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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책읽기

가족 독서 목록표 & 우리 가족 책읽기

어멍 2014. 2. 25. 22:03


        가족 독서 목록표 & 우리 가족 책읽기




현재까지 모두 21권의 책이 기재되어 있다.




    나도 읽고, 아내와 다영 종서도 읽고... 책 좀 읽어보려고 ‘가족 독서 목록표’를 작년 5월에 만들어 보았는데 생각처럼 여의치 않다. 퇴근 후 저녁시간과 일요일 낮시간에 거실 테이블에 모두 모여 따로 ‘몰입시간’이라고 정하고 기본 1시간, 짧게는 30분 정도 함께 독서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처음과 다르게 흐지부지 되어가는 분위기... 다시 나도, 가족들도 다잡아 봐야겠다.

    하지 않았던 것보단 많이 읽었으니 그동안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박씨전] [레미제라블] [내려놓음] [예술의 세계사] [까라마조프네 형제들 Ⅰ,Ⅱ] [씨드] [그리스인 조르바] [소크라테스를 만나다] [적과 흑] [내 마음속 대통령] [어떻게 살 것인가] [빅토르 하라] [트로이 전쟁] [고전, 깊이 읽기] 등을 읽었으니 이만하면 평소보단 많이 읽은 셈이다.

    그리고 이 중 몇 권은 다영, 종서, 아내와 둘이서 혹은 셋, 넷이서 독후감상모임을 했으니 나름대로 아이들에게도 성과가 있었다고 보겠다.

 


    목록표를 보면 나는 빨간색 아내는 검정색 다영은 초록색 종서는 파란색으로 구별되어져 있다. 해당 책 제목 칸에 각자 읽은 날짜를 자신의 색으로 기입하고 다 읽으면 몇몇이서 합의하여 독후감상모임을 함께 갖는 식이다. 맨 처음 책을 선정하고 읽은 사람이 독후감상모임을 발제하고 주관한다. 색을 구별한 또 다른 이유는 해당 책 안에 자기 색으로 표시하기 위함이다.

    유명하거나 감명 깊은 부분에 밑줄을 치거나 여백에 메모를 할 때 색을 구별하여 표시해 놓으면 다음 사람이 누가 어느 부분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쉽게 파악하고 참조,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아이들에게 빌린 책이 아니라면 최대한 많이 표시, 기록하라고... 최대한 더럽게 책을 읽으라고 말을 해 놓았다.

 


    책도 여러 가지, 읽는 방법도 여러 가지, 읽은 후 정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수준에 맞는 좋은 책을 정독, 숙독하고 독후감상문까지 남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으나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모든 책을 이렇게 읽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책에 낙서 비슷하게 이것저것 끄적이면서 읽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론 가장 효율적이면서 나름대로 충실한 책읽기의 방법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전공, 교양을 불문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도 효과적이고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이렇게 손글씨가 가필된 책 자체를 과제물로 제출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웬만한 정보는 모두 공개된 상황에서는 책을 읽지 않고도 검색, 짜깁기만 잘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듯한, 심지어 멋들어진 리포트, 보고서를 가공, 생산해 낼 수 있다. 역으로 이 같은 정보공개사회에서는 이러한 양질의 정보를 검색, 선택, 가공, 재구성하는 능력이야말로 꼭 필요한 탁월한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움과 깊이에서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것은 내 안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시간이 남아돌더라도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쉬고 싶고 편한 것만 취하고 싶다. 힘들 때는 꼼짝 않고 누군가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여주고 들려주기만 했으면 싶다. 이것이 바로 세월에 따라 보수화된다는 것이리라. 이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시기, 질투, 두려움, 공포, 호승심 따위의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런 감정이 보수의 감정이다. 이에 비해 진보의 것은 훨씬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고 문명적이다.

    진보가 도덕과 가치를 말할 때 보수가 그것을 위선, 잘난 체라고 비판하는 것 역시 의식적인 이성의 비판이 아닌 자연스런 감정의 무의식적 발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수는 실지로 진보의 도덕과 가치에서 낯선 이질감, 먼 거리감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손에 잡힐 듯 쉽고 구체적으로 느껴지지만 진보는 관념적이고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인간 욕망, 인간 본성의 평균에 보다 가까운 세속적인 자연스러움, 익숙함이야말로 보수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이 경쟁력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강화된다. 진보화는 드물고 보수화는 흔하다. 나이가 듦에 따라 보수화된다는 것은 생각이 기존 사고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고집한다는 면도 있지만 생물학적 노화라는 육체적, 물리적 측면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쉬고 싶고, 앉고 싶고, 눕고 싶고, 움직이기 싫다. 귀가 흐려지면 크게 들려주는 소리만 들을 수 있고 눈이 흐려지면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고 좀 볼라 치면 오래지 않아 눈에 피로가 몰려온다. 멀리 있는 것에 대해 관심이 적어지고 생소한 것이 부담스럽다.

 


    찾아 듣지 않고(聞) 들리는 것만(廳) 듣는다. 찾아 보지 않고(見) 보이는 것만(視) 본다. 그 때 그 곳에서 우리에게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들, TV 신문 등 메스미디어와 언론이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결국에는 보고 듣는 것을 넘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도 힘들어하여 누군가에게 맡기려 한다. 모든 능동에는 에너지가 소비되며 모든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 스트레스다.

    주어진 것을 떠나 찾아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앟다면 결국 보여주는 대로 보고, 들려주는 대로 듣고, 주는 대로 먹고, 하라는 대로 하고, 남의 생각과 판단을 본래 자신의 것인 양 고집하게 된다. 점점 거기에 의문을 품을 능력도, 질문을 던질 용기도 없어진다. 이제 더 이상 능동적인 사고의 각성은 남아있지 않고 수동적인 감각의 소비만이 남아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판단하라.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말하고, 많이 움직이고, 많이 사랑하라. 결국은 에너지다.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다. 그리고 그것은 젊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나가는 세월을 붙잡을 순 없지만 계속 새로워지려는 노력, 젊음과 소통하고 젊음의 감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다.

    비록 젊음의 정상은 이미 넘어가 눈도 예전 같지 않고 쉬 피로해지지만 아직은 분발해야 할 때! 책도 많이 읽고 좀 부지런해져야겠다. 아이들에게 배 두드리며 누워서 TV만 보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보다는 책 읽는 널찍한 어깨의 꼿꼿한 뒷모습을 남겨줘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