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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마라톤

2017 전국의병마라톤대회 - 다섯 번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 후기 (2017/05/14)

어멍 2017. 5. 16. 21:27

    2017 전국의병마라톤대회 - 다섯 번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 후기 (2017/05/14)

 

    - 대회 참가 전

 

    다섯 번째 풀코스 출전, 올해 참가하는 첫 번째 대회다. 원래 목표한 것은 예전처럼 기존 개인최고기록(3:37:57 - 평균페이스 5‘09“/km) 갱신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출전도 하기 전에 달성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작년 9월말에 왼쪽 발목 부상으로 한동안 뛰지 못하다가 겨우 회복한 후 5월 대회를 목표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던 중 지난 422LSD 연습 후 무리를 했던지(33.45km 2:46:15 평균페이스 4‘58“/km) 이번엔 오른쪽 발목이 말썽이다. 앞선 왼쪽 발목 부상보다 심각하지 않아 걸을 때는 괜찮은데 일주일을 휴식 후 뛰어도 약하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대회를 보름 앞둔 기간 동안 변변한 연습 없이 자전거와 스트레칭으로 최소한의 컨디션만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몸도 마음도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 - 과연 뛸 수 있을까? 어디까지 뛸 수 있을까? 기록은? 완주나 할 수 있을까? 날씨도 더울 것 같은데... - 걱정부터 앞선다.

 

    이제까지 출전 대회 중 가장 자신감이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두 번 세 번 지레 약해지지 말자 다짐하였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에 관계없이 또 다른 경험과 수확이 있을 테니 대회에 대한 의욕과 호기심만은 충만한 상태다. ^.^

 

    - 대회 참가

 


    514일 일요일 D-Day!

 

    새벽 4시에 일어나 둔산 대공원으로 도보로 이동. 대기하고 있던 전세버스를 타고 출발. 대회장소인 경남 의령공설운동장에 8시경 도착. 이제까지의 참가대회 중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멀리 이동하였다.

 

    현지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하여 햇빛은 강하지만 공기는 깨끗하다. 바람이 세고 기온이 25도 정도. 해가 오르고 아스팔트 지열까지 올라오면 꽤 후덥지근할 것 같다. 8시에 출발하면 좋으련만 지방대회인 관계로 멀리서 오는 참가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나보다. 출발시간인 9시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혹시 뛰다가 발목에 이상이 올까봐 일부러 워밍업은 하지 않고 간단한 스트레칭만 한다.

 

    레이스 운영 전략은 처음부터 끝까지 5‘07“/km 이븐페이스로 뛰는 거! 목표달성을 위해선 좀 욕심을 내어 전반부 페이스를 일단 5’05”/km 페이스로 끌어올리고도 싶지만 몸 상태를 생각하면 좀 더 여유를 둬야 할 것 같다. 어쩌면 5‘07“/km 페이스도 무리일 것 같은 상황! 몸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오버페이스(가능할지는 모르지만)를 철저히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출발! 생각 밖으로 잘 나간다. 막 나간다. 발목도 괜찮고 몸도 가벼운 듯! 무엇보다 하도 오랜만에 뛰어서 동작 자체가 낯설고 새롭다. 마치 첫사랑을 몇 년 만에 만난 듯, 목하열애중인 연인을 몇 개월 만에 만난 듯 설레고 신선하다. 1k 지나 퀸메이커님 제끼고 3k 지나 피오나님과 정달이님까지 제끼고 룰루랄라! 신났다.

 

330도 가능한 초반 10k 구간 페이스

 

    장심부름 갔다가 사올 것은 잊어먹고 사탕만 빨고 있는 일곱 살처럼 오버페이스를 절대 하지 말자던 처음의 다짐은 어느새 새하얗게 까먹은 상태! - 라기 보단 애써 무시하고 상황을 무작정 낙관하는 상태다. 에라 모르겠당! 이것은 사탕이 너무 맛있는 탓이다. 내 다리가 너무 굶주린 탓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정으로 7개월여만에 참가하는 대회 분위기에 흠뻑 취하여 자아도취 즐달 모드다.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달콤한 인생

'뿌리도, 열매도 소멸되고 오직 현재의 꽃만이 장밋빛으로 피어난다.'

-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중에서 -


    하지만 이것은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 한겨울을 모르는 매미의 시건방! 알고 보니 첫사랑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일주일 만에 만난 마눌님이었던 것! - 설레임과 풋풋함은 채 반나절을 가지 못한다. 달콤한 사탕이 쓰디쓴 씀바귀가 되어 돌아왔으니 잊었지만 서로 속속들이 알고 있던 마눌님의 날카로운 추궁과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마라톤신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k를 지나면서 페이스가 슬금슬금 지속적으로 떨어지더니 21k 반환점을 돌고부터는 착지시의 충격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이 부담스럽다. 발바닥을 작은 쇠망치로 톡톡 치는 듯한 충격이 발목에서 장딴지를 거쳐 무릎까지 울려오더니 급기야 25k를 지나 몸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왼쪽 장딴지에 쥐가 난 것!

    얏호! 연습과 대회를 막론하고 러닝을 시작한 후 쥐가 난 건 처음이다. 잠깐 쉬며 스트레칭을 하니 좀 가라앉는듯하여 속도를 늦추어 다시 달려본다. 하지만 28k를 지난 후 2차 충격! 이번엔 왼쪽 장딴지는 물론이고 오른쪽 장딴지, 오른쪽 발바닥과 발가락, 왼쪽 새끼발가락부터 위쪽으로 정강이까지 동시다발적이다. (살다살다 정강이에 쥐나는 건 또 처음이다.)

    올레!! 이것은 처음 맛보는 신세계! Brave New World다. 뒤뚱뒤뚱, 어기적어기적, 몇 걸음 못 가 퍼진 자동차처럼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다리 전체가 안쪽으로 뒤틀리며 O다리가 되어 오금을 못 펴는 느낌이 뛰고 걷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든 상태, 숯불 위의 오징어 모양 웃픈 상태다. ^.ㅠ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쓰디쓴 인생

노릇노릇! 타닥타닥! 숯불 위의 오징어로 빙의되는 환상체험 ^.^


    육체는 비참한 상태인데 생뚱맞게 장난스런 헛웃음이 훗훗 새어나온다. 이 무슨 우당탕탕 슬로우 슬랩스틱 코미디 - 혹은 깊은 페이소스(동정, 비애감)를 자아내는 처절한 몸짓인가! 42k를 뛰러 나왔다가 30k도 못가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게 되었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상황, 코믹한 시추에이션인가! 잠시 풀어진 양반다리로 무심하게 뚝방에 앉아있자니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 앞은 산이고 뒤는 물이로되 팬츠 차림으로 도사(道士)처럼 앉아있는 풍경이 신선하고도 허탈하다.

    일어나라! 무릎을 펴고 우뚝 선 후 발을 떼어라! 하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이대로 주저앉아 오징어로 머물 것인가?...... 스트레칭을 할 엄두도 안 나서 한참을 멈춰 휴식을 취한 후에야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 내가 바라고 원하던 것이었던가? 내가 맛보고 싶던 마라톤의 참맛인가?...... 갑자기 <멋진 신세계>에서 보았던 주인공인 존의 대사가 생각난다. - "저는 편안하고 안락한 것이 싫어요. 저는 신과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과 죄를 원합니다."


이것은 차라리 인간선언! - 저는 안주보다 모험, 쾌락보다 존엄을 원합니다.

오스틴 마라톤에서 휠체어를 거부하고 기어서라도 완주를 고집했던 하이븐 응게티치(Hyvon Ngetich)

 

    이후부터는 포기냐 아니냐 갈등의 연속, 뛰고 걷고 멈추기의 고난의 연속이다. 2차 충격 후 속도를 대폭 낮추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주저 없이 걷기로 전환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30k 급수대를 지나 코너를 돌자마자 다시 3차 충격! 빠르지는 않았지만 급한 커브에 다시 쥐가 올라온 것이다. 또다시 멈춰서 몸을 추스릴 수밖에 없다.

    고개를 떨구고 무릎을 두 손으로 지탱한 채 땡볕에 버티고 서 있는데 진행요원이 다가와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괜찮냐고, 회수차를 타시겠냐고 묻는다. 진행요원은 굽어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어멍5초간 미동도 없는 침묵! 그 순간 포기냐 아니냐 몇 십번이고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마침 10m 뒤쪽 그늘아래 완주를 포기한 러너들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 이것은 광야에서 40 주야를 단식한 예수님께 찾아온 광야의 유혹만큼이나 강렬하다. 사악한 마귀는 빵으로 굶주린 예수님을 유혹했지만 사람 좋은 운영요원은 달콤한 휴식으로 지친 어멍을 유혹하고 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듯이 러너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곧 달릴 때 느껴지는 최상의 행복감)로만 달리지 않는다는 멘트를 날리며 허세를 부리곤 싶지만 그럴 용기도 여력도 남아있지 않다. 몸도 마음도 하얗게 탈색된 듯 진공상태다.

 

    뒤로는 그늘이 있고 물이 있고 평화가 있다. 앞으로는 고통과 투쟁이 예비되어 있다. 고통은 무겁고 유혹은 강력하다. 유혹은 너무 가깝고 분명하며 고생길은 너무 멀고 기약 없다. 유혹은 뒤로 기껏 10m 지척이지만 고생길은 앞으로 무려 12km나 남았다. 포기하고 저곳에서 편히 쉴 것인가? 이 고난의 레이스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

    갈등의 5, 결정적 5초가 지나자 표면의 고통을 밀어내고 깊은 곳으로부터 호기심이 올라온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 것인가? 어디까지 더 뛸 수 있을 것인가?...... 그래 조금만 더 뛰어보자! 그러던 중 고통도 차츰 진정되는 듯하다. 진행요원의 호의에 답하지 않고 무릎을 딛고 허리를 편 후 힘겹게 발을 뗀다. 가던 길을 내쳐간다.

 

    이제 기록은 의미가 없어졌고 어떻게든 완주만 하자! 내일도 좋고 모레도 좋다. 기어도 좋고 굴러도 좋다. 조바심을 내려놓고 바람을 맞으며 슬슬 뛰고 걸으니 멀리 강과 들과 산들도 눈에 더 들어온다. 몸은 여전히 고되지만 마음은 한결 한가해졌다. - 이 또한 지나가리니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의미의 라틴어)

 

뛰고 걷기를 반복한 마지막 10k 구간 페이스


운동장 트랙에 들어서서

이건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니여!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마라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마눌님 같이 정답고 살가운 꽃이여!

 

    결국 풀코스가 끝났다. 그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심히 삐리리했던 길고 긴 레이스가 어쨌든 끝났다. 기분은 그리 기쁘지도 낙담하지도 않고 담담하다. 최종기록은 4시간 193- 평균페이스는 6‘08“/km - 최고페이스는 1~2k 구간 4’53” - 최저페이스는 30~31k 구간 8‘53“. 미리 설정한 배점기준으론 빵점인 실망스런 결과지만 그래도 첫 풀 때 기록한 최저기록보단 쳐지지 않은 점, 천신만고 끝에 완주한 점은 위안이다.

 

점수는 빵점, 폭망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소룡 퍼포먼스

오징어에서 인간으로 생환한 것만 해도 어디인가!

 

    뛰고 난 후 긴장이 풀렸는지 걷기가 더 힘들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주주클럽 부스로 돌아오니 천막이 벌써 철거되어 있다. 바람이 거세 안전을 우려한 주최측이 서둘러 접었다고 한다. 뙤약볕에 앉아 올갱이 국밥을 먹으면서 기념품 수령 장소를 물어보니 회장님인 에쿠스님이 당신께서 받아다 줄 테니 밥이나 먹으면서 쉬고 있으라고 하신다. 죄송, 황송해서 극구 사양하는데도 서둘러 갖다 주시니 민망할 따름이다.

    주주클럽 회장님에다 연배도 한참 위시고 항상 솔선수범 자원봉사하시며 회원들을 요모조모 돌보고 위하시는 에쿠스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소탈하시고 겸손하시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여튼 회장님 이하 주주클럽 회원여러분 모두가 최고다! ^.^

 

    - 평가 및 마무리

 

    대회는 ‘A-’ : 코스만 놓고 보자면 ‘A+’로 중간반환점을 한차례 돌아오는 왕복코스는 하천을 끼고 돌아 바람은 거셌지만 아기자기하여 지루하지 않았고 이제까지의 대회 중 가장 높낮이가 적어 평탄하였다. 하지만 지방군소대회인지라 참가인원이 적어 반환점 이후엔 주자가 뜨문뜨문 쓸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회운영이나 인심도 좋아 특별히 부족한 점은 없었지만 굳이 꼽으라면 이른 더위가 올 수도 있으니 다음부터는 9시 출발시간을 좀 더 당기면 좋을 것이다. 당일 날씨가 도와주고 참가인원이 늘어 분위기가 업된다면 최고기록에 도전할 만한 대회다.

 

    ‘어멍‘D-’ : 마음 같아선 ‘F’지만 나니깐 특별히 봐줘 낙제를 면한다. ^.^ 부상을 감안한대도 준비도 실패 레이스 운영도 실패, 몸도 엉망 자제력도 엉망이었다.

 

   2015/08/30 첫 번째 마라톤 풀코스 4:22:36 - 영동포도전국마라톤대회

   2015/11/01 두 번째 마라톤 풀코스 3:47:00 - 한화와 함께하는 2015 충청마라톤대회

   2016/04/10 세 번째 마라톤 풀코스 3:40:14 서산전국마라톤대회

   2016/09/25 네 번째 마라톤 풀코스 3:37:57 청원생명쌀대청호마라톤대회

   2017/05/14 다섯 번째 마라톤 풀코스 4:19:03 - 2017 전국의병마라톤대회

 

    이제까지 참가한 대회의 기록이다. 미리 목표한 첫 완주 및 기존 개인최고기록 갱신을 이루지 못한 첫 대회다. 사실상 첫 실패인 셈이다.

 

    이왕 이리된 거, 앞으론 발상을 전환해 방향을 틀어보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바로 출발 후 최단시간 완주포기 기록에 도전하는 거다. 그깟 뜀박질! 시작하자마자 흥.칫.뿡.이다. 완주시간을 단축하기 힘들 바엔 아예 거리를 생략해 순식간에 해치워버리는 거다. 가장 허접한 러너의 가장 허무한 허세작렬이다. - 이것은 절대 완주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거다!

    아니면 최장시간 마라톤 풀코스 기록에 도전하는 거다. 레이스 도중 교차로 한복판에 대자로 드러누워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아무리 빵빵거려도 안면몰수 뻗대는 거다. 세계기록을 넘어 기네스 기록에 도전이다. 운영진이나 경찰이 다가올라치면 슬금슬금 일어나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다. 그러다 완주를 고집하며 눈치 봐서 도로 드러눕는 거다. 가장 쇠잔한 러너의 가장 떠들썩한 갑질이다. - 이것은 절대 완주를 못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니고 들려나온 거다!


중동은 침대 축구, 어멍은 침대 마라톤 ㅋㅋ

 

    첫 번째 실패에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고 막(!) 나갈 필요도 없다. 실패했지만 색다른 경험, 재미난 경험이었다. 올여름 잘 준비해서 올가을 재도전이다. , 한 번의 러닝에 거리를 늘리고 속도를 높이려고 욕심내기보다는 짧고 느리더라도 연습횟수를 늘리는 꾸준함이 더 필요할 듯싶다.

 

    다시 새로운 도전이다!

 


    ※ 이번에 느낀 것이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마라톤만큼 정직한 운동이 없다는 것! 연습한 만큼,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마라톤은 물리다. 머리가 아닌 몸이 하는 것으로 잔꾀나 얕은 수가 절대 통하지 않으며 정신력이라는 것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절대 객관적인 조건, 몸 상태를 뛰어넘을 수 없다.

    사회생활도 스포츠도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그놈의 정신력을 여전히 우려먹고 있지만 정신력을 집중해서 눈동자에 불꽃을 점화한다고 해서 발에 터보엔진을 달수는 없다. 뻥축구가 아트사커가 되고 날아오던 포탄이 비실비실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정신력으로만 치자면 국군은 이미 소총만으로 세계정복, 국대는 이미 태권축구로 월드컵 우승을 찜져먹은 지 오래다.

 

이거슨 현실이 아닌 만화! 정신력이 아닌 초능력!

 

    정신력이 아닌 몸이 중요하다. 하물며 두뇌게임인 바둑도 체력이 받쳐줘야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데 마라톤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일단 챔피언 바디, 마라톤 바디를 만들어야 한다. 외형은 물론 안도 꽉꽉 채워야 한다.

    일단 한 1년 꾸준히 뛰다 보면 기본적인 몸매가 잡히는 것 같다. 하프 2시간 초반, 4시간 초반의 성적은 낼 수 있다. 이렇게 외형과 기본이 갖춰지면 안을 채워 내실을 다져야 한다. 바로 잔 근육 한 가닥 한 가닥, 세포 하나하나까지 단련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근육은 더 울퉁불퉁 발달했는데 더 비실비실거리고, 언뜻 가냘퍼 보여도 쌩쌩 더 잘 달리는 러너들을 주로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런 모습은 중반 넘어 30k 이후 종반으로 갈수록 더욱 확연하였다. 이것이 바로 실력차이! 하루아침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실천가능한 - 돈도 안 들어, 시간도 안 들어 - '정신력 강화'만으론 결코 바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굳이 멘탈,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정신력'보단 '태도', '자세', '동기부여'란 용어가 더 세련되고 적당하다.)

 

    하룻강아지 몸에 맹호의 정신이면 곤란하다. 용기야 가상치만 자기 수준 이상의 성적을 노려 과욕을 부린다면 꼭 혹독한 후과가 따른다. 요번에 톡톡히 수업료를 치렀다. 이틀이 지난 지금도 양 장딴지에 타조알 하나씩은 들어있는 느낌! 난간에 의지해 계단을 오르내리고 게걸음으로 옆으로 걷는 모양새가 여간 불편하고 민망한 것이 아니다. 오징어는 면했지만 아직 직립보행은 어색한 상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 직립원인)에서 민꼬리 원숭이(곧 유인원)로 퇴화한 느낌이다. .ㅠ 너무 안이하고 교만했다. 더욱 겸손하고 진지해야만 한다.

    마라톤엔 요행수도 없고 왕도도 없다. 오직 중단 없는 꾸준한 연습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도 대충 이런 상황! ㅋㅋ



    ※ 검색해보니 마라톤 최장시간 기네스 기록은 포기해야 할 듯. 이미 <548개월 65시간 3220.3>의 기록으로 등재. 사연이 꽤 길지만 요약해보면...

 

    1912년 제5회 스톡홀름 올림픽 4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염 속에 레이스 포기자가 속출하던 중(68명 출전에 34명 포기 1명 사망) 시조 카나쿠리(金栗四三) 일본선수 역시 중도에 의식을 잃고 쓰러짐 - 이를 딱하게 여긴 인근 농가 주민이 딸기주스를 주며 들어와 쉬기를 권함 - 깊은 낮잠에 빠진 후 일어나보니 이미 해가 저 어둑어둑 - 당황한 카나쿠리 몰래 일본 배를 타고 귀국 - 대회측은 실격이 아닌 실종처리 - 54년이 지난 196776세의 카나쿠리 스웨덴 방문 고령을 감안하여 올림픽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완주기록 인정

 

마라톤에 실격은 있어도 행방불명은 없다.

 

    아놔! 이 기록은 (55년 동안 어디가서 짱박혀 있지 않는 한) 깰 수가 없다. .ㅠ 더구나 내 나이를 생각할 땐 만수무강, 불로장생이 관건! 계산해보니 100세 이상 장수해야 가능하다는 얘기 ^.^:; (완벽히 은신한 채 100세 이상 생존한다면 기록갱신, 생존하지 못한다면 마라톤 최초의 행방불명 사례가 되어 기록을 넘어 전설로 남겠지만 엄두가 안난다.) 차라리 마라톤 세계기록에 도전하는 게 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