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때론 먹의 향내가 나는 글과 음악 그리고 사람

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01 : 창세기 1장~2장

어멍 2010. 2. 8. 00:17

    성경을 아내와 함께 읽기로 했다.

        

    교회에 다닌 지도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성경을 통독한 적이 없다. 가끔 읽는 구절도 어렵긴 마찬가지. 기존의 성경은 구절이 어렵기도 어렵지만 지명, 인명 자체가 우리말이 아니다보니 혀가 꼬이기가 일쑤다. 그래서 선택한 텍스트가 아가페 출판사에서 발행한 《큰글 쉬운성경》. 좀 낯설고 기존 문어체 성경구절의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에는 더 나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이르시길’은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와 같이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교열, 교정을 봤다.

    하나님과 나만의 독대! 오직 나와 예수님과만 대면하여 그 분의 뜻을 알고 싶다.




《큰글 쉬운성경》 아가페 출판사



    왜 성경은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인류의 베스트셀러인가. 세상의 이치, 삶의 지혜, 깊은 철학, 아름다운 표현의 주옥같은 말씀도 많지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이나 해석은 제각각이다. 해석에 따라 구교, 신교, 침례, 감리, 장로, 성결, 기장, 예장과 복음주의에서 해방신학까지 갖가지 종파로 나뉘고 정통과 사이비가 나뉜다. 그래서 막히지 않는 한 되도록 어떤 참고자료, 어느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읽어보려 한다. 물론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경험과 지식이 선입관으로 작용하기도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되도록 기존의 생각을 배제하고 성경구절에 충실해야겠지...

    <성경> 곧 <Bible>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근원적인 질문들도 있다. 사해 두루마리 문서와 관련된 기원, 출처, 원본과 관련된 의문들. 역사적으로 지금의 구약, 신약의 편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각종 판본들. 한마디로 <성경>이 한 문장, 한 글자 어김없이 하늘로부터 전송돼온 팩스, 하나님의 메일이 아니라는 거다. 이런 거대 질문들 외에도 <성경> 자체적으로 여기 말씀과 저기 말씀이 다른 모순이 발견된다는 점. 또한 각국의 언어로 번역됨에 있어서의 미묘한 차이점들까지 복잡다단하다. 나 같은 평범한 신자에게는 너무 힘에 벅찬 주제들이다. 나 같은 신실하지 않은 신자, 앎이 얕은 신자가 섣불리 마음에 담아두고 의문을 품기에는 불경이요 교만이다. 소경 코끼리 다리 만지기,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기다. 하여튼 기독교는 <성경>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성경> 말씀대로만 충실하면 기독교는 바로 설 수 있고, 신자들은 옳게 설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어려운 점이 그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의 형식도 형식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민되는 점이 많다. 하나님 자신이 양면성이 있다. 평화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너그러운 용서의 하나님, 십자가의 하나님, 희생의 하나님, 포용의 하나님이 있는 반면 전쟁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 준엄한 단죄의 하나님, 칼의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 시기와 질투의 하나님도 있다. 개인적으로 전자는 편안하지만 후자인 경우엔 불편하다. 꼬치꼬치 따지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믿습니다.’, ‘아멘’이 나오지를 않는다. 특히 수업을 받는 학생처럼 일방적으로 목자들의 사견이 들어간 말씀을 들을 때면 고역이다. 신자 입장에서 함부로 설교를 비평하고 목자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조심스런 일이지만 생각이 있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


    지난번에 다닌 교회에서 한 번은 31절과 주일이 겹친 적이 있다. 연로하신 목사님께서 오늘은 역사적으로 뜻 깊은 날이라길래 무슨 말씀을 하실까 귀 기울여봤지만 얘기가 영~... 일제의 폭정과 민초들의 굽힐 줄 몰랐던 저항의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더구나 기독교 입장에서는 박해를 받고 신사참배를 강요당하지 않았던가. 물론 기독교 일부가 이에 굴복, 협조하여 하나님을 부정한 부끄러운 역사이기도 했지만 이런 얘기들은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더니 어느새 625가 나오고 노조, 데모꾼, 좌파가 나오고 급기야 빨갱이라는 말까지 나온 적이 있다. 연세도 연세시지만 이북출신이 주축이 된 우익테러단체인 서북청년단처럼 625를 전후로 북한 공산당에 의해 핍박받고 쫓겨나 대거 남하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이북교인들의 영향이 한국교회에 많이 남아있다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다. 하여튼 한국교회의 반공우익, 보수의 뿌리는 깊다. 이승만 장로, 김영삼 장로, 이명박 장로 등 장로대통령들의 정치적 지지세력이 되었고 스스로 정치세력화한 역사가 깊다. 결과는? 국가와 국민에 민폐를 끼친 측면이 크다. 배타성, 물신숭배 등의 여타 문제점을 포함하여 한국교회가 세인들의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한국교회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로마서 2:24] 반성할 점이다. 옳게 믿고 옳게 처신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들어가기에 앞서 <큰글 쉬운성경>의 구절은 굵은 글씨체로 하여 개역판과 구별하기로 약속한다. 방대한 양, 기약할 수 없는 시간. 몇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시작이 반, 때론 시작이 다일 때가 있다. 초심을 잃지 않되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지 않도록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자유롭고 평안한 마음으로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자 이제 성경 속으로,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첫 장 첫 구절. 창세기는 말 그대로 세계의 시작을 다룬다. 핵심어는 시작, 인간, 언약.



28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채워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정복이란 표현이 개인적으로 좀 걸린다. 하나님이 12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주실 때에도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사용권만을 인정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는 하나님이 소유요, 인간은 하나님의 것을 잠시 빌린 것이란 말씀이리라. 그런데 정복?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관장하여라.”라는 표현도 적당치 않다. 오히려 더 어폐가 있다. 세계를 주관하시고 관장하시는 것이 하나님이니 오히려 더 가당치 않다. 개인적으론 “(잠시) 관리하여라.”라는 표현이 가장 합당할 듯하다. 문맥상으론 하나님의 형상에 맞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다음 자리에 위치한 영장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과 그 권능의 위임을 강조하시는 바, 정복이란 표현을 쓴 것 같다. 히브리어, 영어 원문이 궁금하다.


※ KJV(King James Version)과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의 영문은 모두 Subdue. ①(적국 등을) 정복하다. 진압하다. ②(자연을) 정복하다. (토지를) 개간하다. ③누그러지게 하다. 완화하다.-의 의미. 투쟁, 무력, 전쟁, 승리, 획득을 연상시키는 Conquer(정복하다)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 NIV 영어성경 보기 사이트 : http://www.subkorea.com/bible/study/eniv/list.htm


※ Gustave Dore 성화보기 : http://kcm.co.kr/bible01/gd/index.html



31절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유명한 구절. 개역판이 깊은 맛이 있다.



2장 23절

그러자 아담이 말했습니다. “아,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므로,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역시 유명한 구절. 여자는 남자에게 딸린 존재? 성경의 남녀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거리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란 표현은 예수님이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며 ‘내 살과 내 피’라는 표현을 연상시킨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나님의 뜻이 저와 저의 가정과 나라와 세계에 임하옵시며 제가 하나님의 뜻에 다다르고 참되고 축복받는 주님의 충직한 종이 되어 주님의 뜻을 나타내고 이루는 쓰임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