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때론 먹의 향내가 나는 글과 음악 그리고 사람

잡설, 상념, 기타등등

남자 여자 인간, 남성성 여성성 인간성 - 나경원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에 부쳐(재발행)

어멍 2011. 10. 12. 21:36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정통 보수, 정통 우익의 적자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공군 소령으로 전역하여 사학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있는 부친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본인 역시 고등학교 시절 전교 1,2등을 다투는 수재였으며 서울 대학교 법대를 나와 판사를 하다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픽업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출신성분도 그렇고, 케리어나 스펙도 그렇고, 어엿한 보수의 정통코스를 밟아온 엘리트다. 보수의 아이콘인 오세훈 전 시장 못지않은 보수의 표준모델이다. 아이콘이 꼬깔꼰이 되었듯이 늘씬한 모델이 주책바가지 푼수가 될런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출신성분만큼은 겉보기엔 화려하고 흠잡을 데 없다.


    “외모가 굉장히 중요해” -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인사차 들린 나 후보에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을 예상하며 한 조언이다. 나는 박원순 후보의 당선을 예상한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현대미디어정치에서 외모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나 의원의 비디오와 오디오는 다른 정치인에 비해 경쟁력이 월등히 높다.

    멋지고 잘생긴 외모는 정치인에게 큰 자산이다. 박근혜 의원 역시 이 점에서 쳐지지 않고, 오세훈 전 시장 역시 그러했는데 이것은 이미지를 중시하는 보수우익정치의 중요 전략이다. 앞으로는 홍정욱,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이 조명을 받지 않을까 싶다.

    우리 각하야... 뭐 워낙 미꾸라지 같은 임기응변과 담대한 허세, 치밀한 꼼수의 달인이시고 조중동의 분장술도 워낙 뛰어나니... 외모야 이런 것들로 가볍게 극복한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뭔가 한 가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출난 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사한 한나라당 서울시장 나경원 후보



    나 의원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봐선 미인이다. 하지만 나에겐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이미지다. 가공되고 훈육된 범생이, 기존 질서에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바른생활인의 이미지다. 여자 오세훈, 훈육된 전여옥이랄까?! 외모하며, 말투하며, 몸짓하며, 성형은 안 했겠지만 왠지 성형미인인 뜻한 인상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나 후보를 탤런트 정치인이라고 평했던데, 조근조근 뛰어난 언변 역시 가식이 묻어나는 훈련되고 연출된 느낌이다. 그녀에겐 부당한 나만의 편견인가?

    그녀의 이제까지의 정치행위와 이력을 살펴보면 대의보단 대세를 따랐던 영혼 없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이 짙다. 외모와 스타일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내면에서 풍기는 이미지의 부조화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 나오는 것이리라. 그 부조화의 정도가 심해서 거북함을 넘어 은근히 불쾌하고 서글플 지경이다.

    그 정치이력이란 것이 별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서 굳이 나열할 필요는 없다.(자세한 정보는 위키백과 참조) 아래는 2년여 전인 2009/06/17에 올렸던 포스팅인데 마침 나경원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한 중요 정치인으로 성장하였고, 그녀 경쟁력의 대부분이 성공한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세련되면서도 아름다운 여성의 외모와 이미지인지라 몇 가지 덧붙여 재발행한다.


2011/10/12 재발행


∽∽∽∽∽∽∽∽∽∽∽∽∽∽∽∽∽∽∽∽∽∽∽∽∽∽∽∽∽∽∽∽∽∽∽∽∽∽∽∽∽∽∽∽∽∽∽∽∽∽



    사회가 너무 남성화 되었다. 소통과 나눔, 베품과 돌봄은 없고 거칠고 삭막하고 일방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성성이다. 단테와 괴테가 말한 그 여성성! 실망과 두려움에 모두가 예수를 버리고 떠났을 때 끝까지 남아 예수의 마지막을 지킨 이들도 여인들 아니었던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 - 괴테 <파우스트>


    그 여성성은 당연히 단순한 외모의 아름다움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 깊고 우아한 정신적 내면의 숭고함, 아름다움을 얘기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여성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소비와 꼴림을 유발하는 섹시한 상품으로서 더 많이 기능하고 있다. 치마를 둘렀다고, 슴가가 나왔다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 '여성성'을 표시하진 않는다. 그건 단지 생물학적 '여성'을 표시할 뿐이다.

    몇몇 여성 정치인, 여성 리더들이 있다. 이들은 과연 진정한 여성성을 발휘하고 있나. 여성성은 없이 오직 여성만을 어필하고 있지 않은가. 남성사회의 예쁜 액서서리, 흉악한 본질을 예쁘게 포장해 내뱉는 우아한 스피커로만 기능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성, 남성보다 여성성, 남성성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연히 인간성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예의와 애정. 남성이고 여성이고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두 여성 :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된장녀, 신상녀, 거리낌없이 성형하고 거리낌없이 그것을 떠벌리는 가벼운 문화가 대세다. 냉소를 쿨하다고 여기며 초연함과 구별치 못하고, 천박함을 솔직하다고 여기며 진솔함과 구별치 못하고, 비루한 부러움을 겸손이라 여기며 존경과 구별치 못한다. TV, 연예, 광고 등 빠르고 가벼운 대량소비문화, 감성문화가 지배하는 10대 20대에서 남성 역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20대의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이건희라는 어느 설문조사의 결과는 이것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인문, 역사, 철학......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의 20대의 머리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깡통이다. 거기에는 오직 영어단어, 수학공식 그리고 돈과 소비에 대한 욕망만이 들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다 기성세대, 부모세대 탓 아니겠는가. 그렇게 키운 우리 탓이다. 쓸데없는 것은 보지도, 읽지도, 관심갖지도 말고 자기 앞가림만 하라고 다그치고, 높은 점수를 받아오면 돈과 소비로 보상해주는 것이 부모사랑이라고 여긴다. 20대보다 아직 여기에 덜 노출되고 덜 결정된 10대에게 오히려 더 기대와 희망을 걸 만 하다.


    누구든 확 깨는 반전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섹시한 팔등신, 아름다운 얼굴, 붉고 도톰한 입술에서 텅! 텅! 깡통소리가 새어나온다거나 걸쭉한 육두문자, 쌍소리가 새어나올 때. 저열하고 천박한 생각의 밑바닥이 드러날 때는 충격과 당혹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입술에서 교묘교활한 말, 품위있는 언어 고상한 표현, 듣기엔 좋고 얌전하지만 악을 변호하고 악에 봉사하는 독이 든 괴변을 들을 때면 혀라는 붉은 검(劍)이 추는 칼춤을 보는 것 같아 섬듯하기도 하고 혐오를 넘어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여성 스스로 숭고한 여성성을 모독하고 훼손하는 슬픈 일이다. 이에 비하면 깡통소리, 쌍소리는 차라리 소박한 애교에 불과하다.


    머리가 텅텅 비어서는 안 된다. 깡통소리가 나선 안 된다.

    머리에 똥만 차서는 안 된다.

    머리를 악에 봉사하는 지식, 독극물로 채워서는 안 된다. 지식과 논리로 교묘히 포장된 악은 독약의 겉을 설탕으로 입힌 당의정(糖衣錠)처럼 똥보다 보기에는 우아하지만 더 해롭고 치명적이다.

    많이 배워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빈 소리가 나지 않도록 머릿속이 꽉 차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유식이 밖으로 철철 넘치거나 줄줄 세게 해서는 안 되고 절제되고 겸손해야 한다.

    옳게 똑바로 배워야 한다. 기껏 배운 지식이 잘못 쓰이거나 흉기가 되지 않도록 옳고 정의로운 가치관을 반드시 함께 습득해야 한다.

    (단순)지식, 가치관과 더불어 한 가지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행복을 찾고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능력, 감수성의 함양이다. 자녀들, 아이들의 삶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인데도 어느 학교, 어느 어른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척도인 자기객관화다. 쉽진 않지만 거리를 두고 타인을 바라보듯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존귀하고 성숙한 완벽한 개체가 되어야 한다. 주위의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빛나는, 자기만의 고유하고 신비한 빛깔을 발산하는 하나의 별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 다영, 종서는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PS1 : 내 딸 아들, 다영이, 종서를 염두에 두고 썼다.


    다영이는 외모가 아름답고 예쁘게 컸으면 싶다. 숭고한 여성성,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겸비한 여성이 됐으면 싶고 많이 배우고 똑똑했으면 싶다. 종서도 마찬가지다. 씩씩하고, 늠름하고, 잘 생기고, 다부지고, 키도 크고, 힘도 세고......길가다 우연히 행인과 부딪혀 상대방이 나가떨어지더라도 먼저 사과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겸손하고 따뜻하고 넓은 가슴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것저것 모두 다 잘났으면 좋겠다.

    

    많이 배워서 올바른 삶, 정의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심정이 대개 이러할 것이다. 쓰고 보니 내 자신도 미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할, 다영이 종서에겐 부담되는 주문사항이지만 나보다 더 잘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박한(전혀 소박하지 않았나? ㅡ.ㅡ) 심정으로 여기고 다영이 종서가 이해해 주려무나.

PS2 :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변호사.
    1969년생. 서울법대 88학번으로 87 학력고사 전국 여자수석. 서울대 총여학생회 회장 활동.
    가장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면서도 항상 낮은 곳, 약자편에서 인권증진과 사회진보를 위해 힘써 옴.

    '이정희 VS 나경원'만큼이나 '이정희 VS 전여옥'도 대비가 크지만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왠지 다영이 종서가 알고 접하는 것마저 해가 되는 느낌이라.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하드코어랄까. 아직까진 언급하기가 좀 그렇다.
    하지만 피상적으로 접할 땐 전여옥 의원의 비호감도가 더 크지만 속속들이 알면은 나경원 의원의 비호감도나 폐해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러난 흉기보다 감춰진 흉기가 더 위험한 이치이다.


2009/06/17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