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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한글 파괴는 한글의 우수성(& 간단한 후기)

어멍 2010. 10. 9. 12:14
최근 한글을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 정착시켰다고 해서 화제다. 이에 대한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흔히들 '외계어'라 부르는 한글 파괴에 대한 경각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나 수구나 매한가지다만 여하튼 측은지심에 점점 변듣보 취급 당하고 있는 동아일보를 링크한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게 본다. 오히려 한글 파괴야말로 한글의 우수성을 보여주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특히 문자 파괴가 심한 국가이다. 이는 매우 당연한 게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 희한한 구조의 문자이기 때문이다. 즉 원칙적으로는 자음과 모음이 연결되어 하나의 음절을 이루어야만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로 인해 이가 열리고 급속하게 확장되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이는 말을 매우 조심하고 가려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어떤 표현도 다른 표현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ㅋㅋㅋ는 한글 파괴이지만 ㅋㅋㅋ는 크크크, 큭큭큭과는 전혀 다른 표현이다. 우왕ㅋ굳ㅋ정ㅋ벅ㅋ 등도 마찬가지다. 비록 이것은 한글 파괴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고 그 어떤 표현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언어이다.

작품이 워낙 뛰어난 경우는 굳이 ㅋㅋㅋ를 쓸 필요는 없겠으나, 뭐...

이모티콘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ㅂ'나 -_- 혹은 oㅅo 등이 기존의 문자를 버리는 언어 오염에 불과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표현의 다양성을 낳는 것은 아닐까? 문자를 소화하는 방식은 애초에 정해져 있지 않다. 단지 과거에는 필사의 전통이 인쇄 매체로 이어지며 그한 면만이 보였을 뿐이다. 한글이 아닌 어떤 문자가 이러한 다양한 표현을 통한 다양한 느낌을 낳을 수 있을까? 영문의 이모티콘이 얼마나 단순한지 생각해 보라.

게다가 점점 문자는 단순한 의미 전달에 그치지 않고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자극시키는, 즉 선형적 논리를 전달하는 데에서 전체적 의미로 다가오는 측면이 강해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거님의 글을 인용하겠다.

누구나 주장하듯이 저 역시 문자 중심의 매체나 책등이 소멸할 리는 없지만, 새천년 세대들이 문자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변화가 올 것으로 봅니다. 그들에게 문자는 생각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느끼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문자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인지적 도구에서, 보고 느낌이나 자극을 전달하는 감성적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놀랍게도 문자 정보 처리가 인지에서 감성으로 가는 현상을 가속화시킨 것이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아닌 인터넷이라는 것입니다. 댓글을 달 수 있는 기사, 사용자가 의견을 바로 입력하는 즉흥적 피드백 시스템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본말이 전도된 정보 처리를 합니다. 바로 기사나 긴 글은 대충 훓어보고 바로 수북히 쌓인 댓글에 눈이 먼저 가는 겁니다. “이명박 죽으면 # 돌린다”라는 기사 아래서 민노씨가 주목한 그 댓글도 이런 현상을 보여줍니다.

“저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뭔지 압니까? #입니다. 연예인 데리고 #치는 것은 좋아하지만, #값받았다. #검이다. (…)”

관련 기사를 길게 읽어볼 필요도 없이 #를 포함한 문자에서 문자를 느끼는 세대들은 바로 공감하고 바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겁니다.

결국 문자는 어떻게 보면 그림에 가깝도록 변해가고 있다. 이건 원하건 원치 않건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한글은 여기에 상당히 어울리는 문자다. 물론 한 글자 한 글자만 본다면 상형문자인 한자가 더욱 그러하지만 자음과 모음을 통한 다양한 연결은 한글만이 가진 특징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세계는 이미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다-_-

물론 사회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문제가 될 때도 있다. 가끔 모르는 어린 애들로부터 메일을 받을 때가 있는데 초면부터 ㅋㅋㅋ 거리는 걸 보면 나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나 예의나 관습이 아닌 의사소통의 단계로 이를 때는 정말 장벽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통합을 위한 교육으로 극복하려 해야지, 부정적인 부분만을 보고 언어파괴라는 이름으로 창발하는 한글의 가능성을  버리려 함은 긍정적인 부분의 사상은 물론 시대 역행에 다름아니다. 

한글은 이제야 제 시대를 만났는지도 모르겠다만, 그게 어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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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 출처는 이승환님의 블로그 현실창조공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주는 글. 앞으로 한글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해갈지 흥미진진!
하지만 축약어, 신조어, 외계어 등등...기성세대가 따라가고 이해하기는 벅차다는 거!

하여튼 한글은 세계에 가장 자랑할만한 뛰어난 과학성과 기능적 우수성을 지닌 위대한 글자라는 거.
그 위대함은 인민,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애민정신, 인본주의정신이 들어있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는 거.
따라서 국보 1 호는 숭례문 같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 아니라 훈민정음 같은 문화와 정신이 깃든 것이 되어야 한다는 거.


PS2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향수 중에서-

질화로, 짚벼개를 표현, 표기하지 못한다면 널리 말하여지지도 못하고 결국 질화로, 짚벼개는 잊혀지고 사라질 것이고 그 문화도 멸실될 것이다. 문자와 언어가 없어지면 그 대상도,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도 없어진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경우처럼 언어는 있어도 문자가 없는 민족의 언어보존, 문화보존을 위해 한글만큼 유용한게 없다.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은 보존해야할 전 지구적 자원이며 바벨탑의 저주가 아니라 인류문화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은 2009/09/02 발행


PS3 : "한글날이 국경일이 아닌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글날인 오늘(2010/10/09) 소설가 이외수씨가 한 말씀 하셨다.
훈민정음이 국보 1호가 아닌 것도 아쉬운 일이긴 하나 국경일에서 제외된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한편으론 부끄러운 일이다.
국어와 국사가 천대받고 영어와 외국 것만을 쫓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보다 눈에 보이는 구조물, 외관만을 중시한다.
이런 식이면 뿌리가 얕은 경박한 사고와 문화만이 풍미할 뿐이다.

자라나는 세대의 언어생활이 거칠다, 경박하다 욕할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는 이러한 물질만능의 사고부터 되돌아보아야 한다.
정신과 문화를 귀히 여기고 대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글날부터 국경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한글 파괴의 부작용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는다.
살아움직이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한글, 그 창발성을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개발하는 한편 한글과 그것에 깃든 정신을 더욱 강화하여 교육하는 것으로 한글과 문화를 부흥시켜야 한다.



체면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신문화, 신세대와 소통하는 21C 세종대왕
(출처는 국어대왕 이모티콘)


2010/10/09 한글날 재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