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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사람-고 노무현 전 대통령(2)

어멍 2009. 5. 28. 16:16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고졸 대통령.

서민 대통령.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고 지역주의 기반도 없고 가진 거라곤 맨주먹과 신념만이 다였던 정치인.

모두가 대세를 따를 때 홀로 대의를 따랐던 사람.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겐 한 없이 약했던 사람.

거센 폭풍우와 홀로 맞서면서도, 입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파했던 사람.

꺽일 줄 모르는 용기와 강단을 지녔으면서도 연약하고 맑은 영혼을 지녔던 사람.

동서통합과 남북화합을 필생의 업으로 여기고 무모한 싸움에 끝없이 도전했던 사람.

그래서 지지자에겐 바보라는 애칭을, 반대자에겐 바보라는 비아냥을 동시에 들었던 사람.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자녀의 아버지, 손주를 두었던 할아버지.

지극히 평범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사람.

선천적으로 솔직했던 사람.

겉과 속, 무대 앞과 무대 뒤가 한결같았던 사람.

거짓말을 못하고 맘에 없는 말을 할라 치면 머뭇거리며 표가 났던 사람.

권력을 거추장스러워 했고 청와대를 갑갑해했던 사람.

퇴임 후 시골로 낙향하여 자유롭고 소박한 삶을 꿈꾸었던 최초의 대통령.

인터넷에 정통하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며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개척한 IT와 21C식 민주주의의 프런티어.

용기 없는 소시민인 내가 항상 부러워하고 닮고 싶었던 남자. 

혁명가처럼 대찼고 철인처럼 깊었고 시인처럼 순결했으며 결국 지사처럼 꼿꼿이 생을 마감한 사람.

내가 존경했던 사람.

내가 사랑했던 한 남자.

언젠가 꼭 한번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


뱃사람들이 판자 바닥에 팽개쳐 놓으면,

가엾은 이 창공의 왕은 어설프고 부끄러워,

민망스럽게도 크고 흰 날개를

옆구리에 차고 노처럼 질질 끈다.


나래 달린 항해자인 그는 얼마나 어색하고 무력한가!

한때는 그리 아름다웠던 것이, 얼마나 추하고 우스꽝스러운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그의 부리 건드려 역정 돋우고,

어떤 이는 절름대며 훨훨 나돌던 불구자 흉내 낸다.


-보들레르(Baudelaire)의 알바트로스(Albatros) 중에서-

 

한 마리의 사자가 이리떼에게 포위되어 피 흘리며 외로이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양들은 침묵하고 있다.

어떤 양은 귀찮아서, 어떤 양은 두려워서, 어떤 양은 풀을 뜯는 데 정신이 팔려서, 어떤 양은 같은 양이면서 잘난 체 하며 사자의 탈을 쓰고 있다고 속으로 고소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워줌으로서 거짓 왕, 거짓 메시아에 대한 최상의 모욕과 최고의 예우를 다해 준다. 예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진 채 채찍에 피를 흘리며 저잣거리에서 조리돌림하듯 조롱을 당한 후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힌다. 그들은 예수의 고통과 피에서 그도 별 수 없는 인간족속이었음을 확인하고 싶었고 종국에는 살려달라는 애원을 듣고 싶었던 걸 거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1]


    정치가 너무 더럽고, 세상이 너무 어둡다.

    이 땅의 역사가 너무 서럽고, 사람들의 인심이 너무 가볍다.


    정권교체 이후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권의 행태는 익히 알려지고 기록된 바와 같다. 전임대통령과 정권을 예우하는 전통을 만들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역대 대통령들의 그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록물을 생산하고 남겨놓았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기록물 불법 유출이라는 꼬투리를 잡아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것이 여의치 않은 와중에 촛불에 대이고 경제든, 정치든, 남북문제든 어느 하나 나아지는 것 없이 정권과 대통령의 인기가 급전직하하자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이대통령과의 독대에 이은 태광실업의 특별세무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표적수사, 정치보복이 시작된다.

    특별세무조사, ‘특별한’ 세무조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거꾸로 매달아 놓고 탈탈 터는 것이다. 뒤이어 광범위하고 전폭적인 수사가 이어지고 노건평씨와 측근과 정치적 동지들이 줄줄이 구속된다. 죄의 유무와 경중을 떠나 처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최종타켓으로 정해놓고 외곽부터 조여 오는 전형적인 표적수사, 기획수사, 정치보복이었다. 실지로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수사초기에, 아무개 대검 수사기획관은 언론브리핑에서 최종목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임을 공언하지 않았던가.

    논란이 분분한 포괄적 뇌물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정치적 동지와 친구, 아들, 딸, 부인까지 줄줄이 소환조사하며 압박을 가했다. 대통령 소환조사 후에도 구속, 불구속 여부를 차일피일 미루며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언론에 흘리기만 했고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불러오고야 말았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살고자 하는 전임 대통령을 단순히 시기심과 질투, 국면전환용으로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그 자신까지 결국은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조선시대로 치면 삼족을 멸하고 부관참시한 것에 다름 아니다.

    사람을 꼭 칼로 찔러야만 죽이는 것이 아니다. 바짝바짝 말려 죽이고, 들들 볶아 죽이고, 명예를 더럽혀 죽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혀 스스로 죽지 않을 수 없게 하여 죽일 수도 있다. 죽이는 것과 스스로 죽게 만드는 것은 본질에서는 같다. 아니 오히려 더 잔인하다.

    칠레, 볼리비아에서 미국에 의해 자행된 ‘저강도 전쟁’, 군부와 기득권을 포섭, 회유, 조종하여 수행된 ‘더러운 전쟁‘에서 수많은 민주인사들은 고문과 박해를 꿋꿋이 버텨냈지만 남편 앞에서 아내를, 아내 앞에서 남편을 욕보이고, 자식 앞에서 부모를, 부모 앞에서 자식을 고문하는 것에는 백이면 백 모두가 무너졌다...........돌이켜 보면 약자에 대한 마녀사냥, 집단린치, 눈 뜨고 볼수 없었던 잔혹극, 인질극이었다. 정치적 이념, 지지여부를 떠나 금수만도 못한 패륜이다.

    옛말에도 적장을 대하는 데도 예가 있고 선비의 목숨을 뺏을지언정 명예만은 뺏지 말라고 했다. 검찰은 실시간으로 피의사실을 생중계하며 유포시키고 언론은 받아 적고 도배하기에 바빴다. 그 때 그 시간 이명박 대통령은 스촨지진 중국아이를 안아 위로했고 장애인 공연을 보며 눈물 흘렸으며 농촌 모내기 체험을 하며 평소 일정과는 다르게 유독 딴전을 피우며 이미지 쌓기에 바빴다. 너무도 교활하고 비겁하지 않은가!

    

    예수의 죄를 굳이 따지자면 왕을 참칭하고 메시아를 자처하여 민심을 흉흉하게 만든 죄, 곧 정치범이랄 수 있다. 폭력을 수반하지 않은 예수는 로마제국보다 기존의 유대교 기득권 성직자들에게 더 큰 위협이었다. 그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이 내세운 죄목은 포괄적 뇌물죄. 정치보복을 하면서 엮어 넣으려는 죄목 자체가 치졸하고 모욕적이다.

    구체적 이권을 주고받지 않았더라도, 본인이 아닌 측근, 가족이 받았더라도, 알고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덕담 한마디하고 등 한번 두드려주는 것으로 이심전심 뒷배를 봐주었다는 거다. 그것도 일국의 대통령이 받아먹은 액수치고는 미미한, 심지어 쪽팔리는 액수 아닌가.

    노대통령은 항변했다. 구차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며 자신은 몰랐노라고. 검찰과 반대자들은 비판했다. 상식적으로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이 된다. 일반가정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바같 일, 큰 일을 하는 사람치고 집안에 통장이 몇 개인지 속속들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고인을 추모하며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구차하고 죄스럽기까지 하다. 진실이 때론 구차하고 초라하기도 할 수 있나 보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정권의 치졸함에 치가 떨린다. 언젠가 그(이명박 대통령)가 말했었다.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고.


    인간은 먹고 입고 마셔야 할 생물학적 존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든 이명박 대통령이든 여기서 예외일 순 없다. 따라서 생명이 존엄하듯이 밥도 존엄하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존엄한 것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먹고 마시며 쌓아두고 싶어하는 순간 탐욕이 되고 죄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그 탐욕의 노예가 되어 그것을 채우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 초라하고 비루해진다. 밥은 생명을 유지시키고 사랑을 나누는 숭고한 것이기도 하고 치부와 탐욕의 도구이기도 하고 인간을 한 없이 비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수님의 오병이어는 숭고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먹은 오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것에 담긴 숭고한 뜻과 사랑을 알고 먹었을까. 어떤 이는 허기를 채우기 급급했을 것이요, 어떤 이는 풍요와 재화를 영원히 보장해 줄 수 있는 물주, 호구의 강림에 열광했을 것이다.

    내가 분노하는 것은 가장 부패한 자가 가장 청렴한 자를 욕보이고, 가장 숭고한 것을 도구로 가장 치졸한 방법으로 공격한 것에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 노무현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도 강력한 방법일 것이고 그들은 그들이 본래 갖고 있는 능력을 200% 발휘하여 보기 좋게 성공했다.

    평생 동안 생계나 집안경제, 치부에는 신경쓰지 않았던 그다. 나는 몰랐노라고, 집사람이 받았더라도 선의의 후원, 단순한 빚 혹은 생계형 범죄일 뿐이라고...항변하면 항변할수록 더욱 구차하고 초라해지며 허우적댈수록 점점 빠져드는 수렁일 뿐이다.

    재판 이전에 노무현은 이미 자식과 아내를 팔아먹는 졸장부, 잡범, 개털, 파렴치범, 좀도둑, 회갑 선물로 박연차씨로부터 노건평씨 부인을 거쳐 받았다는 1억짜리 고가시계를 허둥지둥 논두렁에 갖다 버린 삐에로가 되었던 거다.

    이렇듯 노무현은 동지와 친구와 가족의 고통과 희생을 지켜보며 발톱이 하나씩 빠지듯, 팔다리가 하나씩 잘리듯 절대고독 속에 홀로 남아 죽음을 선택했다. 강철같은 마음도 한조각 두조각 깨지고 떨어져 나가더니 결국 몸과 뼈마저 산산조각난 채 저 세상으로 떠나가버리고 말았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그는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심약해서? 열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사람만이 있는 공터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연설하고, 탄핵의 위기도 극복했던 그다.

    무책임해서? 후임 대통령에게 부담될까봐 소소한 청와대 정비나 대통령 전용기 같이 돈 들어가는 것을 마쳐놓고 퇴임하려 했던 그다.

    죽음으로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역사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조중동에 복수하기 위해서? 일생 최대의 도박, 최후의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서?

    아니다. 모두 아니다. 그는 단지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죽은 것이다. 죽지 못해서 살고 있었고, 결국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죽은 것이다. 죽음 이외에는 그 자신과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탈출시킬 통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나리아가 탄광에서 죽는 것은 광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쉬지 못해서다. 쉬리가 어항에서 죽는 것은 인간들에게 환경재앙을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막혀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척박한 이 땅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도 깨끗했던 인물, 협소한 우리들의 가슴으로 품기에는 너무 큰 인물이었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소박한 민중의 영웅이 되고 전설이 될 것이다.


[2]


    1969년생. 89학번. 386 막내인 나는 대학때부터 언론에 각별히 관심이 많았다.

    내 또래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놀고 먹고 공부하며 유년시절,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정치를 알고 일제강점기, 친일파, 독립운동, 315, 419, 1212, 518, 유신, 광주의 근현대사와 그 진실을 접하고 공부하게 된다.

    이러면서 박정희씨 사망에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렸던 어린이는 친일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을 미워하고 김대중씨를 존경하고 지지하는 청년으로 자연스레 변모하게 된다.

    89년, 90년 노태우 군사정권 그리고 학생운동권의 끝물에서 데모도 하고 짱돌도 던져보고 했던 나는 투쟁의 전위, 의식화된 투사라기보다 머릿수를 채워주는 군중의 일원이었다. 치기어린 흥분과 흥미를 느끼기도 했던 나는 항상 후위에 서서 여차하면 제일 먼저 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공포를 느껴보지는 못했었다.

    마침 대안언론, 시민주주언론을 표방한 한겨레신문의 출범에 맞추어 내 손으로 번 돈 14만원을 털어 한겨레신문 주식 28주를 공모한 주주가 되기도 했다.

    2002년 노무현 후보를 찍었을 때만 해도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는 참여정부 시절 그의 정책을 알면서 그를 더욱 지지하게 되고, 그의 성품과 언행을 보면서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것 같다. 참여정부 말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습관성 노무현 저주증후군이 유행병처럼 창궐하여 모두가 노무현 욕을 입에 달고 다닐 때, 나는 도리어 그에 대한 상사병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에게 눈길을 준 이후 나의 애정은 줄곧 짙어져만 갈 뿐 옅어진 적이 없었다. 그는 내게 있어 권력자라기 보단 옆집 아저씨같이 어렵지 않은 친구였고 신념과 철학이 비슷한 동지였다. 노무현은 이 땅의 주류를 자처하는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내에서도 철저한 비주류였다. 나의 정치적 성향 역시 구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사이, 현재의 민주당과 진보신당 사이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지금은 없어진 유시민의 개혁당과 가장 근접한, 지금은 딱히 지지할 수 있는 정당이 없는 비주류에 가깝다.

    사람의 취향 뿐 아니라 생각과 신념도 서로 존중되는 방식으로 토론되고 나누고 소통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또한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이 사람 아니겠는가. 짬뽕이냐 짜장이냐 갖고 싸우기도 하는데 가장 민감한 종교나 정치를 섣불리 말하기는, 특히 손위 사람과 나누기는 더욱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가 여기저기서 공격받고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도 속으로 응원만 할 뿐 내가 아는 노무현을 주위에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설명해주진 못했다. 내가 취한 액션이라곤 투표와 탄핵촛불시위에 참여한 것이 다였다.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그를 언젠간 한번 찾아뵈리라 생각하며 일상을 보냈고 검찰수사와 소환을 접하고도 강철같았던 이 사내가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이겨내리라 안심, 방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하나의 인간이었다. 그의 고통, 그의 고독......분하고 원통하기보다 슬프고 불쌍하다.


    돌이켜보면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너무 안이하고 방심했었다.

    정권이 바뀐다고,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뭔 일이야 있겠는가 싶었다. 하지만 “나라가 흥하려면 많은 사람의 긴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나라가 망하려면 한 사람의 하루라도 충분하다” 절대왕권시대 사마천의 사기에 적힌 문구이지만 다시금 되새겨할 교훈이다.

    조중동과 한나라당, 그들의 권력에 굶주린 잃어버린 10년의 허기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나라를 요모냥 요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사람이 죽어나가게 해서는 안 되지 않은가. 그 야만의 세월로 돌아가서는 안 되지 않은가.

    조광조, 이순신, 김구, 장준하, 노무현.

    언제까지 이 서러운 역사, 원통한 죽음을 이어나가려 하는가. 아직까지도 의인의 죽음과 민초들의 피를 요구한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역사여, 민주주의여 답을 해보라!


    모두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가 세워 올린 우상, 욕망의 화신 아닌가. 747, 주가3000, 뉴타운이 뭔가. 욕망에 불을 지르니 탐욕으로 화답했다. 솔직히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며 적당히 해쳐먹어도 좋으니 내 배 좀 배부르게 해달라고 뽑아논 것 아닌가.

    지난 대선 때 내가 정말 놀란 것은 BBK등 이명박 후보의 탈법, 비리 전력이 아니었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듯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내겐 더 큰 충격이었다. 그런 사람, 그런 정권을 어찌 감당하려고...

    BBK, 위장전입, 전과 14범보다 내가 더 주목한 것은 수백억의 자산가이면서도 기만원에 불과한 건강보험료 납부내역이었다. 한가지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때론 하나가 둘을 설명하고 수백수천,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사회가 너무 우경화되었다. 대의는 없고 대세만이 난무하고 모두가 돈맛을 알아버렸다. 모택동을 읽으며 대장정을 얘기하고, 게바라를 읽으며 세계정신을 얘기했던 친구, 항상 투쟁의 전위에 서서 화염병을 던지던 친구는 이제 조중동을 읽으며 아파트 시세, 땅 얘기를 즐겨하는 나보다 더한 속물이 되어버렸다.


    권위주의 타파, 동서화합, 남북화해, 보안법 철폐, 사학법 개정, 과거사 정리, 균형발전과 신행정수도 이전, 종부세 신설과 보유세 강화, 복지예산 증액, 고비처 설치 및 경찰의 수사권 독립, 검찰을 위시한 4대 권력기관의 독립, 평화번영정책과 동북아 균형자론, 자주국방과 전시작전권 환수, 대연정, 권력구조의 개편과 개헌...

    내가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정책들이다. 대연정도 처음부터 찬성이었는데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지역구도 완화 및 소멸만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대담하고도 창조적인 제안이라고 보았다. 그가 물러나더라도 그 만한 값어치가 있는 성취가 아닌가.

    정책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미움을 받을 대통령이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왜 그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을까. 결국 조중동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기득권 강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혀서이다. 며느리가 미우면 뒷꿈치까지 밉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뒷꿈치가 무슨 죄인가. 뒷꿈치가 미운 것은 필경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고 이유 없는 미움은 없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세력은 시기, 질투, 열등감으로 그를 미워했고 그라는 인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미워했다. 그들 입장, 그들의 경험으로는 노무현이란 인물이 정상적(!)인 인물도 아니었고 더욱이 정상적인 정치인은 더더욱 아니었던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그들을 소멸시킬 수도 있는 잠재적 가능성,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위험인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책을 알고 그를 지지했고, 그의 철학을 알고 그를 존경했고, 그의 성품을 알고 그를 사랑했다. 그는 사자이면서도 사자가 아니었고, 양이면서도 양이 아니었고, 대통령이면서도 대통령이 아니었고, 필부이면서도 필부가 아니었다.

    모든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이지만, 모든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은 아니다. 누구는 옆에서 수백, 수천명이 죽어나가도 무덤덤하지만 누구는 이름모를 입새에 이는 바람에도 가슴아파한다. 누구는 10원에도 명예를 팔지만 누구는 수천억에도 명예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놓는다. 노무현은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었다. 내 생애 그 같은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그를 슬퍼하는가. 우리와 같기 때문이다. 그의 슬픔에서 자신의 슬픔을, 그의 설음에서 자신의 설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특히 서민이라면 누구나 한 가지는 갖고 있을 설음. 누구는 돈이 없고, 누구는 빽이 없고, 누구는 학벌이 없어서 이리 치이고 저리 당하고, 때론 억울하고 기막힌 일을 겪고도 달리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가슴속에 한으로 남았던 그 슬픔과 서러움이 그와 공명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주제에 가증스럽게 서민흉내낸다고, 깨끗한 척 한다고 미워했던 노무현,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수조원을 맘대로 주무르고 검찰, 경찰을 개처럼 부린 줄 알았던 노무현이 알고 보니 이런 자신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그를 미워했던 사람까지 슬프고 우울하다. 이 거대한 추모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왜 사람들은 그에게 감동하는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죽음이 한 편의 잘 만든 명품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때론 웃기고 때론 울리고 사람을 흐뭇하게 하기도 하고 분노하게 하기도 하고. 그에게서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동시에 자신이 잊고 살아왔지만 항상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부러워하고 흠모해왔던 경이로운 용기와 도덕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대한 골리앗과 맞닥드린 다윗의 용기였고, 손만 뻗으면 취할 수 있는 지천으로 널린 재화와 미녀들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예수와 부처의 순결과 의지에 버금간다. 고졸출신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평민 주제에 언감생심 국회의원, 장관을 꿈꾸는 것도 불경스런 일이거늘 그는 자신의 이러한 용기, 도덕성, 의지와 탁월한 능력만을 가지고 대통령에까지 오르는 대성공스토리와 감동 대하드라마를 이룬 것이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어떤 이는 차차 알게 되었고, 어떤 이는 죽음에 이르른 지금에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사람이 이제야 그를 알아주지 못한 죄송함에, 그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어떤 이는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고, 어떤 이는 고통에 가슴을 치며 절규하고 있다.


    한 때나마 그 덕분에 흐뭇하고 행복했다. 그의 드라마는 대부분 실패와 좌절, 고난의 연속이었고 결국 비극적 최후로 마감하였지만 돈과 권력을 떠나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그를 따르고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역시 한 때나마 행복했었으리라. 그리고 현실에서는 좌절하였지만 역사는 그를 영원한 승리자로 기록할 것이다. 오직 진실만이 승리하고 순수한 마음만이 다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은 광장에 촛불이 밝혀지고 추모열기에 휩싸였지만 이 드라마가 끝나고 큰 해일이 물러나면 본래의 모습이 다시 드러날 것이고 노무현의 반대자들은 다시 야금야금 반격을 시도할 것이다. 일부 습관적 반대자들만이 '너무 심했나', '이건 아닌데'하며 자신의 행위와 가치관에 대해 일말의 후회, 의혹과 혼란을 느낄 뿐이고 이마저도 일시적이고 감성적일 뿐이다. 전통적 반대자들은 여전히 완고하다. 숨을 몰아쉬며 죽일듯이 린치를 가하다 정작 상대가 죽고 보니 잠시 당황되고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불쌍하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거나 자신이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깨끗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괜히 잘난 척하여 격지 않아도 될 고초를 스스로 자초했다고 여기며 그래서 그 위선(!)이 부패 그 자체보다 더 밉다고 한다. 그리고 이 괴변을 방어하기 위해 항상 무능이니, 아마추어니 고찰없이 끌어다 붙이기 바쁘다. 심지어 마녀사냥식으로 제기됐던 더러운 그 숱한 의혹들을 아직도 사실인 양 떠벌리며 심약한 범죄자의 비겁한 도피로 매도한다. 지금도 어떤 이는 웬 호들갑이냐며 방안에 갇혀 이 분위기를 불편해하고 있고 다시 촛불에 대여 혹여라도 권력을 잃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직도 한나라당이 정당지지율 1위이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차기 대통령 선호도 1위이다. 지금 당장 박정희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누가 되겠는가? 아직까진 박정희다. 한나라당을 극복하려면 박정희라는 아이콘을 극복해야 한다. 썰물이 빠져나가고 밀물이 밀려들 듯 박정희 세대, 조중동 세대가 물러나고 노무현 세대, 인터넷 세대가 밀고 올라옴에 따라 어느 임계점 이상 도달하면 급속히 정치지형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저들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디어법 개정을 통한 조중동의 공중파 진출 시도 등 박정희의 후예들은 자본과 권력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변신하며 부와 권세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미 온갖 방법으로 사람들을 내쫓고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장악했으며 언론과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용산참사 등 사람이 죽어나가기까지 했다. 이제 남은 건 땡전뉴스, 정치공작, 납치, 고문, 암살, 부정선거밖에 없다. 10년 만에 찾은 권력의 달콤함을 맛본 저들, 이미 많은 죄를 쌓아 후환이 두려운 저들이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어떤 무리수를 둘런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온갖 꾀를 내어 일을 도모하고, 악착같이 탄압하며, 아둥바둥 저항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런 저들에게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 그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요 정치생리에 대해 무지해도 너무 무지한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사죄, 용서를 제쳐두고 화해, 통합만을 강조하는 것은 교활하고 뻔뻔한 것이 아니라면 순진하고 나약하며 공허하기까지 하다.

    대통령서거가 아니라도 가뜩이나 어수선한 정국이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에 이르기까지는 분열과 갈등은 당분간 더욱 심화될 것이다. 쉽게 뉘우치고 순순히 물러설 줄 아는 정권이었으면 애초에 그렇게 모질고 잔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의 불도저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박정희, 전두환의 어두운 시대, 야만의 계절이 올른지도 모른다. 인터넷으로 무장한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 천방지축인 신세대가 열어갈 21C 대명천지에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다시는, 다시는 그런 야만의 세월이 오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지금도 충분히 좋지 않다. 좋은 세상 만드는 것. 이것은 이제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가 힘든 줄 알면서도......

    내가 그를 위해 해준 게 하나 없는데 이제 그는 가고 없다.

    하지만 그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딸, 내 아들에게,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하여줄 것이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런 사람 또 없을 겁니다.