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idn't Speak (나는 침묵했었습니다.)

 
Emil Gustav Friedrich Martin Niemoeller (에밀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마틴 니묄러/1892-1984)



In Germany, the Nazis first came...                        독일에 처음 나치가 등장했을 때...

They came for the Jews                                         처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갔습니다.
and I did not speak out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because I was not a Jew.                                      왜냐하면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Then they came for the Communists                      그 다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and I did not speak out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because I was not a Communist.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Then they came for the socialist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and I did not speak out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because I was not a socialist.                               왜냐하면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T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그리고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들을 잡아갔습니다.
and I did not speak out                                           나는 이때도 역시 침묵하였습니다.
because I was not a trade unionist.                       왜냐하면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Then they came for the Catholics and Protestants 그리고 이제는 카톨릭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을 잡아갔습니다.
and I did not speak out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because I was not a Catholics and Protestant.      왜냐하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Then they came for my neighbours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내 이웃들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and I did not speak out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because I don't know my neighbours wrong.         왜냐하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Then they came for my friends                               그러던 어느 날은 내 친구들이 잡혀갔습니다.
and I did not speak out                                           그러나 그때도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because I only love my family.                                왜냐하면 나는 내 가족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Then they came for me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but there was no one left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나를 위해
to speak out for me.                                                이야기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잡혀가고 내쳐지고 쫓겨났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가고 없고 임기가 남아 있던 정연주 KBS 사장을 비롯한 공공기관장과 공기업 사장들이 강제로 퇴임당했으며 이제 그 여파가 신경민 MBC 앵커, 윤도현, 김미화, 손석희, 김제동 등 하부구조로까지 미치고 있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대어는 물론 잔챙이들까지 씨를 말리려는 기세다. 가히 혁명세력의 전격적이고도 집요한 전면전, 지구전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선 어김없이 법과 절차를 무시한 무모할 정도로 화끈하고 야비하고 치졸한 보복의 수단들이 동원되었다.


용산 참사, 미네르바 사건, PD 수첩 사건, 시국 선언한 전교조 교사들의 해직과 사법적 징벌, 촛불 시위자들에 대한 사법적 징벌, 온갖 권력기관들의 정치세력 종속과 정치사찰 부활, 나의 해임을 비롯한 공기업 사장들의 강제 퇴임, 사회적 저항자에 대한 연좌제, 박원순 변호사 사건에서 보듯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돈줄 씨 말리기, 진중권 교수의 강의 박탈, 시중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광고주에 대한 직간접적 압박(권력기관에서 "지혜롭게 사시라"고 한다던가?), 진보언론 광고 고사 현상, 이로 인한 여론의 편중 심화와 다양성 소멸, 그리고 이 모든 역사 역류의 가장 상징적이고 집약적 사건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자신 몸의 반쪽이 무너진 후 석달 만에 끝내 온 몸이 무너져 버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 독단과 일방주의, 폭군적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폭군적 정치보복, 그 업보 어찌하려고...-오마이뉴스 '[정연주의 증언 6] 김제동마저 퇴출' 중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이 언급한 ‘서민경제, 민주주의, 남북관계’의 3대 위기 중 민주주의의 위기만 나열해도 위와 같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악화, 후퇴, 훼손되는 이와 같은 사건, 상황들을 보며 두 전직 대통령은 분노하고 허망해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의기투합하여 이에 저항하고 대처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던 차에 노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를 맞았다. 이후 김대통령은 독재를 언급하며 절박함을 드러냈고 거기엔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예감이라도 한 듯 조급함이 묻어나왔다. 결국 노대통령의 서거에 자신의 반이 무너졌다던 이 노구의 정객은 분노, 허망함, 절박함, 조급함에 몸과 맘이 상하여 나머지 반도 무너지고 만다. 원래 노환과 고문후유증 등이 있어왔지만 결국은 화병으로 가신 거다.

    본디 눈 먼 자들의 도시에 있는 눈 뜬 사람, 남보다 먼저 보고 멀리 보고 넓게 보는 사람은 괴롭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마을에 홀로 깨어있는 사람은 외롭고 고단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숨겨진 위험, 다가올 위기를 본다면 모두가 한가하게 유유자적하더라도 홀로 근심하고 조급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수구 기득권세력. 권위적인 독점적 중앙집권주의자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탐욕이라는 이름의 불도저다. 힘이 세다. 완력이 대단하다. 화끈하고 저돌적이고 거칠 것이 없다. 부시, 이명박, 베를루스코니. 정치적 수구우파인 이들은 근면하지만 성실하진 않고 정력적이지만 소통, 교감하는 정서와 깊은 지력은 발달하지 않은 공격적이고 권위적이고 호전적인 육식남들이다. 뇌는 작고 식욕은 왕성하고 발톱은 날카로운 T-Rex들이다. 당연히 다소간의 마초이즘 성향까지, 공통점이 많다.
    부정확한 언어사용으로 영어환자(English Patient)로 불렸던 부시 대통령, 잦은 천박한 성적 농담으로 화제가 되곤 하는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연단에서 스스럼없이 허리띠를 고쳐매고 한글 맞춤법도 틀리기 일쑤인 이명박 대통령. 모두 깊은 지성이나 고매한 인품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대체적으로 정력적이고 화통한 성격에 백치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부담되지 않는 친근한 (남)성적 매력까지도 풍기는 호남형, 호감형 외모를 갖고 있다.
    레이건, 아들 부시, 베를루스코니, 사르코지, 모두 영화배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외모다.(실지로 한명은 영화배우 출신) 다만 이명박 대통령만은 예외인 것이 그의 오디오, 비디오는 거의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본인 포스팅 "다시 보는~'욕쟁이 할머니'편" 참조) 내용보단 이미지, 지성보단 감성에 호소하는 우파의 전략으로 볼 때 어울리지 않는 자질, 최악의 원자재이다. 많은 양의 화장품과 정교한 화장술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 실지로 멀게는 드라마 <야망의 세월>부터 가깝게는 청계천까지, 단순한 치적, 홍보라고 보기에는 치밀한 것이 사전에 어떤 설계도, 시간표를 가지고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플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세상일이란 게 어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있던가.
    이유 없는 무덤 없다. 결국 이명박 후보가 불리한 자질, 허접한 본질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올랐다는 것은 조중동 등의 미디어를 포함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지원하는 우리사회의 빽그라운드가 얼마나 강고한지, 이에 비해 진보, 민주세력의 역량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보수세력과 무슨 일이 있든지 30%를 넘나드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해주는 그들의 맹목적, 열혈 지지자들과의 관계는 단순한 지지, 연대, 계약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혼인관계, 혈연관계에 오히려 더 가깝다. 한두번 속고 속인다 해도 대수가 아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더라도 따끔하게 매를 들어 혼내킬지언정 버릴 수 없다. 이혼하거나 연을 끊지 않는 한 잘났든 못났든, 바르든 그르든 내 식구! 내 자식! 품에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신문 중에서 가장 열독률, 충성도가 높다는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조선일보>란 학습지이자, 삐라이자, 연서이자, 바이블이다. 여야를 떠난 심판자, 할 말은 하는 신문, 명품신문, <대조선일보>다. 독자들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 어렴풋한 신념을 옹호, 위무, 강화시켜줌으로서 카타르시스와 오르가즘까지 제공해주는 품위있는 정신적 아편이다. 그들의 프레임 메이킹, 의제 설정력 즉 여론 장악력, 선전술은 시민의 눈에 콩깍지를 씌우고 집단최면을 일으키고 사슴을 말로 만들 수 있을 정도(指鹿爲馬)로 막강한 것이었다.



                   이렇게 멋있고 천진난만하신 우리의 MB님, 이명박 대통령을 그 누가 독재자라 비방하고 모함하는가!
                 속아도 속아도 또 속는 오묘한 메커니즘 : 모르고 속고 알고도 속고 결국엔 오기로라도 속는다 속아준다.
    '비지'(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무지'(무조건 지지), 흔해빠진 '지지'가 아니라 지고지순한 '사랑'-사랑에 빠지면 약도 없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지지자 중 이명박 후보가 BBK와 관련있더라도 계속 지지하겠다는 응답률이 무려 72%였다.
                                                         슬프고,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노무현 대통령은? 멋지지만 왠지 얄미워...

                       이렇게 멋있고 푸근하신 우리의 '현', 노무현 대통령을 그 누가 노구리라 음해하고 조롱하는가!
                              흔해빠진 '반대'가 아니라 지고지순한 '증오'-증오에 빠져도 약이 없긴 마찬가지다.
                                                         슬프고,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이명박류, 부시류들은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처럼 모든 것을 승부로 보고 인생은 끝없는 투쟁의 연속으로 본다.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남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해안선, 완충지대 없이 끝없는 전진과 후퇴만이 있는 전선으로 보는 호전적 인생관이다. 준수하거나 때로는 어설프고 심지어 모자란 듯하여 오히려 친근한 인상이지만 모두 얼굴은 두껍고 심장은 시커먼 후흑학(厚黑學)의 대가들이다. 한 번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 있어서 후퇴를 모르는 전진만을 고집한다. 대화, 타협, 통합과는 친하지 않고 상생, 양보에는 인색하며 사과와 반성마저 마지못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처세술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들은 배가 고프다. 제한적인 양보로는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제한적인 승리에 그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욕망하고 호시탐탐(국민학교 반공글짓기 때 자주 쓰던 관용구!) 도발한다. 적당히 해쳐먹어도 좋으니, 약간 부패해도 눈 감아 줄테니 능력 좀 발휘해서 내 곳간 좀 채워달라? 천만의 말씀이다! '적당히 해쳐먹고 약간 부패한 것' 자체가 어패가 있거니와 애당초 적당히와 약간이 불가능한 종자들이다. 그들의 엄청난 밥통과 가공할 소화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우리의 순진함을 안타까이 여기고만 있기엔 우리의 오판의 후과가 너무 크다. 우리의 무지함을 탓하고만 있기엔 사태가 마냥 한가하지 않다.

    그들은 그 왕성한 식욕이 다 채워져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된다 한들 나눌 생각은 않고 뒷마당 제 곳간부터 채운다. 제 곳간이 다 채워져 흘러넘친다 한들 폼나게 자선과 시혜를 베풀며 푼돈을 쓸지언정 공공과 국가의 이름으로 목돈을 부담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헌금, 구제비에 인색하고 세금, 공과금을 증오한다. 복지를 요구하는 정당한 목소리를 양심없는 거지떼의 무임승차, 무전취식으로 여기며 혐오한다. 자신들의 치부(致富)는 능력이요 사유재산권은 신성불가침한 헌법이다. 서민, 빈민들의 가난은 게으르고 무능력한 자업자득이요 분배와 복지를 요구하는 것은 날로 먹으려는 도둑놈 심보, 주인 것을 뺏으려는 아랫것들의 반란이다.
    그런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 이제 눈치 볼 필요없이 그들이 본래 갖고 있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만 하면 된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호랑이에게 맡긴 것이다. 학정맹어호(虐政猛於虎)다. 도둑이 아니라 강도를 맞았다. 된통 당하고 있고 그 끝이 어딘지 아직도 알 수 없다. 맹수에게 절제와 겸양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고 나무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이 난센스하고 부질없는 일이다. 나무밑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길 기다리거나 토끼가 스스로 나무로 돌진해 머릴 박고 떡실신(x.x)하기를 기다리는 것(守株待兎)과 같이 게으르고 어리석은 일이다.

    금권(경제), 언권(언론)이야 원래 저들 것이고 정권(정치)을 장악한 후 학계, 시민사회, 문화계는 물론 결국엔 연예계까지 줄 세우려 하고 있다. 사장부터 수위까지 온통 자기네 사람으로 채우려 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법과 원칙, 최소한의 물리적 절차까지도 중요하지 않다. 정녕 야만의 시대, 불운한 시절로 돌아가려는가. 역사의 역류가 분명하다. 이제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LP 음반 B면 건전가요 의무수록 등이 먼 옛날의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꽃동네 새동네-정훈희. 1971년작. 건전가요의 표상으로 불리는 불후의 명작이자 내 앨범속에 있는 유일한 건전가요.

           궁정동 안가에서 주지육림에 희롱소리 풍악소리 드높고, 남산에서 고문의 피빛 비명소리가 지하실을 진동시켜도
                   ‘웃음이 피어나는 새동네 꽃동네, 행복이 번져가는 꽃동네 새동네’는 얼마나 건전하고 아름다웠던가!



    털어서 먼지나지 않는 사람 없다고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꼬투리 잡을 건 많다. 마약류 등 표적수사, 고액출연료, 심지어 오래되어 식상하다, 시청률이 저조하다고 해서 퇴출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옛날보다 탄압과 숙청이 교묘하고 집요해졌다. 더럽고 치사해졌다. 징계, 소송, 배상, 겁박, 퇴출로 돈줄을 죄고 밥통을 뺏고 있다. 진보, 보수, 좌파, 우파를 떠나 밥을 먹어야 하는 생활인으로서 두렵고 움추려든다. 밥 때문에 침묵해야 하다니! 비루하고 비참해진다. 자기안의 일상으로 도피하여 체념하고 포기한다. 점점 무감각해지고 어느새 스스로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지능적 방법, 가장 치사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박정희씨, 전두환씨의 탄압은 무식했지만 오히려 귀엽고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예술은 반복을 용인하지 않지만 역사는 반복하는 악취미가 있다”는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같은 듯 다른 듯한 데자부, 독재의 변주, 파시즘 X.... 본질은 같으면서도 수법은 더 발전했다고나 할까.

    ‘새벽빛이 밝았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더 이상 이런 훈육적이면서도 순결한, 세련되지 못한 선전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욕망과 쾌락, 감각만을 자극하는 3S(Sex, Screen, Sports) 우민화 정책과 보여주기식 사탕발림 포퓰리즘 홍보정책이 선호되면서 퇴폐, 향락은 살아남고 불순, 불온한 것만이 퇴출되고 있다. 쇼프로, 핫팬츠, 베드신은 범람해도 토론프로, 검정넥타이, 시사정치코미디는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 볼까 봐 두려운 낯 뜨거운 장면과 불륜이 판치는 드라마가 시청률 상위를 달리는 한 편 조두순 사건에 죽일 놈 살릴 놈 입에 거품을 문다. 하지만 정작 장자연 사건은 조용히 묻히고 잊혀지고 있다. 볼품없는 중년 남성은 어리고 여린 아동을 유린하고 막강한 언론 권력자는 쭉쭉빵빵 여성연예인을 유린한다. 본질은 같다. 각자 갖고 있는 알량한 혹은 가공할 힘과 돈과 권력이 자행하는 일방적 폭력이다. 강자에 의한 약자 유린이다. 대중은 현상만을 보며 즉자적으로 반응할 뿐 본질을 분석하고 통찰할 시간과 실력이 부족하다.


(Dante once said that)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a period of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 (단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고 말했다.) - J. F. Kennedy, 1963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 - 김대중, 2009

 

    천박한 것들은 가라. 쿨한 척 비겁한 것들도 가라. 공정한 척 흐리멍텅한 것들도 가라.

    어렵고 고상한 게, 뭔가 겁나 멋져보이지 않은가! 아니면 선택을 강요하는 극단적 흑백논리, 정치적 독선으로 보이는가?

    교활하고 수완 좋은 정치꾼들에 의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문학적 미사여구에 그칠 수도, 사고를 마비시켜 선동하는 주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중간지대, 완충지대, 회색지대가 점점 좁아지고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균형의 추가 확연하게 기울어진 위기의 시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위기 시엔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고 그 절체절명의 시기에 그 인간의 진면목이 비로소 분명히 드러나는 법이다. 점점 선택을 강요받는 위기의 시대이다. 단순히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정치적 선택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이것은 좌우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냐 독재냐,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다. 이념보다 인간(성)의 문제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아직도 내 생각은 저쪽과도 다르고 이쪽과도 같지 않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극히 둔감하거나 애써 본질을 외면하려는 비겁한 사람일 것이다.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공자왈 맹자왈 담탱이 옆구리 터지는 소리냐며 나와는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는 먼 나라 남의 일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는 생각보다 훨씬 가깝고 생각보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당신의 일자리와 임금은 물론이고 쓰레기봉투 값, 뒷 공터 공영주차장의 유지여부부터 우리 자녀들의 여가시간과 점심메뉴의 반찬까지 결정한다. 결코 먼 남의 일이 아니다.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보행위반자 단속

                  길거리에서 잘리고 갇히고 술자리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세상.

         이 정도는 당해봐야 ‘아~~ 장발 때문에 춥지 않고 미니스커트 때문에 덥지 않고 무단횡단하는 재미가 쏠쏠했었구나.
                                 민주주의, 인권, 정치란 게 중요한 거로구나’ 할끄야 아마.(개콘 허경환 버전)



    아직은 체감되지 않더라도 이명박 정권의 실정, 학정은 우리 삶의 곳곳에 곧 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일반시민이 체감하기엔 좀 거리가 있다. 남북문제는 더 멀다. 일반시민 중에 한 번이라도 촛불을 들어본 자, 머리띠 두르고 주먹을 들어본 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한 번도 투표를 하지 않은 정치혐오자, 정치무관심자도 상당할 것이다. 관심은커녕 벌레보듯 눈살부터 찌푸리고, 집회나 데모짓도 먹고 살만 하니까 하는 거라고 욕만 안하면 다행이다. 고공크레인에서 몇날몇일을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항의해도, 용산에서 뜨거운 화염에 6명이 불타죽어도 모두가 먹고 살만 하니까 하는 거다.
    아직도 박정희씨를 향수하며 빵과 안온한 일상을 위해선 민주주의, 인권, 정치적 자유 같은 것은 기꺼이 헌납하려 들고, 오히려 거추장스런 방해물 정도로 여기는 이가 여전히 많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눈썹이 잘리고 치마속이 들춰진다 해도 나만 아니면, 나만 조심하면 그만이다. 아직도 옆에서 누가 죽어나가든 나만 배부르고 등따스우면 그만이다.

    인권을 주고 빵을 사고 싶은가. 인권을 저당잡히고 빵을 빌리고 싶은가. 그도 아니면 인권을 떠맡기고 빵을 구걸이라도 하고 싶은가. 당신이 생각하는 인권의 가격은 얼마인가. 인권과 빵은 서로 거래될 수 없다. 서고 대등하고 합리적으로 거래될 수 없다. 거래되더라도 인권은 즉시결재, 빵은 기약없는 약속어음, 인권은 똥값, 빵은 금값이다. 인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어치가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어치가... 없다! 코웃음을 치며 문전박대한다.
    자본, 빵이 갑이라면 인간, 인권은 을도 병도 아닌 정 정도에 불과하다. 인간의 존엄성, 천부인권, 민주주의 따위는 추상적인 먼 얘기일 뿐이고 일상의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인권, 민주주의가 희생, 증발되고 있다. 인간이 소외되고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 용산에서와 같이 돈이 인간을 잡아먹는 세상, 권력이 시민을 유린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공짜는 없다. 빵과 인권은 오직 돈으로 사거나 권력으로 보증, 확보, 쟁취할 수 있을 뿐이다.
    어음보단 현찰, 현찰보단 땅, 금, 석유같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을 믿고 숭상하는 물신주의자인 이코노믹 비스트(Economic Beast), 시장의 강자들에게 시민, 약자의 인권이란 쓸모도 없고 값어치도 없는, 얼토당토않은 높은 명목금액만 인쇄된 휴지조각일 뿐이다. '민주주의, 인권이 밥 멕여주냐'는 생각이 뼈속까지 박혀있다. 이 땅의 수구기득권 세력들이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숭배하는 박정희씨로부터 물려받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간직하고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써 먹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오직 밥이고, 오직 돈이다. 박정희씨의 후예들, 꼬마 박정희들, 출세를 위해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 인권은 물론 민족과 이념의 경계도 넘나들었던 박정희씨의 클론들이다. 그들의 이념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다. 좌파나 우파, 진보나 보수도 아니다. 그들의 종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가 아니다. 그들에겐 조국마저도 없다. 모든 것은 '밥'의 하위개념, '밥'을 위해 차용된 수단일 뿐이다. 힘 센 이는 축재를 위해, 힘 없고 볼품 없는 이는 여기저기 집회에 쫓아다니며 생계를 위해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축재형 보수는 이념이 아니다. 더구나 생계형 보수는 단지 호구지책일 뿐이다. 그들의 이념과 종교는 '밥'이다.
    '쌀밥에 고깃국 먹으며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에서 '큰 집에 큰 차 굴리며 나부터 잘 먹고 잘 살고보자'로 박정희씨의 유산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더욱 강해지고 깊어지고 넓어졌다. 결국 밥을 위해선 다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비약을 거쳐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괴변에 이르게 된다.
    세속적 물신주의자인 이들은 십중팔구 단아한 백자항아리나 소박한 분청사기보다 화려한 상감청자를 선호할 것이요, 지조와 절개의 세한도나 깨달음과 자기승화의 연꽃보단 불로장생의 십장생도나 부귀영화의 모란꽃을 더 좋아할 것이다. 우리 속의 돼지에게 던져진 지필묵, 천상의 기린(麒麟)에게 던져진 돼지족발이 서로에게 별 소용이 없듯이 철학과 가치관뿐 아니라 심미안과 취향, 입맛마저 다르니 쌍방을 모두 만족시킬만한 거래가 성사될 리 없다. 이들을 납득,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돈과 힘(권력) 뿐이다.



                                                 고졸한 세한도(歲寒圖)-추사 김정희 작, 국보 제180 호.
                                                                뭐야 이거? 값이나 나가려나!
                                                        세한도에 얽힌 더 자세한 이야기는 요기




                                                         호화스런 십장생도(十長生圖)-작자 미상.
                                                                     음~ 조아! 아~주 조아!


    돈이 없는 시민대중은 권력이다. 금권이 없는 시민대중이 빵, 생존권을 포함한 경제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수단은 투표를 통한 정권장악, 시민권력의 확립뿐이다. 입법, 사법, 행정 등의 공적 권력을 장악함으로서 강자들의 반칙과 독점, 일방적인 폭력과 폭주를 막고 권력이 시민대중을 위해 복무토록 하는 것. 민주주의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이상,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한 권력만이 민주주의, 인권뿐만이 아니라 빵까지 보장할 것이다. 확연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서민경제마저 위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인권은 물론이요 이제 허장성세식 홍보정책으로 앞으로는 헛된 꿈, 거짓 평화만을 주며 뒤로는 우리의 빵마저 빼앗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절대 시민권력, 서민권력이 아니다.

    사람이란 게 막상 자신의 눈앞에 닥쳐야만 실감하고 깨닫는 존재이다. 전쟁보다 무섭다는 경기침체, 국가경제, 서민경제의 파탄이 닥쳐야만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 느낄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하지만 4대강 등, 우리의 돈(세금)을 엄한 곳에 꼬라박으며 삽질에 정신없이 나라살림을 거덜내려고 하고 있으니, 이미 거덜내고 있으니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정치적 감수성, 촉수가 발달된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나에게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특히 민감하다. 대한민국 꼴이 우스워졌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부끄러워졌다. 요즘은 무력감과 함께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타의에 의해 달리는 기차를 향해 짖어대는 개 혹은 기억력과 지력이 모자란 우스운 원숭이가 된 느낌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국민을 반견반인(半犬半人), 반원반인(半猿半人)으로 만들고 있다. 국민 보기를 금치산자, 바보천치로 보고 있다. 대운하 하겠다. 우~. 4대강 살리겠다. 와~. 행정중심복합도시 백지화하겠다. 우~. 과학교육비즈니스벨트 더 크게 지어주겠다. 와~. 종합부동산세 없애겠다. 우~. 유류환급금 지급하겠다. 와~. 무시당하고 놀림감이 된 느낌. 결코 유쾌하지 않다.

    '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 책임이지만 두 번, 세 번 속으면 속는 사람 책임이다.) 서양 속담이다. 위정자가 함부로 깔보거나 갖고 놀지 못하도록, 시민을 섬기고 두려워하도록 시민들이 좀 더 똑똑해져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 '아이고 아버님. 우리 어머님' 하며 히죽히죽 살갑게 다가 와 얼렁뚱땅 야바위짓 하려 하면 '내가 왜 당신 애미여? 난 유권자. 당신은 정치인. 우리는 남이여!' 하며 귓방망이를 후려갈겨야 한다.
    원숭이 취급받지 않으려면 원숭이짓 그만둬야 한다.





                                                     조삼모사 : 비굴한 원숭이-굳이 속일 필요도 없다.
                                 만화가 고병규씨가 중국고사 조삼모사(朝三暮四)를 패러디하여 화제가 된 만화.




                                               조삼모사1 : 바보 원숭이-부지런히 속이고 부지런히 속는다.
                                                       Q1 : 두 장면에서 서로 다른 부분을 찾아보시오.
                                                                        난이도 : ★★☆☆☆





                                          조삼모사2 : 돌연변이 원숭이?-원숭이가 될 것인가. 인간이 될 것인가.
                                         Q2 : 원숭인지 인간인지, 각각의 특징들을 들어 실증적으로 논술하시오.
                                                                           난이도 : ★★★★★
                                            (ex : 도토리는 원숭이들의 주식이나 싸이는 인간만이 할 수 있음.)
                                                                            글그림 : 무적거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나. 김대중 대통령은 나쁜 신문 보지 말고 촛불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촛불을 들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글을 쓰고 그도 아니면 벽보고 소리라도 치라고 했다. 반드시 집회에 참석하고 단체와 정당에 가입하고 공직에 출마할 필요는 없다. 옳은 여론을 형성해야 하고 결국은 표를 통한 심판으로 이어져야 한다. 투표용지는 신성하고 값비싼 것이다. 인류는 수 천년 동안 엄청난 피와 수 많은 목숨을 댓가로 치루고서야 비로서 그 한 장의 용지를 얻을 수 있었다.
    투표를 해야 한다. 하더라도 목숨 걸고 무식하게 해야한다. 영화 <넘버3>에 나오는 송강호처럼. 아니 불, 죽을 사, 작대기 하나에 X알 두쪽(olo) 불사파처럼. 간절한 소망을 지니고 깊게 생각하되 일단 판단이 서면 개작두든, 용작두든 뒤돌아보지 말고 인정사정없이, 추상(秋霜)같이 심판을 해야한다. 저쪽이 목숨 걸고 속이고 등쳐먹으려 하는데 이쪽은 노력도 성의도 없이 공자왈 맹자왈 고고한 척, 손에 물도 안 묻히고 날로 먹으려 해선 안 된다. 어떻게 되겠지...누군가 하겠지...설마 그럴리야 없겠지...해서는 안 된다. 저쪽이 목숨을 걸면 응당 이쪽도 목숨을 걸고 심판하려는 각오로 대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치고 예의다. 

    너? 정치인이야. 나! 시민이야. ‘헤이~ 정치인? 미스터 정치인?’하며 뚜벅뚜벅 다가가는 거야. ‘어어어어~ 뭐,뭐야 이거?’ 당황하게 돼 있어. 피하게 돼 있어. 그러면........탁! 하고 잡는 거야. 그리곤 열나게 (표를) 찍는 거야. 투표용지를 뚫어버릴 듯이. 이렇게! 이렇게! 무릎 꿇을 때까지. 시민에게 봉사할 때까지. ‘주인님 잘못했습니다’하고 눈물 흘리며 싹싹 빌 때까지. 정치란 게 뭐 하나 떨어지는 것도 없이 고되고 힘들기만 해서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날 때까지 신나게 굴리는 거야. 투표하지 않는 것들은 배신이야! 배.배.배......배배..배.배신! 잠들어 있는 시민에겐 햇빛은 결코 비추지 않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둥이 치나 투표를 하는 거야. 무조건! 무대뽀!.......................

    흐으으음... 무대뽀 (투표)정신. 지금 우리에겐 이것이 필요하다.


    단테를 보면 예수 한참 이전에 태어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갓 태어나 미처 하나님과 예수를 알지 못하고 죽은 아기들의 영혼들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인 연옥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 무지해서 비겁해서 혹은 흐리멍텅해서 선과 악 사이에서 어버버버 하다가 올바른 결정을 못 내리고 방관한 사람들은 지옥도 천국도 연옥도 아닌 그저 지옥으로 가는 강가 앞에서 카론(charon)이 젓는 배에 타지도 못한 채 똥파리떼에 둘러싸여 여전히 에베베베 하고 있다.

    케네디의 단테인용은 분명 강조를 위해 각색한 것, 왜곡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카론에 의해 거부되어 심지어(!) 지옥으로라도 들어갈 수 없는 처량하고 비참한 신세인 것이다. 케네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교훈은 분명하고 유용하며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비교적 충실하게 단테를 각색, 번역한다면 간지는 덜하지만 다음과 같을 것이다.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은 지옥도 천국도 아닌 저승의 가장 비루하고 더럽고 비참한 곳에서 영원토록 쓸쓸이 서성거릴 것이다.”

    (물론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악당, 사기꾼, 고리대금업자 그리고 이득을 쫓아 끊임없이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했던 기회주의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을 것이다.)

    교활한 사기꾼은 지옥의 가장 뜨거운 유황불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받겠지만 몽매한 비겁자들은 지옥의 강 건너편에서 안식 없이 영원히 떠돌 것이다.


    알면서 행하는 것도 죄이지만 모르고서 범하는 것,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도 대략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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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Q2  내 맘대로 해답

Q1. 다른 부분


Q2. 원숭이인지 인간인지 논증하시오.

    [서론]
    황당한 만화내용에 대해 논증한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지만 나누워 볼라치면
    원숭이로 보이는 특징 : 도토리를 주식으로 함. 외견상 누가 봐도 인간보다 원숭이쪽에 훨씬 가까움.
    인간으로 보이는 특징 : 싸이를 함. 말을 함(Q1의 원숭이들도 사람?). 스스로 원숭이임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함.

    [본론]
    원숭이의 특징, 인간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 결정적으로 마지막 멘트는 적어도 자신들은 원숭이가 아니라는 강력한 암시를 주고 있음. 비록 원숭이더라도 Q1의 원숭이보다는 훨씬 진화한 종임은 분명함.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2% 부족함. 오랑우탄이나 침팬지가 아님은 증명치 못함. 부정의 언급은 있어도 긍정의 선언, 실존의 선언은 없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인간이라는 선언임. 단, 그 선언은 철저한 각성위에 실천을 담보로 할 때에만 의미있을 것임. 무턱대고 인간이라고 우긴대서야 인정 못함. 원숭이 거죽을 쓰고 있더라도 인간임을 자각하고 있다면 인간이고, 인간의 거죽을 쓰고 있더라도 스스로 자각치 못하면 원숭이와 별반 다를 바 없음.
    정리하면 다음의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로 추측됨.
    1. 원숭이 임에도 싸이도 하며 말까지 걸은, 지능이 고도로 발달하고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신종(!) 원숭이들이 자기자신까지 부정하며 주인에게 대들고 있음.
    2. 무위도식을 위해 원숭이 거죽을 쓰고(실지로 어색해 뵈는 게 원숭이 거죽같기도 하다) 입맛까지 바꾸며 저공 밑으로 기어들어간 신종(!) 인간들이 불만과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반기를 들고 있음.

    [결론]
    1의 경우라면 원숭이의 독립선언, 해방선언을 뜻하는 전 지구적인 역사적, 생물학적 혁명을 의미. '원숭이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의 출현!(원숭이의 승리! Monkey의 진화!)
    2의 경우라면 인간의 '비굴한 나약함', '무지한 탐욕'이 빚어낸 인류학적 비극. '인간원숭이'라는 새로운 종의 출현!(인간의 패배! Human의 퇴화!-뽑아놓고 우롱당하는 현 상황?!)
    두 경우 다 황당무계해서 결론을 내리기 힘드나 굳이 선택하자면 암만해도 두 번째 경우가 더 말이 된다 싶음.(원숭이의 승리라기보다는 인간의 패배, 저공의 승리라기보다는 '인간원숭이'들의 패배, 한나라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유권자의 패배에 더 방점!-적어도 현재까지는.)

※ 남는 의문점 : 다양한 표정과 동작, 특히 살벌한 눈빛과 팔짱을 끼고 침을 찍 뱉는 등의 섬세하고도 디테일한 동작이 원숭이에게도 가능한지는, 가능해 질런지는 의문.

Posted by 어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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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의합니다. 저도 모르게 조금씩 길들여지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2009.10.17 14: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죠. 관리되지 않기. 길들여지지 않기입니다.
      새장속의 새, 우리속의 호랑이는 창공을 날고 초원을 달리던 그 새와 호랑이가 아니죠. ^^

      2009.10.17 23:51 신고 [ ADDR : EDIT/ DEL ]
  2. 하하하하! 저 만화 넘 웃긴 걸요! ^_^ㅋ

    2009.10.20 21: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말이 필요없죠.
      한 장의 사진, 만화, 그림이 악용될 경우 과장, 왜곡의 위험성은 있지만 잘만하면, 정제되고 선한 의도만 있으면 본질을 통찰하는데 백마디 말과 천마디 글보다 유용할 때가 많죠.
      순간이 영원을 담아내고 부분이 전체를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2009.10.21 22:58 신고 [ ADDR : EDIT/ DEL ]
  3. 결전의 그날이 오고 있습니다.
    투표의 그날!

    2010.02.13 22: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나 자신도 죄인이 되었소.

    2018.06.16 21: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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