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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앙생활

성경읽기 0006 : 출애굽기 1장~16장

어멍 2010. 3. 26. 23:45
 

출애굽기를 비롯한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저자는 모세.

핵심어는 구출, 구속, 계명.

주요 인물은 모세, 아론, 파라오, 이드로, 여호수아.


출애굽기 1장 7절

이스라엘 백성은 자녀를 많이 낳아 그 수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매우 강해졌고, 이집트는 그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이스라엘이기도 한 야곱의 자손이 이집트에 정착하여 그 수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 한 때는 요셉이 파라오의 절대 신임을 얻어 총리에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어차피 이민족. 수가 늘어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겐 새로운 위협이 된다. 결국 이집트는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삼고 핍박한다.

    맨 몸에 칼 하나 차고 전쟁을 치러야 했던 옛날이야 머리수가 힘의 원천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의 국력을 확보, 유지하려면 일정 수 이상의 인구수가 받쳐줘야 한다. 한 국가 안에서도 특정 계급이나 지역, 인종의 파워가 늘려면 머리수가 기본이다. 바로 득표수다.

    한국의 저출산율이 문제다. 요새 이슈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만 해도 그렇다. 맘 놓고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은 만들려 하지 않고 일단 하나라도 더 낳고 보라는 정부의 켐페인성 홍보정책이 근본문제다. 애들 하루 밥 한 끼 먹이자는 데 뭐가 그리 복잡한가. 있는 집 자식 없는 집 자식 가리지 말고 우리 아이들 눈칫밥 먹이지 말자는 데 뭐가 그리 시비인가. 한나라당 왈 부자에게까지 공짜 밥 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고? 무상급식보단 무상보육이 먼저라고? 이게 양자택일의 문제인가. 무상급식은 무상보육의 기본이다. 소요경비로 따져도 무상급식이 배꼽이라면 무상보육은 배다. 무상보육이 급하니 먼저 하자는 말은 말장난이다. 무상급식은 이미 무상보육에 포함된 개념으로 봐야 옳다. 먹이고 하자.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게 무엇인가. 윈스턴 처칠은 영국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쫄쫄 굶기고 영어 단어, 수학 공식 공짜로 가르쳐주면 그게 머리에 들어가는가. 이런 식 억지 반대면 결국 집안 요리사가 만든 특제 바비큐 먹지 친구들이 먹는 오뎅은 안 먹겠다는 거다. 양반 상놈 겸상하기 싫다는 거다. 할 말은 많지만 이만 끊고.

    하여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표수가 정치적 파워다. 다른 정파, 다른 계급에 포섭되지 않는 한, 투표권을 박탈당하지 않는 한, 당장이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며 자손을 번성시키면 권력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오래 걸리고 단순무식한 방법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미국도 언젠가는 흑인인구가 백인인구를 추월할 것이다. 이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


2장 10절

공주는 아이를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공주는 그 아이를 물에서 건져 내었다 해서 그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 남자 아기를 태어나는 족족 죽여버리자 레위 집안(주로 예배와 제사를 담당하는 12지파 중 하나)의 한 여자가 자기의 사내 아기를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는 강가 수풀 속에 놔두어 공주로 하여금 발견하게 한다. 이 아기가 바로 모세다.


3장 14절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서 ‘스스로 있는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여라.

 

    모세가 호렙 산에서 불붙는 나무의 이적을 보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내리라는 하나님의 음성, 약속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다. 마치 동양의 ‘천지자연(天地自然)’ 우주관을 연상케 한다. 즉 ‘하늘과 땅은 스스로 그러하다’, ‘우주는 스스로 그러하다’란 사상이다. 얼핏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와는 맞지 않는 사상이다. 변이는 무작위적이며 자연선택은 맹목적이라는, 이 우주에는 가치와 목적이 없다는 다윈의 진화론 역시 기독교 교리와는 모순되는 점이 많다.

    한 때 많이 고민했고 지금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주제가 있다. 바로 백해무익한 악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아예 존재자체의 의미나 무게감이 없는 것들은 왜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다. 기형아, 장애인, 걸인, 이름 모를 산천의 잡초, 보이지도 이름도 모르는 온갖 미물들...그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하지만 스스로 그러하게 하나님이 지으셨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듯 이 세상에도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자율성을 주셨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또 다른 축복이자 숨은 뜻은 아닐까! 이것이 ‘스스로 있는 분’만이 가능한 역사이지 않을까!

    이것은 단순한 방어적 차원의 지적설계론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려 함은 더욱 아니다. 전지전능하나 너그러우신 하나님, 주재하지 않는 주재자 즉 무엇이든 주재할 수 있으되 모든 것을 주재하지 않는 하나님, 모든 것에 간섭하지 않고 우리에게 자유의지의 영역을 남겨주신 하나님을 말하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악한 존재도, 가볍고 무의미한 것만 같은 존재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 쓰이지 않는 것의 쓰임, 때론 악을 통하여 선을 드러내시는 섭리...제멋대로 하나님과 기독교를 재단하는 사이비, 이단의 생각일지라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섭리’에 더 믿음이 가고 감동을 받는다.


5장 21절

작업 반장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들을 내려다보시고 심판하시기를 바라오.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소. 당신들은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죽이도록 그들의 손에 칼을 쥐어 준 거나 다름이 없소.”

 

    아론은 모세의 형이자 말 주변이 없는 모세를 대신한 대변인이다. 그 역시 레위 집안 사람으로 최초의 대제사장이 된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줄 것을 요청하자 화가 난 파라오는 히브리 노예들을 더욱 가혹하게 부린다. 파라오의 노예 감독들이 이 노예들 중 뽑은 작업 반장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이들을 저주한다.

    언제 어디서든 꼭 이런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나약한 백성, 어리석은 민중이다. 심약한 부류, 원망하고 저주하는 부류 심지어 타민족, 지배자 편에 서서 그들의 앞잡이로 나서는 이도 꼭 나온다. 대리인, 완장, 마름, 사냥개들이다. 요새 인기있는 드라마 <추노>에서도 도망갔다 잡혀온 노비에게 동료 노비가 너 때문에 더 화를 입고 고생하게 됐다며 원망하고 미워하는 장면이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겠지.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출애굽 14:12]라고 여길 것이다. 모든 노비, 모든 대중이 선지자나 지사처럼 떨쳐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서 그들을 해방으로 이끌 지도자인 모세 같은 선지자에겐 참으로 서운하고 힘 빠지는 일이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출애굽하는 과정, 그 이후의 광야에서도 변함이 없어 믿음이 흔들려 곧잘 불평과 원망을 반복한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순진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달랑 지팡이 하나 들고(물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위임받은 도구로서의 지팡이다) 파라오 앞에서 노예 해방과 독립을 요구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예수나 성인군자도 아니고 어떤 지배자, 어떤 권력자가 순순히 허락하겠는가. 권력이란 정치란 그때그때의 힘의 역학만이 작용하고 그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모세는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고 파라오를 두렵게 한 열 번에 걸친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을 보이고서야 이집트를 탈출하게 된다. 그 유명한 홍해의 기적이다.

14장 22절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양쪽에는 바닷물이 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홍해의 기적


16장 13절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천막들을 덮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이번에는 이슬이 천막 주위를 덮었습니다.

14절

이슬이 걷히자, 서리와 같은 얇은 조각이 땅 위에 있었습니다.

 

    곧 ‘만나’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내내 메추라기와 함께 먹고 살았던 ‘하늘로부터 내린 양식’이다. 그 맛은 꿀로 만든 과자 같다고 하였는데 같은 맛을 내는 만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 그 땅에서 난 것을 먹은 바로 다음 날 그쳤다고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