐지가 한 패키지이고 그 반대편에 분수효과, 증세, 공적영역확대, 적극적 정부역할 또는 규제강화의 패키지가 있다.
    좀 더 확장하면 전자에는 중앙집권주의정책, 집중개발주의정책 후자에는 지방분권주의정책, 균형발전주의정책이 속한다. 힘센 놈부터 밀어주자는 것, 강한 놈만 더 강하게 만들자는 것, 폭발하든 무너지든 일단 서울수도권을 슈퍼도시로 만든 다음에야 그 과실이 지방으로 퍼진다는 논리는 결국 극단적인 낙수효과, 떡고물 경제의 또다른 버전이다.

    감세란 것도 참 묘한 게... 알면서도 넘어가는 치명적 유혹이랄까. 부유층이 감세 효과를 더 누린다는 건 상식에 가까운데도 매번 마음이 설렌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증세가 저소득층인 자신에게 유리한 줄 알면서도 만원의 어음보다 백원의 현찰이 좋지 싶고, 자신이 백원 감세고 부유층이 만원 감세라도 찬성하기 십상이다. 세금 좋아하는 사람 없듯이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마음 같아선 나만, 내 직종만 감세, 면세되었으면 싶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 심리를 보수층, 기득권자들이 교묘히 부추기고 이용해 먹는 것이고......


    “진정 정부가 감세효과를 기대한다면 빈곤층에 퍼다주라. 그 돈은 ’분수효과‘에 따라 흘러흘러 부자에게 어차피 갈 것이니 부자는 그 돈으로 더 쓰면 되지 않겠나“

    최윤재 교수(고려대, 경제학)가 든 낙수효과의 역논리다. 낙수효과의 논리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경기확장기, 경기버블하에서의 낙수효과에만 기댄 이명박정부가 경기수축기, 불황의 상황에서 계속 이러한 부유층 감세 정책을 초지일관 고수한다면...한 편에선 여론을 의식하여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적자를 불가피하게 감수할 수밖에 없다면...수입 없이 지출, 수혈 없이 출혈만 있는 꼴로 장기적인 국가재정파탄, 경제파국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워낙 그 뿌리가 부자정권, 부도덕한 정권이다 보니 감세도 부자감세인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고 재정지출도 밑 빠진 독 물붓기식, 눈 먼 돈 먼저 먹기식의, 다분히 최악의 정책조합, 정책집행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신자유주의, 부유층감세, 규제완화, 사영화로만 폭주하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적절하고도 균형잡힌 정책조합을 언급하기엔 상황이 그리 한가하지 않다. 혹 스태그플래이션이나 공황등의 응급상황에서는 감세와 재정지출확대란 두 정책을 동시에 무차별적이고 과감하게 쓸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저소득층, 빈곤층에 퍼붓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투명하고 공정하게!) 국가재정의 건전성 뿐만 아니라 경기진작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빈자의 소비성향은 부자의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이른바 고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얘기인데 이미 많이 쓰는 부자가 추가로 돈이 생긴다 한들 그것이 종부세 감면 등으로 생긴 꽁돈이거나 외국으로 나가서 명품, 사치품 소비를 하지 않으면 몰라도 얼마나 더 쓸 수 있겠는가?


    낙수효과가 아니라 분수효과라야 한다. 빈곤층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살찌우기 위해 분수효과를 일으키고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다. 물줄기가 어린 새싹과 줄기에 골고루 뿌려져 자생력을 길러주고 된바람에도 서로 의지하여 쓰러지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지속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황금거위 한마리만 목매달고 바라보지 말고, 숟가락만 빨고 있지 말고, 그 거위의 배를 갈라 모두 함께 오손도손 나눠먹으며 힘을 낸 후 여러 사람이 여러 거위를 분양받고 길러 튼실한 거위알도 생산하고 맛있는 거위고기도 먹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속성장의 참다운 모습이다.

                                                 분수효과(Trickle-up effect or Fountain effect)

                                       경제. 경세제민. 물주고 가꾸듯 농부의 마음으로 애민하는 것.

    아직 국민도, 이명박 정부도 낙수효과, 성장제일주의의 신화에 매몰돼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꾸려면 국민들의 선거와 투표를 통한 정치적 압력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먼저 이러한 잘못된 인식, 신화를 버려야 한다. 백날 비판하고 데모해도 정권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이명박 정부에겐 쇠귀에 경읽기, 별무소용이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 부시의 공화당이 패배한 이후에야 비로서 부시가 꼬리를 내리고 네오콘 세력이 쇠퇴하고 결국 사분오열, 지리멸렬해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서민대중이 몇몇 대기업, 재벌, 상류층 앞에서 명절때 삼촌 주위로 몰려드는 고만고만한 코흘리개 조카들처럼 삼촌의 기분을 살피며 삼촌의 시혜만을 바라는 꼴은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삼촌은 정겹고 조카들은 귀엽기라도 하지......돈을 향한 무한경쟁, 무한질주의 신자유주의 자본경제하에서 서민들이 1% 상류층의 낙수효과에만 기대는 것은 발톱 아래 눌려있는 토끼가 호랑이의 관용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