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번째 주일 대표 기도문 (20250223)
- 12.3 비상계엄 이후 혼란한 정국에 즈음하여 -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삶의 터전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저희의 기쁨과 슬픔, 시기와 질투, 마음 깊은 곳의 수치와 갈등과 분투까지 모두 아시오니 저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희를 돌보아 주시고 은혜내려 주시옵소서. 저희가 온전히 주님을 믿고 의지하오니 저희에게 평안을 주시고 영광은 오직 주님 것으로 하시옵소서.
주님.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 이후 두 달이 넘도록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사옵니다. 큰 파도와 폭풍이 일어 저희의 마음이 불안하고 저희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사옵니다. 저희가 주님의 말씀과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진리와 정의 안에서 호수보다 먼저 잠잠케 하시고 돌보다 먼저 소리치게 하시옵소서. 침묵해야할 때에는 침묵하고 용기내야할 곳에선 용기내게 하시옵소서. / 무한정의 사랑과 자비도 주님 것이요, 정의로운 심판과 복수도 주님 것이오니 저희가 주님에 앞서 함부로 심판하지도, 함부로 용서하지도 않게 하시옵소서. 부디 바라옵건대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주님의 공의로서 판단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혼란스런 이 시대에 한국교회와 저희 안의 허물을 돌아보고 회개합니다. 한 사람의 죄가 저의 죄이고 한 사람의 죽음이 저의 죽음이듯이 회개 역시 저의 것이 되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도 정작 바리새파 제사장들을 따르지는 않았는지요. 열왕기를 읽으며 아합왕과 이세벨에 머리 조아리고 계시록을 읽으며 짐승의 위용에 눈이 멀지 않았는지요. 일찍이 주님께선 드러내지 않고 다만 증거하셨지만 저희는 저희 믿음을 증거하지 않고 그저 자랑하고 외식하지 않았는지요. 그러면서도 주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신 것들을 친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요.
주님. 저희의 식탁 위와 침대 밑에 친근하게 숨어있는 가볍고 더러운 먼지들이 저희의 바지에 묻어나고 저희의 머리에 내려앉았습니다. 작은 허물들이 쌓여 큰 죄를 이루었습니다. 저희는 어제도 오늘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뿐이오니 오래되어 심연 깊이 가라앉은 죄악도, 새롭게 수면 위를 부유하는 죄악도 지루하게 똑같은 모습일 뿐이옵니다. 진부한 죄악이 계절을 바꿔 옷을 갈아입고 오지만 거짓과 궤변의 얼굴은 한결같으니 마주하기가 힘들고 지칠 뿐이옵니다.
주님. 저희가 사주, 관상, 운세, 점술, 풍수, 부적, 해몽 등에 미혹되어 마음뺏기지 않게 하시옵소서. 손바닥에 왕자를 새기는 해괴망측한 일들을 경계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대적하는 무속과 주님을 참칭하는 사이비에 대해 더욱 엄히 대하게 하시옵소서.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듯 저희에게서 주님의 열매가 열리게 하시고, 스위치를 켜면 불이 켜지듯 저희에게서 주님의 뜻과 말씀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게 하시옵소서. 저희는 남몰래 행한 악행을 남몰래 자복하며 주님께 용서를 구하오나 저희의 어리석음은 알아채지도 못하고 주님께 자복하지도 못하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악행보다 저희의 어리석음이 더 깊고 오래 되었사오니 저희에게 밝은 명철과 성실한 굳건함을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를 보우하사 이제까지 지켜주심을 감사합니다. 저희들 비록 가진 것 적어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의 은혜를 찬미하오니 굽어살피시옵소서. 큰 것 바라지 않사오니 하루빨리 저희에게 평안을 허락하소서. 저희에게 건강과 일용할 양식을 바라는 소박한 기도를 허락하소서. 전쟁과 환란과 사건사고에 대한 걱정 없이 저녁엔 평안한 잠을 이루고 아침엔 조용한 하루를 맞게 하소서. 그러한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 올리게 하시옵소서. 저희가 아직은 씨앗과 함께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있사오니 다가오는 봄에는 새들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고 잎이 새로 돋아나게 하시옵소서.
사랑도 정의도 모두 주님 것이요 진정한 생명과 평화와 안식 역시 오직 주님 안에 있음을 믿사오며 이 모든 말씀 악으로 선을 드러내시고 선으로 악을 이기시는 주님, 그리하여 역사와 세상만물의 섭리를 어김없이 이루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 내란사태 : 예민한 단어라 실재 기도문에서는 생략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이 헌정질서를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중지하려 한 불법계엄이자 친위쿠데타임은 명백하다.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한 폭동'이란 조건을 완벽히 갖춘 '내란'임은 명백하다. 조만간 헌재에서 8:0 심판 전원일치로 파면이 결정될 것이 분명하다. (이후 예상되는 일정은 2개월내 조기대선 → 윤석열 형사재판에서 내란수괴죄로 무기징역 선고 → 내란 외환에 한해 사면권 제한 입법, 즉 살아서는 감옥을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헌정질서, 민주주의를 뒤엎으려 한 손바닥 王
2025년 1월 14일 대통령 관저 인근 탄핵반대 시위 현장의 龍자 부적
윤석열 김건희 대통령 내외도, 그 지지자들도 무속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 한 사람의 죄가 저의 죄이고 한 사람의 죽음이 저의 죽음이듯이 회개 역시 저의 것이 되게 하시옵소서.
: 한 사람의 죄는 아담의 (원)죄, 이웃의 죄이고 한 사람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 이웃의 죽음을 뜻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여기서는 이웃, 타인의 죄와 죽음에 더 방점이 찍혀있다.
(함부로) 용서하고 심판하는 것,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 남의 죄를 대신 혹은 대표하여 회개하거나 스스로 타인의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것은 모두가 교만이다! 오만이다! 미성숙한 오지랖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인간인 이상 판단하고 분별하지 않을 수 없다. 감정있는 인간인 이상 감동하거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너는 너, 나는 나, 마냥 외면할 수 없다. 회피하거나 도망칠 수 없다. 문제는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과 심성에 부합하는가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만이 아니다. 주책맞은 오지랖이 아니다. 나를 미워하는 인간, 내가 미워하는 인간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근본에선 다 같은 종, 모두가 죄에서 자유롭지 않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인간인 것이다. 내 반대편에 선 인간 안에도 하나님의 신성이 있으므로 긍휼함과 애정의 시선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내 안에도 죄성이 있으므로 부단히 성찰과 겸손의 자세를 놓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죄가 나의 죄다. 한 사람의 실수와 허물과 악행과 어리석음이 모두 나의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다. 한 사람의 선행과 덕성과 용기와 희생이 모두 나의 것이다.
그럴 때 한 사람의 회개와 갱생(거듭 남)과 부활 역시 너와 나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아합왕과 이세벨 : 열왕기에 나오는 폭군과 그의 사악한 왕비.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빗댄 것을 성경을 읽은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 친근하게 : 악은 친근하게 다가오고 인간은 친근하게 받아들인다. 악은 성실하고 친절하고 서글서글하다. 심지어 인간적인 매력과 모자란 구석도 있어 다가가고 맞이하기에 부담이 없다. 하지만 때가 되면, 결정적인 순간 잔인하게 표변한다. 위선의 가면을 벗고 극악무도한 얼굴을 드러낸다. 작은 악은 친근하게 다가와 비루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거대한 악은 더욱 친근하게 다가와 폭력적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 저희는 어제도 오늘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뿐이오니 오래되어 심연 깊이 가라앉은 죄악도, 새롭게 수면 위를 부유하는 죄악도 지루하게 똑같은 모습일 뿐이옵니다. 진부한 죄악이 계절을 바꿔 옷을 갈아입고 오지만 거짓과 궤변의 얼굴은 한결같으니 마주하기가 힘들고 지칠 뿐이옵니다.
: 우리는 도처에서 보았다네, 애써 찾은 것도 아니지만 / 숙명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서부터 바닥까지 / 불멸의 죄악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그 지루한 광경들을
- 보들레르 <여행> 싯구와 같은 맥락, 같은 내용이다. 지칠 줄 모르고 같은 듯 다른 듯,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죄악이 지루하면서도 놀라울 따름!
※ 전쟁과 환란과 사건사고 : 전쟁, 경제난, 기아, 질병, 지진, 화재, 홍수, 하늘과 땅 위에서의 대형 교통사고... 우리의 미래를 불안케하는 재앙들이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인재도 있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도 있다. 이번 비상계엄은 대표적인 인재다. 그것도 야밤에 들이닥친 강도처럼 황당하고 느닷없는 초대형 인재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의외로 무덤덤하다. 하나의 헤프닝인 것처럼 안이하게 생각한다. 계엄이라는 것이 무얼 말하는지, 필연적으로 어떤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질지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다.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천만다행으로 계엄이 실패한 것은 분명 하나님이 이 민족과 나라를 보우하신 일이다.
이것은 죽고 죽이는 문제, 우리의 생명과 안전과 자유가 달린 문제다.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치, 기독교냐 불교냐 하는 종교를 넘어선 우리 삶이 달린 문제다. 여기에 양비양시론과 중립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 이제까지의 기도문 중 가장 정치적인 기도문이다. 교회와 성도와 목사님(가뜩이나 사고로 입원 중이신)을 위한 기도내용은 없다. 오로지 비상계엄 내란사태로 인해 이어지고 있는 혼란한 정국에 대한 기도와 걱정만 담았다. (그런데도 예전 대표기도보다 길다) 생각과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극히 예민한 주제겠지만 비상시국인 만큼 비상기도문인 셈이다.
성경의 사전지식이 필요하고 비유, 은유, 상징, 인용 등이 많아 쉬운 기도문은 아니다. 되도록 구어체의 쉬운 문장으로 풀어쓰려 했는데 만족스럽진 않다. 그럼에도 내용 자체는 예전에 비하면 가장 구체적, 직설적, 노골적이다. 용어 등을 취사선택하며 수위를 조정했지만 주제가 주제인만큼 거칠고 모가 나있다. 축복과 은혜를 비는 평범, 편안하고 무난한 기도문은 아니다. 분명 성도들 중 그 누군가에겐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기도문을 올린 것은 현 사태에 대한 기독교 일부의 안타까운 태도 때문이다. 바로 전광훈 (자칭) 목사의 사랑제일교회와 손현보 목사의 세계로교회를 포함한 대형교회 위주의 극우보수교단을 말함이다. 어제(22일)는 이곳 대전에서 손현보 목사, 전한길 강사 등이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란 이름으로 탄핵반대집회를 열기도 했다. 왜 천주교, 불교는 가만있는데 일부 기독교는 중립을 넘어 앞장서서 불의를 옹호하고 편드는가! 보수를 넘어 극우와 파쇼와 독재 옹호까지... 어디까지 타락하려 하는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이대로라면 기독교가 대중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덕성은 물론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기본소양 역시 갖춰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론 고령층을 중심으로 아직도 60,70년대 정치적 권위주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으론 민간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뿌리깊은 무속과 명리론을 친근히 받아들이며 기복신앙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은 유독 기독교 신자만이 아닌 전체 국민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탄핵반대 집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높여 부르짖으며 윤 대통령 복귀를 간절하게 기도하는 교회 신자들을 본다. 우리 이웃, 우리 교회에도 거기에 동조하고 집회에 나가는 신도들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앞장서 오도하는 거짓 선지자, 사악한 이들과 이들에 설득당하고 이용당하는 어두운 이들을 구분해야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분들이 읽는 성경과 내가 읽는 성경은 다른 것인가? 이분들이 믿는 그리스도와 내가 믿는 그리스도는 다른 분인가? 이분들의 정의와 내 정의는 왜 이토록 거리가 먼가? 혹시 내가 그릇되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번과 같이) 명백한 정치적 불의와 하나님의 의는 양립가능한가?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거나 심지어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며 정치적 불의를 옹호하는 이 가공할 정치적 편견과 광기에 가까운 열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과연 정치적 입장을 바꾸는 것과 종교를 바꾸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
이분들은 과연 변화되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 솔직히 회의적이다. (내가 그렇듯 이분들 역시) 바뀌기는 힘들다.
오직, 다만,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뜻과 말씀, 긍휼과 보살핌과 인도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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