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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늑대? 헌법재판관들은 이리떼!

어멍 2009. 10. 30. 23:02
    지중해 코르시카 출신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15년, 유형지인 엘바섬을 탈출해 마르세유 부근에 상륙, 군대를 이끌고 파리로 향하여 다시 천하를 손에 넣는다.

    그 13일의 짧은 기간동안 나폴레옹의 동향을 전한 당시 프랑스 최대 일간지인 「르·모니뙤르」의 헤드라인의 변화.


3월 09일「괴물, 엘바섬 탈출」

3월 10일「코르시카의 식인귀, 쥬앙만에 상륙」

3월 11일「맹호, 카프에 출현」

3월 12일「악마, 그레노블에서 일박」

3월 13일「참주, 리옹을 통과」

..............

3월 18일「폭군, 수도 60리 인근에 임박」

3월 19일「보나파르트, 대군을 이끌고 북으로 진격중」

3월 20일「나폴레옹, 빠르면 내일 파리에 입성

3월 21일「황제, 퐁텐느 블로우궁으로 귀환」

3월 22일「황제폐하, 어제 튈르리궁에 귀환. 신민, 환호로 맞이하다.」

 

    괴물에서 황제폐하까지. 숨 가쁘게 드라마틱하다. 경마 중계를 보듯 손에 땀이 나고 흥미진진, 조마조마하다. 놀라움, 증오, 공포, 고민, 복종, 충성의 심리가 파노라마처럼 읽힌다. 3월 19일을 기점으로 결국 나폴레옹에게 기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언론의 천박하면서도 비열한 기회주의적 속성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대세추종주의, 보신주의를 말하고자 함이다.


    어제(091029)는 헌법재판소에서 관습헌법에 이은 또 하나의 역사에 남을 몹쓸 판결을 내놓았다. 검은 법복에 하나같이 주둥이를 내밀며 근엄한 표정으로 판결문을 내려읽으시니(그렇지 않은 두 분은 제외) 흉하고 황당하여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나이들고 명망있다는 영감님들께서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나보다 더 똑똑한 양반들이니 세간의 평가를 예상치 못하셨을 리야 없을 테고. 쪽팔림은 순간이고 보신은 영원하다? 살면 얼마나 더 살고 호의호식하면 얼마나 더 호의호식 하시려고 그러시는지......ㅠ.ㅠ

    살기 위해 마지못해 대세에 굴복할 수도 있다. 총칼 앞에서 도망치고 고문에 굴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비겁한 보신주의다. 총검으로 무장한 군대가 앞마당에 당도해 현관문을 군홧발로 쿵쾅거리기라도 하고 있는가. 누가 자식들을 볼모라도 잡고 있는가. 3공때처럼 중정에서 검사라도 잡아들일 듯이 뒤로 협박이라도 받았는가. 누가 머리에 총구라도 겨누고 있는가.(아직까진 연로하신 철부지(!) 어르신들로만 구성돼 있지만 서북청년단을 연상케하는 몇몇 극렬 우익단체의 발호로 볼 때 조만간 이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도 전혀 허황되지는 않다.ㅠ.ㅠ) 더 이상 영전할 곳도 없고 잘릴 일도 없고 잘리더라도 남은 여생 먹고 살 걱정 없는 분들이 이러는 것은 자신들이 법관 이전에 정파적 기득권자들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관습헌법이란 없는 것까지 만들어 판결하고 때로는 엄연히 있는 원칙도 준용치 않고 판결하고, 때로는 권능을 남용하고 때로는 사명을 방기하고, 늘었다 줄었다, 이랬따가 저랬따가 왔따 갔따(♬♬) 미친년 널뛰기하듯 엿장수 맘대로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무슨 논리를 들이댈지 종잡을 수 없지만 한 가지 명백한 원칙이 있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의 이익에 철저히 봉사한다는 거다. 때로는 떠들고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깝치며 들이대고 때로는 은근슬쩍 우물거려도 그들의 처신은 항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법과 양심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울 뿐 뼈속까지 정치적이다.

    ‘맞데이! 우리 같은 편 아이가’

    못났다. 못났다. 못나도 너무 못났다. 비겁해도 너무 비겁하고 추해도 너무 추하다. 법관이라는 최소한의 소명의식만 있었더라면 이렇게 법리를 똥막대기처럼 내팽개치는 판결을 할 리가 없다. 철부지 어린 것들, 씻지도 않아 냄새가 풀풀 나는 비루한 노숙자들의 경범죄도 아니고 이렇게 대낮 광장 한 복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집단으로 낯 뜨거운 하드코어 애정행각을 벌이시고 엉덩이를 까 놓고 똥을 싸질러 놓으시면 어쩌자는 건가. 나폴레옹이 사납고 악한 한 마리 외로운 늑대인지 위대한 황제인지, 공이 많은지 과가 많은지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헌재는 한국 사법사, 세계 사법사에 어이없고 부끄러운 족적을 연달아 남김으로 해서 백해무익한 법복 입은 노회한 승냥이, 이리떼 집단임을 스스로 드러냈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서양문화사 <새벽에서 황혼까지>의 저자 자크 바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세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것에는 '의사들의 장사꾼화'와 '기자들의 속물화'에 '법관들의 모리배화'가 하나 더 추가된다. 조금 섬뜩하긴 해도 자크 바전이 저서에 남긴 말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법률가는 더 이상 훌륭한 법률가와 비열한 법률가로 양분되지 않는다. 400년전 셰익스피어가 쓴 <헨리 6세>에 나오는 "법률가는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대사는 이제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
    - 이상은 오마이뉴스 
<'악법도 법'은 들어봤지만, '불법도 법'이라니... 김갑수>에서 인용. -    


    참여정부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한 조각 돛단배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에게 우호적인 세력은 노사모 등 일부 시민사회세력을 제외하곤 전무했다.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파견된 외로운 투사, 가장 치열한 적진 한복판 가장 깊숙한 곳에 떨궈진 낙하산병이었다. 조중동 등 수구언론은 물론이고 재계, 법원, 검찰을 비롯하여 행정부내의 고위관료들까지 적대적이거나 비협조적이었다. 서울대, 연대, 고대를 나와 강남에 살며 여의도, 서초동으로 출퇴근하며 밤이면 형님, 아우 하면서 밥 먹고 술 먹는 그들 사이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갔을지는 자명하다.

    헌법재판소 판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을 대표하고 그들을 상징한다. 오랜 기간 농축된 엑기스, 푹 삶아 고은 곰탕이다. 준법질서 확립, 법적 안정성, 공공의 안녕 등이 그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레파토리로 매우 보수적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체제유지, 기득권 수호를 위한 레토닉, 같은 편임을 나타내는 암구호 비슷한 것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법치국가 건설'을 선창하면 말단 판검사가 '불법시위 엄단'을 후창한다. 때로는 앵무새, 7살배기를 능가하는 어김없는 따라쟁이요, 때로는 모짜르트를 능가하는 화려한 변주가다. 위에서 조용히 한 마디 하면 밑에서 시끄럽게 열 마디, 백 마디 오바하는 놈이 꼭 있다. 그러면 '아~ 요놈이 우리편이구나', '떡잎이 눈에 띄는구나' 한다.
    단! 기의(記意), 본래의 의미에 얽매이거나 집중해서는 안 된다. '어르신'의 말씀만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순진하거나 융통성이 없거나 무능력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출세길이 막힌다. 착 하면 척 알아먹어야 한다. 어르신의 말이 아니라 어르신의 심기, 속마음을 읽는 것이 능력이다. 박정희씨의 '한국적 민주주의', 전두환씨의 '정의사회구현', 이명박 대통령의 '법치'와 '선진화'가 다 이런 허울좋은 구호, 기표(記表)들이다. 경계병 교대시 주고받는 '뻐꾸기', '기러기' 같은 암호가 같은 편임을 증명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의미보다 신호, 기의(Signified)보다 기표(Signifier)로서 작용한다. 저쪽에서 '감자'라고 했다고 실제 '감자'를 내논다면 미친 놈 소리 듣기 십상이다. 단지 '고구마'라고 댓구만 해주면 된다. 저쪽이 상급자, 고참이라면 '고구마'라고 외치며 '초코파이'를 건네보라. 입이 찢어진다. '아~ 요놈이 영리하구나', '대성할 놈이구나' 한다. 군대생활 핀다.
    이런 식으로 구체제, 기득권의 이익에 봉사하는 사람만이, 그들 방식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만이 케리어를 쌓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좁은 문을 통과해 그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오를수록 썩었고 오를수록 뻔뻔하다. 그것이 경쟁력이다.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같은 최고권력자 밑에선 당연한 현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 질풍노도의 불확실한 시대, 약육강식의 냉엄한 세월을 뚫고 살아남아 출세가도를 질주했던 백전노장이자 노욕에 찌든 교활한 여우들이다. 키가 줄고 얼굴이 찌그러지고 이가 누래지는 것이 노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노추의 진수이다.

    세상에는 대세라는 것도, 대의라는 것도 있다. 옳든 그르든 대세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 지식과 학문은 수단에 불과할 뿐 본질은 파워게임이라는 것.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표를 기의라고, 껍데기를 알맹이라고 우기지 말자. 기표로서 기의를 훼손하지 말자. 같은 편이라는 단순한 싸인을 거창한 대의명분으로 포장하거나, 누가 뭐래도 내 맘대로 하고야 말겠다는 표시를 어줍잖은 학문과 논리로서 설명하려 들지 말자. 초딩들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빤한 거짓말을 무대뽀로 들이대진 말자.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호의호식하기 위해 불의한 대세에 팬티까지 벗어가며 아부하진 말자. 아부하더라도 좀 몰래 하자. 보는 사람마저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게는 하지 말자. 이렇게 대놓고 해서야 당황되고 서글프다. 특히 당신들! 언론인, 교수, 선생님, 판관님들...
    예의는 지키자.
 

    절차는 불법이나 법안은 유효하다? 무효로 할 정도로 절차의 불법성이 중대하지 않다? 그럼 왜 대리투표는 있었다고 인정했는가? 일사부재리를 어겼다고 판단했는가? 대리투표는 말할 것도 없고 일사부재리 원칙이란 것이 법안의 상정, 통과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원칙인데 이것들이 중대하지 않다면 그 무엇이 중대한 사유인가? 입법부의 일을 사법부가 일일히 관여하는 것은 부정적이니 입법부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라? 국회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헌재에 판단을 구한 것 아닌가? 입법부에 자율적으로 맡길 거면 통째로 맡기고 발을 뺄 일이지 법안의 유효성은 인정한다고 못박으면서 입법부의 자율성에 공을 떠넘기듯 하는 비겁하고 어정쩡한 모양새는 또 무엇인가? @.@ & @.@ 눈이 팽팽 돌 정도로 통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게 논린가 노래민가, 말인가 막걸린가? 황당무계! 해괴망측! 앞뒤 맞지않는 싸구려 반전과 개연성 없는 억지설정이 난무하는 모순의 향연이다! 헌재는 전혀 불가능할 것 같던 '4차원 법정 개그', '막장 법정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의 신기원을 열어젖히는 쾌거를 이루었다!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해? 헌재가 말하는 자율권이란 날치기할 자율권, 대리투표할 자율권, 열번이고 백번이고 통과할 때까지 상정, 표결하는 자율권을 말함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나라당, 기득권 강자들의 불법적 수단을 포함한 일체의 자율권을 말함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절차의 하자가 없었던 신행정수도 특별법에는 경국대전까지 끌어와서 위헌판결을 내렸는가. 삼권분립이란 단순한 분리,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견제와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분리, 독립도 아니다. 이것은 헌재가 국민과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사명과 의무를 가장 적극적으로 포기, 회피, 방기, 유기한 것이다. 이것은 사법부가 스스로 정치권력의 사타구니로 기어들어간 것, 스스로 정치권력화 한 것이다.
    법리와 어울리진 않지만 소박하게 접근해보자. 언듯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우리도 처벌하고 싶다고요. 흑흑!)'라는 발언을 연상시키는 '사정이야 어찌 됐든 일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아~ 한나라당은 일을 왜 이 따위로 처리해서 우리를 피곤하고 난처하게 만드는 거야. 우~씨!)'라는 주장이더라도 납득할 수 없다. 법안이 일단 시행되면 사기업화되어 기득권을 획득한 미디어 그룹측이 재산권, 방송송출권 등을 빌미로 강한 저항을 한다면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이 일말의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법이 시행도 되기 전이다. '성공한 쿠데타'가 아니라 '진행중인 쿠데타', '모의중인 쿠데타'다. 첫날 밤은 고사하고 뽀뽀도 하기 전에 손 한번 잡았다고 어쩔 수 없으니 결혼 해야 한다는 꼴이라니...헌재는 남녀사이에 주고받는 므훗한 추파만으로도 임신을 가능케 하는 신통한 재주라도 갖고 있는가. 어제 뿌린 씨앗에서 오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신의 손이라도 갖고 있는가. 그것도 썩은 씨앗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다니...(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태 7:18]) 분명 하늘에 오르시면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리라. 할렐루야!
    점잖은 양반들이 사탕 달라 울며 불며 졸라대는 어린아이처럼 왜 이리 성미가 급하고 막무가내신가. 불의를 용납하는 데에는 최대한 적극적, 정의를 세우는 데는 최대한 소극적인 법 해석이다. 일하러 갈 땐 굼벵이, 밥 먹으러 갈 땐 폭주족이다.(빠라바라바라밤~~)
    결론은...... "요것도 어겼고 이것도 어겼고 저것도 어겼지만 무조건 유효! 닥치고 내 말 들어!".... 무슨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도 아니고 영감님들이 어디서 이런 정력이 솟아나서 이토록 거침없이 폭주하시는지?(헌재 오빠! 달려!)..... 인간공동체, 문명사회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광란의 질주, 위험한 메세지다.

    악법도 법이라지만 불법도 법이라니? 그것도 최고 단계인 헌법재판소에서! 빵점짜리 황당무계 엉터리 답안지를 제출하고 말장난이나 일삼고 있으니 전국의 법학도, 법학자들이 들고 일어나야 할 판이다. 졸지에 법학, 논리학, 윤리학이 필요 없어졌다. 선생과 부모가 학생과 자녀에게 무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수단, 방법, 절차 같은 것은 개나 줘버려. 무슨 수를 쓰든 목적만 달성하면 만사 OK야’라고 가르쳐야 하나. ‘논리, 법리, 학문적 양심 같은 것은 소나 줘버려. 억울하면 닥치고 출세해’라고 해야 하나. ‘정직, 양보, 희생 같은 것은 말이나 줘버려. 반칙은 선택, 거짓말은 필수야’라고 가르쳐야 하나.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일단 이기고 봐라. 그럴 힘이 없으면 나서지 말고 눈치보고 있다가 이길 것 같은 놈, 이긴 놈 옆에 가서 붙어라'라고 가르쳐야 하나.
    이명박 정권들어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면 단순히 아이들에게 말문이 막혀 곤란해지는 상황을 벗어났다. 우리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실질적인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헌재 영감님들, 집에서는 손주를 두셨을 할아버님들께서 굳이 이렇게 우리의 자녀, 손주들을 님들이 만드신 이런 흉악한 세상으로 내모셔야 되겠는가. 소아적인 손익계산에만 밝으실 뿐 정녕 님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 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신다는 말씀인가.




영감님들! 우리 다영이, 종서 떳떳하게 가르치게, 맘 편히 기르게 좀 해 주소! ㅠ.ㅠ
생김새와 표정갖고 말하긴 뭣하지만...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다압해진다.



    우리아이들, 변변한 배경이나 빵빵한 재산이 없는 우리 같은 서민들의 자식들은 공정한 경쟁을 보장받을 수 없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한군데 믿고 하소연 할 데도 없게 된다. 돈 없고 빽 없고 학벌이 없으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스스로 몸을 던져야 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우기엔 온 몸이 떨릴 정도로 불안하고 걱정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강자의 일방적인 폭주를 승인해버리면 그 여파가 아래로 미치는 것은 순식간이다. 벌써부터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최근 초등생을 막무가내로 뒤에서 로우킥으로 찬 후 재밌어하는 동영상, 뜀틀이 되어주다가 갑자기 몸을 숙여서 초등생이 나가떨어지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문제가 되었다. 이런 것들이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학교에서도 힘 있는 애, 있는 집 자식, 공부 잘하는 애만 목에 힘주고 그 외는 주눅이 들어있다. 배려, 돌봄과 보살핌은 없고 천박하고 일방적인 힘의 과시만이 횡행하고 있다. 용산, 조두순 사건, 장자연 사건도 모두 일맥상통한다. 미친 건지 미친 척 하는 건지, 불특정 다수를 향해 행하는 황당하고도 잔인한 테러, '묻지마 범죄'의 대상은 신기하게도 백이면 백 다 힘없는 부녀자와 아동이다. 국영수 과외시키기도 힘에 부친데 몸을 만들고 호신술이라도 따로 하나 가르쳐야 하나. 저마다 갖고 있는 힘의 우위로 상대를 찍어누르고 유린하려 드니 이제 각자 안전은 각자가 지켜야 한다. 부모들은 분노하고 불안해하며 세상을 탓할 뿐, 등교길에 안전을 기도하고 집에 돌아오면 감사해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다.
    법과 정의의 광정, 일벌백계가 없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힘만 있으면 법까지도 부릴 수도, 걷어찰 수도 있다. 재수 있으면 좋고 재수 없어 걸리더라도 반성보다 억울함만 쌓여간다. 여기저기서 서민들은 강자들에게 삥 뜯기고 초딩들은 언니, 오빠들에게 삥 뜯기게 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야수를 누군가 저지해야 하지만 목줄과 우리를 갖고 있는 사법부는 자신의 권능과 무기를 올바로 쓸 생각은 않고 스스로 대장늑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이리, 또 다른 맹수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천지사방 힘만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 이것이 무법천지다.




프랑스 영화 <늑대의 후예들, Le Pacte Des Loups>의 한 장면

프랑스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와 비슷한 야수, 식인귀에 대한 전설이 전해오는 듯하다.
※Loups는 프랑스어로 '크고 흉악한 늑대(the big bad wolf)'를 의미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우리 아이들이 억울한 일 당하여 세상을 저주하지 않는 사회, 마음놓고 밖에 내보내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한 사회였으면 싶다. 바르거라 참되거라, 열사나 지사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까진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상식을 편안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사회, 아이들 질문에 어물거리거나 당황하지 않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싶다.


손주 : 할아버지! 이 장난감 문방구에서 그냥 가져왔다. 내가 가져도 돼지?

헌재 할아버지 : 절차상 절도가 맞지만 너의 소유인 것은 유효하다. 어~험!

 

    헌재 영감님들. 집안에서 이러시지는 않지 않으신가. ‘너는 다리밑에서 주워왔단다’하는 식으로 손주들 앞에 앉혀놓고 재미있는 농담 따먹기, 말장난 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으신가. 나도 영감님들에게 한 말씀 올린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현명하신 영감님들께서 각자 알아서들 판단하시라.


    “판결은 했지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