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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마라톤

제15회 청원생명쌀대청호마라톤대회 – 여섯 번째 마라톤 풀코스 참가 & 첫 번째 완주 실패 후기 (2017/09/24)

어멍 2017. 9. 26. 20:37

    제15회 청원생명쌀대청호마라톤대회 여섯 번째 마라톤 풀코스 참가 & 첫 번째 완주 실패 후기 (2017/09/24)

 

    - 대회 참가 전

 

    여섯 번째 풀코스 출전이자 올해 참가하는 두 번째 대회이자 처음으로 2회 중복 참가하는 대회다. 개인적으로 되도록 겹치지 않게 여러 대회를 다니며 각지의 경치와 인심 등 색다른 풍취도 느껴보고 다양한 경험도 쌓고 싶은데 가까운 곳에서 열리고 작년에 좋은 기억도 갖고 있어 다시 한 번 뛰어보기로 한다.

    청원대회는 크고 작은 언덕이 많아 어려운 코스에 속하지만 주위 경관은 아름답다. 작년 기록은 3시간 3757, 개인최고기록이다. 하지만 저번 5월의 의병마라톤대회에서 참담하면서도 재밌는 실패를 맛본 터에 올여름 연습량도 변변치 않아서 이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다. 하지만 이번에도 목표는 개인최고기록 갱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단 1초만 줄이면 성공이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성을 높이려면 저번의 실패-초반 오버페이스-를 거울삼아 계획을 좀 더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오버페이스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목표에 범위를 정해 상하한선을 두는 것이다. 바로 3:37:56~3:35:**(평균페이스 5‘08“~5’06”/km) 사이에 골인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늦어도 실패지만 더 일러도 실패로 규정한다. 광활한 우주에서 스쳐지나가는 우주선과 우주선이 도킹하듯이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주어진 시간대에 만나야 한다. 결승선에 잠시 머물다 출발하는 모선에 어멍은 시간에 맞춰 탑승해야 미션 완성이다.

 

    예상외로 빨라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들어올 것 같으면 좀 생뚱맞지만 뛰기를 멈추고 인도로 올라가 다른 주자들 응원이라도 하든가 구경 나온 동네아줌마와 수다라도 떨어야 한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야구선수처럼 선수와 관중, 선수와 동네총각을 겸하는 이도류(二刀流) 마라토너다. ^.^

    하지만 반드시 피니쉬 라인 근처에서 시간을 체크하며 어슬렁거려야 한다. 낮잠 든 토끼처럼 긴장을 푼 채 수다 재미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면 만사허사! 마라톤신도 구제할 수 없는 안타까운 블랙코미디가 된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지금 상황에선 몽상이나 기우에 불과할 뿐! 3:37:56 안에 들어오기가 결코 녹녹치 않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최대한 충실히 준비하고 레이스 운영계획을 더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짤 필요가 있다.

    후반(특히 마지막 10k)코스가 전반보다 어려워 페이스가 늦춰진 것으로 기억하므로 레이스를 세 구간으로 구분해 출발 후 5k까지는 평균페이스 5‘10“/km를 목표로 약간 느리고 여유 있게, 5k 이후 점점 속도를 내서 35k까지는 누적 평균페이스 5’06“~5’05”/km를 목표로 약간 빠르게, 35k 이후 피니쉬까지는 전체 평균페이스 5’08“~5’06”/km를 목표로 최대한 버티는 것으로 한다.

    후반페이스가 떨어지는 건 불가항력이라도 너무 떨어지면 실패다. 어려운 후반코스를 얼마나 지구력 있게 이어가는가에 성패가 달려있다.

 

    D-8일 마지막 장거리연습(LSD) 기록이 만족스럽지 않고 연습 후 왼쪽 종아리 아래쪽으로 지발성 근육통(곧 알배김)도 생겨 악재가 겹쳤지만 목표와 레이스 운영 계획은 일단 이대로 간다.

 

    D-15/ 99일 토요일 / LSD 22.72k (평균페이스 5’05“/k 급수 3, 미니초코바 1)

    D-14/ 910일 일요일 / 휴식

    D-13/ 911일 월요일 / 러닝 8k

    D-12/ 912일 화요일 / 주주클럽 정달모임 카이스트 운동장 러닝 10k & 자전거 16k

    D-11,10/ 913,14일 수,목요일 / 매일 자전거 16k

    D-9/ 915일 금요일 / 휴식

    D-8/ 916일 토요일 / 마지막 LSD 27.47k (평균페이스 5’16“/k 급수 2, 영양갱 1)

    D-7,6/ 917,18일 일,월요일 / 휴식. 워터로딩 시작.

    D-5/ 919일 화요일 / 주주클럽 정달모임 카이스트 운동장 러닝 6k

    D-4 / 920일 수요일 / 휴식. 소프트 카보로딩(탄수화물 위주 식사) 시작.

    D-3 / 921일 목요일 / 마지막으로 러닝 8k로 모든 연습 종료.

    D-2,1/ 922,23일 금,토요일 / 휴식. 컨디션 조절하면서 스트레칭만 실시.

 

917일부터 23일까지 물 섭취량

 

    - 대회 참가

 

 

    924일 일요일 D-Day!

    새벽 510분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한 후 625분까지 둔산 대공원으로 도보로 이동, 대기하고 있던 전세버스를 타고 출발. 가까운 거리라 한 시간도 안 되어 도착.

    대회장인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문의체육공원은 옅은 안개가 끼어 있다. 옷깃을 여밀 정도의 약간 쌀쌀한 날씨면 좋은데 8시가 안 됐는데도 오히려 긴팔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안개가 걷히면 오늘 하루도 꽤나 더워질 것 같다.

 

환복 후 출발 전 대전주주클럽 회원들과 함께

 

    컨디션은 보통. 다행히 왼쪽 종아리의 근육통은 사라졌지만 20,30k 이후에는 어떨까 장담할 순 없다. 가뜩이나 저번 의병마라톤 풀에서 가장 먼저 근육경련이 발생한 취약한 부위여서 출발 전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준비운동과 스트레칭으로 풀어준다.

    그래도 불안해서 만약을 대비해 근육진통제도 출발 직전에 미리 한 알 복용한다.(덱시부프로펜 300mg으로 대회 3일전 몸의 반응을 점검하기 위해 미리 복용해 봄) 원래 무릎 등에 테이핑도 하지 않고 오직 맨몸으로(생각 같아선 시원하니 달랑달랑 알몸으로 ^.^) 달리자는 자연주의 마라토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하여 약물의 도움을 빌리기로 한다.

 

<출발 드림팀> 녹화현장에 난입한 자연주의 마라토너

 

    출발! 날도 더운데 출발이 예정된 840분에서 10여분 늦춰졌다. 1k를 속도를 내지 않고 설렁설렁 뛴 후 2k를 지나 슬슬 속도를 올려보려는데 어라?? 몸이 나가지 않는다. 이쯤에서 몸이 풀리며 가벼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겁고 땀만 평소에 비해, 기온에 비해, 비 오듯 쏟아지는 느낌이다.

    3k를 지나 4k에 접어들면서 염려했던 왼쪽 종아리에 신호가 온다. 애초에 불편했던 종아리 아래쪽에서 좀 더 올라온 장딴지 깊은 곳에서 뻐근하고 은은한 통증이 발생한 것이다. 알배긴 게 다 풀린 줄 알았더니 심부(深部)까지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거다. 이래가지고선 첫 5k 구간 목표인 평균페이스 5‘10“/km를 달성할 수 없다.

 

초반 5k 구간 페이스 분포표

 

    결국 첫 5k 평균페이스 5‘24“/km. 초반부터 최종목표 달성이 비관적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5k! 포기하기엔 너무 너무 이르다. 아직까진 깊은 곳 일점의 통증으로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몸을 달래고 마음을 설득하며 다시 파이팅하고 레이스를 이어간다.

    얼마를 달렸을까? 왼쪽 장딴지의 통증이 점점 강해지며 표면으로 올라와 넓게 퍼지더니 청남대를 돌고부턴 다리전체를 떼기가 힘들다. 무거운 것을 달고 가듯 지면에 질질 끌리는 느낌이다. 뒤에서 추월하며 지나가는 주자가 왼쪽 다리가 불편하신가 봐요?’ 걱정스레 말을 건넨다. 남이 보아도 절름거리는 것이 확연한가보다.

 

    진통제가 효과가 없는 걸까? 아니면 그나마 효과가 있어 이정도인가? 알 수가 없다.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코스도 유난히 힘든 것 같다. 이렇게 언덕이 많았었나? 이렇게 길고 가팔랐었나? 불과 일 년 전, 내가 개인최고기록을 달성한 코스가 바로 이 코스인가? 믿기지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니 멀리 노현삼거리가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틀면 풀코스, 왼쪽으로 틀면 내쳐 결승점이다. 잠시 망설였지만 별 고민 없이 왼쪽 길을 택했다. 오른쪽이면 저번 의병마라톤처럼 후반 죽음의 레이스를 이어가야 한다. 그것도 의병마라톤은 10여키로였지, 이번은 풀의 절반인 20여키로나 남아 있다. 오른쪽 다리는 아직 힘이 남아돌아 더 가자고 하는데 왼쪽 다리가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애초의 계획이 안타깝지만 진지해서 더욱 우스운 코미디 수준의 몽상이었음이 명백해졌다. 개미가 코끼리를 어떻게 해서 걸어 넘어뜨릴지 고민했던 거다.

 

    이미 포기한 레이스, 이미 베린 몸. 이제 본격적으로 부담 없이 걷고 뛰기를 반복한다. 지면에 닿는 순간 왼쪽 발목에서 장딴지와 무릎을 거쳐 허벅지까지 징징 울려오는 통증으로 오르막보단 차라리 내리막에서 걷는 것이 그나마 편하다. 몸은 고되고 마음은 목표도 보람도 잃은 패잔병 신세다. 이러다가 걷는 게 습관이 되고 완주포기에 재미들리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10k, 하프, 풀을 막론하고 대회에 출전한 이래, 첫 완주 실패다. 갈피를 잃은 마음으로 완주에 대해 생각하며 걷다 뛰다 한다. 완주를 못한 것이 아까우면서도 마땅히 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는 의무감, 이렇게 쉽게 포기를 결정한 것에 대한 미련에 아깝다기보단 미안함과 회한이 든다. 과연 마라토너에게 완주란 무엇인가?

 

    “Nothing...... Everything” 아무 것도 아니거나 모든 것인가? 아무 것도 아니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인가? 성지 예루살렘을 뺏고 빼앗기 위한 십자군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Kingdom of Heaven>에서 What is Jerusalem Worth? (예루살렘이란 무엇입니까?)”에 대한 살라딘의 답변이다. 하지만 마라토너에게 완주란 아무 것도 아니고 모든 것도 아니다. 분명 소중한 그 무엇, 도전하고 성취할만한 충분하고도 분명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다.

    산에 간다고 해서 반드시 정상에 오를 필요는 없다. 산허리까지 오르며 땀도 흘리고 산꽃, 들꽃의 향기에 취한 후 내려와도 보람이 있다. 하지만 정상에는 그곳에는 없는 것이 있다. 정상에는 그곳에만 있는 것이 있다.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전경(全景)이 있고 정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이 있다. 마라톤의 정상, 마라톤의 완성인 완주에는 그것만이 가지는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

 

Nothing...... Everything

 

    연습 삼아 뛴다는 생각으로, 하루 이틀 뛸 것도 아니고 무리하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자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머지를 달린다. 화려한 피니쉬도, 완주기록도, 완주사진도 없다. 최종기록 25.89km 2시간 2854(평균페이스 5’45“/km).

 

    - 평가 및 마무리

 

    대회는 ‘B+’ : 작년에 평가한 ‘A-’보다 못한 느낌. 더운 날씨에 출발시간도 늦어졌고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내 컨디션이 나빴던 것이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 듯 ^.^ 그래서 그런지 코스도 더 험한 느낌이었고 평소 대청호를 끼고 도는 아름다운 숲과 시골길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멍‘F’ : 완벽한 실패!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낙제다. 패인은 명백한 연습부족. 특히 대회를 앞두고 급한 마음에 뒤늦게 무리한 연습을 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7,8월 게으름을 피다가 대회 1주일 전에 벼락치기를 하였으니 탈이 날 밖에! 결국 문제의 왼쪽 종아리가 발목을 잡은 셈이다.

    덕분에 세 번째 마라톤 철칙을 얻었다. 바로 대회 전 2주일 이후부터는 절대로 LSD 등 무리한 연습을 하지 말 것이다. (다른 철칙 두 개는 대회 다음날에는 반드시 나무늘보 모드로 휴식을 취할 것레이스 초반 오버페이스 금지.)

    무리하지 않고 일찍 포기한 덕분에 후유증은 크지 않다. 천신만고 끝에 완주한 저번 의병마라톤 이후엔 일주일간 정상보행이 힘들 정도였는데 이틀이 지난 지금 왼쪽 종아리의 통증은 거의 가셨다. 대신 왼쪽 발목의 통증이 뒤늦게 드러났는데 아마도 종아리 대신 발목으로 뛰느라고 무리한 힘이 가해졌던 듯싶다.

 

    올해 있은 두 번의 대회에서 연속해서 목표달성에 실패! 누적점수 0+0=0점이다. 저번에는 완주라도 했지, 이번은 마음 같아선 마이너스, 낙제, 퇴학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겐 비장의 전략인 삼세판이 남아있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 야구도 삼진아웃이다. (세판 중 두판 지면 끝장인 게 삼세판인데 뭔 소리냐며 시비해도 소용없다. 무조건, 어쨌든) 내겐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

    올해가 가기 전 11월 남원대회에서 목표달성에 마지막으로 도전한다. 날씨도 도와줄 것이고 평탄한 쉬운 코스라 하니 희망을 가져본다. 새로운 시작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도전이다!

    쓰라린 실패에도 마라톤은 언제나 즐겁다! 값진 완주사진은 없지만 인증샷은 언제나 즐겁다!

 

도킹 실패! 미션 실패! - 다음을 기약하며 ♬ Baby One More Time ♪

- Performance from Jewelry <One More Time> -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하는 말


    아내 : 서방님 이 사진 누가 찍었사옵니까?

    나 : 주주회원에게 부탁했지요.

    아내 : 앞으론 부탁하지 마시옵소서.

    나 : ......

    아내의 반응에 뾰로통해서 옆에 있는 중딩 아들 종서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나 : 종서야 멋지지 않냐?

    종서 : 아우~ 쪽팔려!

    나 : ...... (흥! 부끄러움은 너희 몫이다.)


    완주를 못했으니 기념할만한 멋진(?) 사진이라도 남겨야 낙이 있다.

    연이은 실패에 대회에 완주말고도 재미진 것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앞으론 먹거리, 군것질, (사진)찍기, (경품)뽑기, (공짜)얻기 등에 더 공을 들이고 보람을 찾아야겠다.

    주로가 아닌 대회장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마라톤계의 아웃사이더, 한량으로 거듭나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