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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26 : 역대하 36장

어멍 2010. 10. 18. 00:20

    성경읽기 0026 : 역대하 36장



    역대하는 솔로몬 왕부터 유대왕국이 멸망하기까지의 역사로 주요내용은 솔로몬의 통치, 힘들게 건축된 성전이 이방인의 침략으로 파괴된 이야기,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재건이 시작된 이야기, 여러 왕들의 개혁 이야기, 유다왕국의 멸망과 회복에 대한 예언이다.

    주요인물은 솔로몬, 유다 왕들. 핵심어는 ‘성전’과 ‘개혁’이다.



36장 12절

시드기야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그에게 전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14절

뿐만 아니라 지도자인 제사장들과 유다 백성도 점점 악해졌습니다.

16절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비웃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미워했습니다.

 

    1장부터 35장까지의 내용은 대부분 열왕기와 겹친다. 시드기야는 유다 최후의 왕으로 유다왕가와 유다왕국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 포스팅 성경읽기 0024 : 열왕기하 17장~25장에서 이미 적은 바 있다.

    왕도 악하고 지도자도 악하고 백성도 악하다. 모두가 악하다. 나라 전체가 악하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도 악하고 국회의원, 재벌회장, 장차관, 판검사, 대학총장, 목사도 악하고 국민들도 악한 것이다. 당연히 죄가 쌓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밖에. 결국 유다왕국은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고 그것을 비웃고 미워했다. 우리 신자들이 특별히 도덕적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 뒤섞여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느니 ‘도덕보다 능력이 우선’이라니 하기 시작하는 데서 죄가 싹튼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선하시고 도덕적이다. 성경에만 충실하면 죄를 면할 수 있다. 충실하고도 악할 수 없다. 악하다면 충실하지 않은 것이고 잘못 믿는 것이다.

    선한 이에게 성경은 복음이요 구원이지만 악한 이에게 성경은 심문(審問)이요 포승(捕繩)이다. 선한 이에겐 기쁘고 감사하지만 악한 이에겐 거북하고 괴롭다. 하나님의 사랑, 진의에 가까이 가기 위해선 성경에 충실해야만 한다. 그 참뜻을 궁구(窮究)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고 기도해야 한다.



20절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은 살아남은 백성을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가서, 자기와 자기 자손의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왕국이 바빌로니아를 물리칠 때까지도 노예로 있었습니다.

22절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고레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된 첫 해에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고레스는 온 땅에 사람들을 보내어 글로 적은 칙령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23절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선포한 칙령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이 세상의 온 나라들을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나를 세우셔서 유다 땅 예루살렘에 여호와를 위해 성전을 짓게 하셨다. 이제 너희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의 젊은이뿐 아니라 남자, 여자, 늙은이, 병든 사람까지 죽이고 재산을 약탈하고 성전과 왕궁을 불태우고 성벽을 무너뜨린 후 나머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간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70년간의 고난의 포로생활을 한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Chorus of Hebrew Slaves) -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Verdi Nabucco) 중에서


    고레스(Cyrus Ⅱ, 키루스 이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고 성전재건을 명령하며 성전에서 가져왔던 금, 은, 그릇 등을 돌려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여 성전과 예배 시스템은 복원된다. 여호와에 의해 마음이 움직여 이러한 업적을 이룬 고레스는 과연 여호와를 믿는 자였을까? 속단할 수 없는 예민하고 어려운 주제이나 신학자, 역사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의견과 가설이 있어 간단히 적어 본다.

    고레스가 사실은 다신론자였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고레스가 바빌론에 입성한 후 그의 바빌론인(人) 신하들에게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Marduk)이 어떻게 자신을 택하여 세웠는지를 설명한 기록을 보면 고레스의 칙령과 유사점이 많다. 즉 ‘마르둑이 그(고레스)의 선한 행위들과 바른 마음을 기쁘게 보셨으므로 그에게 명하여 의로운 통치자로 세웠다’는 내용이다. 또한 고레스는 유대민족뿐 아니라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 당한 억압받던 다른 민족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성경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이 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고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시작하는 이사야 45장이 그것이다. “네가 아직 나를 몰랐을 때, 나는 네 이름으로 너를 불렀다.”[이사야 45:4] “네가 나를 알지 못하나, 내가 너를 강하게 해 주겠다.”[이사야 45:5] ---- 4절은 김춘수의 시 <꽃>이 연상되는 무척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멋지고 깊은 표현이다. 김춘수씨도 크리스천이었나?

    혹자는 고레스가 유대민족의 해방을 예언한 예언서를 읽고 기록된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야심에 사로잡혔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 즉 하나님에 의한 감동보다 자신의 야망과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이민족 해방 정책을 취하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설혹 그렇다해도 하나님의 역사하심, 섭리가 빛을 바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움직이신 것에는 변함이 없다.




고레스 대왕(재위 BC 559~529)

전 오리엔트를 지배한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시조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성경이 극찬한 유대인이 아닌 유일한 인물



    고레스뿐 아니라 유대민족을 무자비하게 죽인 이민족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느부갓네살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에게 벌을 준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역대하 36: 17] 너무 어렵고 복잡한 주제이므로 여기서 줄인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요 섭리다.


    역대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